나다움을 찾고 싶거든, 먼저 곡선의 삶을 이해하라!
지난 주 토요일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새벽 KTX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는 서초역으로 가는 지하철은 역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올랐다. 2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사당역에 내릴 때 나는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듯 걸어야 했다.
‘역시 서울이다’ 하고 감탄하며 걷던 순간, 난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날은 평일이 아닌 토요일 오전이 때문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달리기를 하듯 환승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뒤질세라 뒤를 쫓는 사람들. '결국 그들은 환승역 어디에서 만날 텐데, 왜 그리 서두르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서서 그들을 한동안 한무리의 사람들을 지켜봤다.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정장을 입은 직장인은 없고 거의 대부분 평상복이거나 등산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발걸음과 행동은 평일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마치 함께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듯 자동문이 열리면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다렸다.
어떤 상황이든 매일 반복된다면 그 상황은 평범한 일이 된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면 이런 각성은 없었을 것이다. 지방의 지하철은 다르다. 출퇴근을 하는 한 두 시간만 반짝 북적일 뿐, 놀랄 만큼 한산하다. 지하철을 타도 그렇다. 조용하다. 아니 한가하다. 시간이 멈춘 듯, 생각이 멈춘 듯, 움직임도 슬로우 비디오가 된다. 무엇이 정상일까? 한 쪽이 게으른 걸까, 아니면 다른 한 쪽이 유난스레 바쁜 것일까?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날의 느낌이 통한 걸까.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곡선이 이긴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와 시를 모르는 사람도 기억하는 시인 고두현이 공저를 했다. 이 책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내게 있어 곡선은 여자이고 몸매다. 부드러움이고 돌아감이다. 급級이 아닌 완緩이고, 지루함이고 덜 떨어짐이다. 답답한 선이 곡선이다. 그런데 ‘곡선이 이긴다니?’ 어림없는 소리. 그래서 이 책은 ‘읽기’보다는 ‘싸움’이었다. 저자의 말에 실눈을 뜨고 반박하려 했다. 칼로리 소모가 많은 스파링 같았다.
어떤 책일까 살펴보려다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는 고두현의 시 때문이었다. 이 책을 쓴 유영만 교수 역시 그 시로 인해 시(詩)가 갖는 곡선의 속도감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공감은 따스함이다. <버킷 리스트>를 통해 유교수의 글이 좋아졌지만, 묘한 인연 때문에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둘은 ‘늦게 온 소포’를 좋아하고 있었다.
늦게 온 소포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도 하나씩 벗어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공고생 출신의 교수‘라는 수식어가 잘 말해주듯 학창시절부터 교수가 될 때까지 ’생각의 속도‘ 만큼 빠름을 재촉하며 바쁘게 살던 유교수는 어느 날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황에 감옥 같았던 그의 병실생활을 위로해준 것은 시집(詩集)들이었다. 그 중에서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는 그에게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책의 제목처럼 ’속도에서 깊이로‘ 사고하게 되었다.
<곡선이 이긴다>는 그 결과물이다. 그는 병상에 많은 시(詩)를 읽으며 이제껏 삶에서 시(詩)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시를 짓는 과정은 오랜 고뇌의 흔적이 기록된 곡선의 여정이고, 시를 음미하는 것 역시 바쁨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관망하는 곡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그러한 시간이 없었다. 내달리는 직선뿐, 곡선이 없었던 것이다.
“인생의 곡선을 응시한다는 것은 생생한 꿈을 찾는 행위입니다. 삶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꿈입니다. 꿈은 직선으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죽 뻗은 직선도로로 쇄도하다가도, 어느 순간 굽이굽이 높은 산을 홰홰 돌고, 비탈길과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르다가, 다시 한 번 질주를 하는 것이 꿈의 행보 아닐까요?
꿈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것의 움직임이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직선과 곡선이 복잡미묘하게 얽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곡선을 살아내는 법, 음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직선을 질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곡선을 산책하며 삶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배울 때, 꿈은 비로소 우리의 가슴에 스며들어 체화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올해 들어 서점가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다. 그 책이 마치 자욱한 안개 속을 걷듯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내딛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을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격려했다면, <곡선이 이긴다>는 30, 40대를 살아가는 청장년들에게 우리가 걷고 있는 오늘과 내일의 길이 과연 제대로운 길인가에 대해 고민한 책이다.
유영만 교수는 지금까지 고찰한 자신의 삶과 자료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는 직선이 아닌 곡선에 있더라고 말한다. 나아가 직선화된 대한민국을 살아낼 생존법은 ‘곡선의 마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삶은 End 게임이 아니다
그는 우선 우리의 삶은 아주 빠르고 단호하게 결정짓는 End 게임이라기보다는 길고 넓게 봐야 하는 And의 향연이라고 말한다. ‘이게 마지막’이고 ‘이번이 안 되면 끝장’ 난다며 매 순간 마다 안달복달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기에 인생이 행복할리 없다. 유 교수는 쉬는 법과 노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나무를 가리킨다. 그리고 대나무의 마디는 ‘쉼’을 뜻하고, 그 마디의 힘으로 세찬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더 높이 자란다며 멈추고 잠깐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끝장나는 End가 아닌 말 그대로 쉼Pause인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즐기는 여유, 그게 바로 곡선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곡선은 여유를 갖고 속도를 줄이며, 가끔 멈춰 방향을 점검하는 삶, 그리고 쉽을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곡선형 삶입니다.” 48쪽
에스프레소맨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한편 유영만 교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 우리의 의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즉 ‘나’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보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에게 규정지어져서 결국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 한 사람,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분류하고, 혈액형별 성격이 다르다고 서로에게 딱지를 붙인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그것이 최선일까?’
그렇게 고정된 프레임에 갇혀 남에게 규정되고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에 위너Winner가 아니면 루저Llser가 되는 것이다.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그렇게 보면서 나는 어느새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저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미들맨middle man 정현욱 같은 사람, 골은 많이 넣지 못하지만 팀의 등뼈 역할을 하는 박지성 같은 사람, 커피로 따지자면 자체로는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카푸치노, 카페모카, 카페라떼, 아메리카노에 꼭 들어가야 하는 에스프레소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런 에스프레소맨은 누구나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곡선의 삶’에 주목해야 하고, 그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디스 소로가 ‘삶다운 삶’을 위해 월든 호수로 들어간 후 쓴 책 <월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자.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소로,<월든>에서
‘사돈이 논을 샀다면?‘ 어른들은 배가 아프다는데, 아이들은 보러 간단다. 한 시가 아깝고 소중한 것이 내 삶이거늘, 틈만 나면 옆에 선 사람과 비교하고, 앞선 사람을 쫓아 살아가기 바쁘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수고‘를 담보잡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곧바로 ’달리기‘가 아니라, 잠시 ’멈춤‘이고 ’쉼‘인지 모른다. 터벅터벅 한 발을 내딛으며 ‘내 숨소리’ 한 번 들어보며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도쿄 타워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방법은 돈을 예쁜 엘리베이터 걸이 안내하는 엘리베이터에 돈을 주고 타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타워 바깥에
있는 계단을 공짜로 걸어가는 것이다.
돈을 주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약간의 귀막힘과 울렁거림만 있을 뿐 금방 정상에 오르지만, 돈 한 푼 들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면 정상까지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이 요구된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이렇게 모두 515 계단을 오르면 심장의 맥박수 만큼 다리는 떨리고, 온 몸은 뜨거워진다.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도 많이 흐른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만날 수 없는 좋은 일이 있다.
"여기까지 오르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쿄 타워에 근무하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반갑게 맞으며 마른 수건과 걸어서 도쿄타워를 올랐다는 인증서를 준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선물은 나선의 원형으로 생긴 계단을 오르면서 만나는 360도의 도쿄 전경이다.
<곡선이 이긴다>를 읽으며 ‘도쿄타워를 걸어서 가는 법’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살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빨리 승승장구하며 쾌속질주를 해서 정상에 오르면 행복하다. 하지만 그 뿐, 더 오를 것이 없다. 오래 즐기기엔 너무 심심하다.
만약 인생을 도쿄타워의 계단을 오르듯 천천히 하나씩 오르면 다리는 튼튼해지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515계단을 오르면서 타워 전체를 돌며 도쿄 시내를 하늘에서 전부 관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쿄타워 도달'이라는 인생을 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죽어라고 돈을 벌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목적은 도쿄타워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것인가? 답을 알겠거든 이 책을 펴라. 인생을 쉬엄쉬엄 가면서도 만끽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곡선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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