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 삼성이 한국브랜드인 줄 몰라
정동일 한국왓슨와이어트 ELI소장
입력 : 2007.08.10 15:39 / 수정 : 2007.08.11 02:50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 “얼마 전 내가 강연을 하고 난 후, 한 유명 기업 CEO가 내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쓴 ‘마케팅 관리론’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내가 무슨 스타도 아니고, 사인을 안 해줄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잠시 후, 나는 사인하기를 거부해버렸습니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76살의 석학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자신의 최근 경험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도대체 왜 사인하기를 거부했을까?
“그 책은 내가 1967년에 쓴 책이에요. 1967년! 내가 그 CEO에게 ‘이 책을 요새도 읽느냐’고 묻자 그가 ‘줄 치면서 읽고 있다’고 하더군요. 한숨이 나왔어요. 그래서 연거푸 질문을 던졌죠. ‘이 책에 인터넷 마케팅 사례가 나와 있던가요?’ ‘브랜드 마케팅은?’ ‘B2B 마케팅 사례는?’ 세 가지 질문에 모두 ‘No…’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멋쩍어하며 발길을 돌리더군요.”
경영학 분야 중 마케팅만큼 마케팅을 많이 하는 분야는 없다. 매출부진에 부딪힌 CEO들은 어김없이 마케팅을 독려하고, 블루오션을 찾는 경영인들은 고객의 잠재수요를 날카롭게 집어내는 새로운 마케팅이론에 목말라 한다. 성공을 갈망하는 개인부터 세계지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국가까지 마케팅에 골몰하지만, 어떤 마케팅 이론도 코틀러 교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단순 판매기법이었던 마케팅을 경영과학으로 끌어올린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린다. 오늘 경영자들이 펼쳐 들고 있는 마케팅지도에는 그의 족적이 남아있지만, 그는 오늘도 미래의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코틀러 교수는 20권이 넘는 ‘마케팅 교과서’를 써냈고, 그 교재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분화하고, 성장하는 학문입니다. 1960년대에 통용됐던 마케팅 이론을 결코 오늘날 적용할 수 없습니다.”
■ 새로운 마케팅의 시대가 눈앞에 있다
마케팅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가는 오늘날의 마케팅 무대를 ‘전쟁터’에 비유했다. 그가 36살에 쓴 마케팅 관리론이 어느새 옛날 이야기가 된 것처럼, 기업들이 서 있는 무대 역시 완전히 변해 버렸다. 소비자들은 이제 진정한 주권을 쥐고 있다. 그들은 당신의 기업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고, 한 기업의 CEO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무섭게 진화했어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기업들은 벌거벗은 상태가 됐죠. 심지어 미국에선, 사람들의 블로그(blog)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의뢰 기업에 관한 평가만을 모으는 서비스 업체가 탄생했을 정도예요.”
이런 시대엔, 고객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만들 줄 아는 기업만 살아 남는다. 예를 들어, 벤츠(Benz) 자동차를 구입한 고객을 생각해보자. 벤츠를 구입한 이유를 묻는 수많은 소비자조사에서 그는 “품질이 너무 좋아서”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본심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뽐내고 싶어!” 벤츠가 만약 이런 소비자들의 속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마케팅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며 끊임없는 혁신으로 무장한 기업들만이 생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진정한 제품의 가치를 속인 채 그저 인식을 바꾸려는 ‘구식 마케팅’에 매몰돼 있는 무수한 기업들은 어느새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 한국 기업들을 향한 충고
그의 이론은 국가 마케팅까지 확장되어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마케팅 실력은 어느 수준일까.
그는 “삼성이 한국 브랜드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며 “한국 국가 마케팅은 걸음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라스베이거스(Las Vegas)의 빈 사막에 카지노와 휘황찬란한 건물들을 세우는 창의력을 보여줬듯이, 한국도 이제 진정한 혁신에 몸을 담아야 합니다.”
그는 한국 왓슨와이어트 초청으로 지난 2일 방한했다. 그의 일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가 어떻게 진검승부가 벌어지는 마케팅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강연 전날, 찌는 무더위 속에서 76세의 코틀러 교수는 서울 한복판을 헤집고 다녔다. 한 손에 ‘서울 안내 지도’를 쥔 채 그는 그 다음날 강연이 예정돼 있는 시중은행의 한 지점을 찾아 고객들을 살폈다. 그 후, 그는 곧바로 쇼핑몰로 자리를 옮겨 자신이 컨설팅한 전자 기업의 제품이 제대로 팔리고 있는지 관찰했다.
위클리비즈는 코틀러 교수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그의 강연 내용 전체를 취재했다. 그의 마케팅세계로 안내한다.
■ 코틀러 교수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일침
아일랜드는 마케팅部 신설한 후 '유럽의 지진아'에서 '세계의 강자'로
한국도 아일랜드처럼 국가마케팅 해야
“얼마 전 내 동생이 현대(Hyundai)의 승용차를 샀어요. 이만하면, 나도 한국과 꽤 친숙하지 않나요?”
한국 기업들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가벼운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어진 한국기업과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대한 그의 진단은 무거웠다.
코틀러 교수에게 “LVMH·코카콜라(Coca Cola)등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같이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문화권들 속에서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며 스스로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과연 어떤 국가에서 나온 브랜드이냐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가 달라지는가?” 그는 “예스(yes)”라고 자답(自答)했다.
“예를 들어, 브랜드가 스웨덴 것이라면, 스웨덴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그 브랜드를 더 좋아하게 될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우리는 ‘스웨덴’ 하면 뭔가 깨끗하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죠. 천만도 채 안 되는 인구인데 세계적인 기업이 12개나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이케아·볼보·스카니아·에릭슨….”
그렇다면 바깥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한국(Korea)’이란 단어를 들으면 일단 ‘북한(North Korea)’을 떠올려요. 굵직굵직한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북한이 장식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부른 이후에 더 유명해졌죠.” 코틀러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이렇다 할 뚜렷한 브랜드 이미지가 없다. 오히려 개별 기업의 이미지가 국가 이미지를 넘어선다.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삼성은 알아도 한국은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삼성이 한국 브랜드라는 사실도 잘 모르고요.” 그는 “최근 미국의 한 공항에서 휴대폰을 잡고 있는 거대한 손을 형상화한 삼성 조각상을 봤는데, 참 ‘똑똑한(clever)’ 광고였다”며 “이런 삼성의 지능적이고 전략적인 마케팅 기법을 국가도 도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을 세계 지도 상에서 좀 더 부각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은 없을까. 코틀러 교수는 이에 대해 “매력을 찾으라”고 충고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더 매력적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죠.”
그는 선별적인 국가 홍보 전략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주머니가 두둑한 여행객들을 불러모으라는 것.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가서 한국을 홍보하라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독일·미국, 그중에서도 뉴요커(New Yorker)들, 캘리포니아 지역 사람들 등 여행 와서 상대적으로 ‘쓸 돈’이 많은 사람들을 오게끔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를 제시했다. “일본은 몇 년 전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한 적이 있어요. 꽃꽂이, 다도(茶道) 축제를 열고, 일본 곡예사들이 미국에 몰려와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죠. 한국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문화의 풍부함을 알리는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싶어요.”
코틀러 교수는 한국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국가 모델로 싱가포르와 아일랜드를 꼽았다. 그는 “싱가포르는 특히 효율적·지능적인 국가 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며 “문젯거리가 있는 세계의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컨설팅 회사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일랜드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일랜드 정부에 마케팅 부(Ministry of Marketing)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그의 설명처럼 아일랜드는 마케팅 부처 산하에 관광부(Ministry of Tourism),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를 위한 국내개발부(Ministry of Inward Development), 수출개발부(Ministry of Export Development)를 두고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효율적인 국가 마케팅으로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경제 지진아’라 불렸던 아일랜드는 20년 만에 1인당 GDP 4만9700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기존 아일랜드의 이미지는 골프장이나 아름다운 녹지대를 떠올리게 하는 ‘로맨틱’한 한촌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젊은 IT전문가들의 보고(寶庫)’로 이미지가 바뀌었죠. 예전엔 아일랜드에서 직업을 못 구해 영국으로 건너간 우수한 인재들이 다시 아일랜드 땅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국가 마케팅의 최고 성공 사례로 내가 아일랜드를 꼽는 이유입니다.”
-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의 비법은 뭘까?
코틀러 교수는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사랑”이라고 답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마케팅의 목표는 사람들을 열망 속으로 몰아 넣는 판매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죠.”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사랑을 얻는 방법은? 그의 설명은 명쾌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죠. 왜 지구 상에 수많은 종류의 음료수가 있는 데도 계속해서 ‘새로운 음료수’들이 생기는 걸까요?” 탁자 앞에 놓인 탄산 음료를 가리키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처음 사람들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콜라를 마셨고, 그 다음엔 에너지를 얻기 위해 게토레이를 마셨어요. 그러다 이제 또 건강을 위해 비타민 드링크를 마시죠. ‘사랑 받는’ 마케팅은 이처럼 아직까지 충족되지 않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끊임없이 찾아내 해소해 주는 겁니다.”
그는 ‘마케팅으로 우뚝 선’ 세계적 브랜드 7개를 소개했다.
비슷한 커피맛인데 세계가 중독됐다.
평범한 보드카인데 유독 상류층이 찾는다.
성공하는 브랜드는 '환상'을 판다.
머리로 하는 마케팅은 실패하지만, 가슴을 두드리면 지갑이 열린다.
성공한 마케팅은 브랜드를 교주로 만들고 소비자를 광신도로 만든다.
골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그린에 나서게 한다.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합니다" 최악의 브랜드는 이렇게 외치지만, 최고의 브랜드는 단 하나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다.
1. 스타벅스(Starbucks) - “꿈을 팔아라”
― 개인적으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어딘가요?
“스타벅스! 한 마디로 소비자들의 심적 상태를 가장 잘 파악했다고 볼 수 있죠. 가장 영리한 기업은 소비자들의 ‘마인드 셋(mind set)’을 효과적으로 파고 듭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소비자의 관심이나 원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파악한 후, 해결책을 제시하는 거죠. 마케팅이란 결국 소비자들을 위한 문제 해결을 개발하는 과정이니까요.”
― 스타벅스가 어떤 문제를 해결한거죠?
“스타벅스는 사무 공간과 집 사이에 존재하는 ‘제 3의 공간’을 개척했습니다. 즉, 기존에 해소되지 않고 있던 소비자의 문제를 찾아내, 이를 해결한 겁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딘가 편히 앉아 친구와 얘기도 하고, 일도 하고, 책도 읽고 싶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겁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한 거죠. 사실, 엄밀히 마케팅을 정의해 보라면 ‘한 차원 더 높은 스타일로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는 것(satisfying needs in superior fashi on)’을 들 수 있는데, 이걸 스타벅스가 해냈습니다.”
― ‘한 차원 더 높다’란 말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소비자 욕구를 그냥 충족하는 게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은 ‘가치’까지 얹어 주는 거죠. 스타벅스의 커피엔 꿈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타벅스 매장에 앉아 커피를 들이키면서 ‘내가 무언가 독특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꿈을 꿉니다. 런던이나 맨해튼 한 복판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누군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죠. 이와 같이 최고의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꿈을 팝니다. 비슷한 형태로는 도서관형 서점 ‘반스앤노블’을 들 수 있어요. 이곳은 ‘서점에서 편히 앉아 시간을 보내며 우아하게 책을 읽고 싶다’는 소비자 욕구를 해결했죠.”
2.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e Vodka) - “평범함에 비범한 가치를 더해라”
― 꿈을 판다…. 평범한 것을 뭔가 특별한 것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브랜드를 꼽는다면?
“앱솔루트 보드카가 좋은 예에요. 왜냐하면 보드카는 사실, 별다를 게 없는 술이니까요. 러시아에 가면 너도 나도 다 마시는 게 보드카죠. (웃음) 하지만 단 세가지 전략이 보드카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첫째는 ‘병’이에요.
― 병의 디자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앱솔루트 보드카가 담긴 반투명 병 디자인은 안에 있는 술이 맑아(pure) 보이도록 합니다. 시원하게 김이 서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도…. 둘째는, 그 병이 항상 광고 어딘가에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 회사는 최고의 아티스트를 고용해 광고가 화제가 되도록 만듭니다. 숨바꼭질처럼 정말 재미있죠. 셋째론, 그들이 많은 고급 미술 전시회(아트쇼)들을 스폰서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바짝 끌어 당겼다.)
― 미술품 후원이요?
“들어보세요. 미술품은 ‘부자’들이 늘 관심을 갖는 분야에요. 보통 먹을 것도 없는데 미술품에 관심을 갖겠어요? 이런 고급 전시회들을 후원하면서 이 회사가 얻은 것은? 바로 보드카 한 병에도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상류층 소비자들을 만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보드카는 흔한 술에서 프리미엄 술로 거듭납니다.”
3. 퍼듀팜(Perdue Farm) - “내 닭들은 행복해!”
― 흠…. 그렇다면 정말 제품은 별볼일 없는 데, 마케팅 만으로 우뚝 선 브랜드가 있다면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마케팅의 가장 극적인 사례’가 있다면?
“아! 재미있는 사례가 하나 있어요. 닭고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요? 내 입엔 거의 비슷비슷한데…. 그런데 미스터 퍼듀(Mr.Perdue)라는 사람은 자신의 닭들이 특별하다고 주장했죠. 자신이 기른 닭들이 다른 닭들 보다 ‘행복하다’는 것이었어요.”
― 닭이 ‘행복’하다고요?
(그는 한참을 웃은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자신의 닭들이 남들이 기르는 닭들보다 더 잘 먹고, ‘주거환경도 친화적’이라고 말했죠. 닭장에 갇혀 있지 않고, 맘껏 들판을 뛰어 논다는 것이었어요. 좋은 환경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퍼듀팜의 닭고기는 노르스름한 색으로, 다른 닭들보다 부드러워 보이기는 해요. 광고 문구도 ‘나처럼 터프한 사람만이 연한 닭고기를 만들 수 있다(you need a tough man to make soft chicken)’로 정했죠. 미스터 퍼듀는 사실 닭처럼 생겼어요. 진짜에요. 닭들과 정말 사랑에 빠져서 그런가? (웃음) 그래서 사람들은 10~50%나 돈을 더 주고 퍼듀팜의 닭고기를 사기 시작했어요. 개인 농장에서 시작해 퍼듀팜은 미국 전역에서 세 번째로 큰 닭고기 공급업체가 됐죠. 지금은 그가 죽고 아들이 이어받았는데,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대표적인 예에요.”
4. 멕시코 시멕스(CEMEX) - “딱딱한 시멘트에 감성을 불어넣다”
― 재미있는 사례네요. 또 다른 사례가 있나요?
“멕시코의 시멘트 기업 시멕스가 있죠. 사실, 시멘트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사랑의 비법은 사회공헌활동에 있었어요. 이들은 멕시코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고, 이들이 돈이 없어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이 사람들은 청사진(blue print)과 벽돌만 있다면 스스로 집을 지을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시멕스는 이에 착안해 거대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땅을 살 수 있도록 대출을 도와 주고,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맞춤 청사진도 제공하고, 할부로 벽돌을 살 수 있게 했죠. 정말 가슴 뭉클한 캠페인 이죠? 이 캠페인 덕택에 가난한 사람들은 보금자리를 갖는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이런 게 바로 내가 말하는 가치 마케팅(value marketing)의 대표적인 사례죠. 시멘트 회사에 뜨거운 감성을 더한거죠.”
(시멕스는 연매출 18조원으로 세계 3위의 시멘트 제조업체이자 멕시코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이다. 1985년 매출이 3000억원도 채 안됐지만, 2000년까지 활발한 M&A를 통해 연평균 20% 이상의 고속성장을 거듭해왔다. 창업자의 손자인 로렌조 잠브라노 현 CEO는 다양한 신성장동력을 발굴해왔다. 시멕스는 ‘고객사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단순히 시멘트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멘트를 사가는 고객들에게 자금대출·건축컨설팅 등 건설과 관련한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5. 애플(Apple) - “광신도를 이끄는 집단”
― ‘가치 마케팅’의 또 다른 사례들을 꼽는다면?
“제품이나 브랜드가 아예 하나의 문화적인 코드가 되는 경우도 있죠. 애플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애플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기업이에요. 광(狂)팬들도 많죠. 스티브 잡스는 매년 정기적으로 획기적인 신제품을 손에 쥐고 대중 앞에 나타납니다.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클럽 같은 곳에 귀에 MP3를 꼽고 흔들거리며 나타나기도 하죠. 그는 마치 ‘애플교’의 교주와 같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애플 러버(lover)는 아이팟, 아이폰, 맥 등의 제품과 더불어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도 진짜 혁신(innovation)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을 못쓰겠죠.”
6. 캘러웨이(Callaway) - “흥미 없는 사람도 끌어들여라”
― 자신의 상품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을 새로운 소비자군으로 끌어 들인 브랜드도 있지 않습니까?
“캘러웨이는 은퇴한 부자 노인들이 의외로 골프를 안 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했습니다. 심지어 테니스를 즐겨 치는 건강 좋은 노인들마저 골프를 안쳤죠. 이들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 ‘헛스윙’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심리가 녹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캘러웨이는 빅 버사(Big Bertha)라는 새로운 클럽 헤드를 제작했다.
― 클럽 헤드를 크게 만들어서 헛스윙할 확률을 낮춘 거군요.
“맞아요. 이렇게 해서 캘러웨이는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을 골프를 치는 사람들로 바꾸어 놓았죠. 피터 드러커는 ‘내 고객이 아닌 고객에도 내 고객만큼이나 관심을 기울이라’고 했어요. 비고객은 잠재적 고객과 비잠재적 고객으로 나뉘죠. 비잠재적 고객은 일단 제쳐 둬도 됩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잠재적 고객이 왜 제품을 안 사는지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는 거에요. 잠재적 고객이 아직 구매를 하지 않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해결책도 있을 것입니다.”
7. 볼보(Volvo) - “무언가를 상징해라”
―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기업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이미 너무 큰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기업이 업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어떤 마케팅 전략을 사용해야 할까요?
“일단 당신의 브랜드 이름이 무언가를 상징해야 합니다. 볼보!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에요. 볼보는 자동차 기업 중 차 안에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가장 늦게 내장한 회사 중 하나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안전에 해가 된다’는 것이었죠. 내비게이션을 작동하고, 거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사실 안전에 소홀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볼보도 결국 대세를 따라 차 안에 내비게이션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수천 번의 시험을 거쳐 가장 ‘안전한 위치’에 달았다고 광고했죠.”
― 하나의 약속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게 중요하겠군요.
“최악의 브랜드는 ‘우리는 당신을 위해 이것저것 뭐든지 다 합니다’ 라고 말하는 브랜드에요. 특징이 없으면 곧 도태되기 십상이죠.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날(edge)’이 있어야 돼요. 경쟁력 있는 약속 말이죠. ‘이 회사는 적어도 이것은 꼭 지킨다’는 이미지는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확고한 믿음과 강한 신뢰로 자리 잡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와의 끈끈한 연결 고리는 이렇게 탄생하는 겁니다.”
- 이런게‘진짜 마케팅’ ‘이 시대의 마케터’라고 불리는 버진 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뉴욕 타임 스퀘어에 이어, 파리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에도 몸을 던졌다. 작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버진메가스토어 오픈을 기념, 브랜슨 회장이 빌딩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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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하셨지~마케팅을 즐겨라 ♬
개업식날 밧줄 타고 내려온 CEO■ 코틀러 교수가 뽑은 위대한 마케터들
뉴욕 맨해튼 타임 스퀘어 한 복판으로 뛰어내린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클럽 음악에 취해 젊은이들과 함께 몸을 부대끼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초록 혁명’이라는 세계적인 트렌드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한 GE의 제프리 이멜트. 모두 코틀러 교수가 꼽은 당대 최고의 마케터들이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점을 코틀러 교수에게 물었다.
― 당대 최고의 마케터를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전형적인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리더입니다. 그는 바디샵의 애니타 로딕처럼 자기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identity)을 완벽하게 브랜드 정체성으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CEO 중 하나죠. 버진 그룹이 핸드폰, 콜라 등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마다 브랜슨은 직접 나타나 화제를 뿌리고 다녔어요. ‘뉴스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거죠. 자연스럽게 광고보다는 퍼블리시티(publicity)를 통한 홍보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늘 신문의 1면을 차지했으니까요.”
― 예를 하나 들어주시죠.
“미국에서 버진 콜라를 출시할 때, 그는 콜라 캔을 쌓아 올려 만든 벽을 부수기 위해 실제 전쟁용 탱크를 몰고 뉴욕 거리를 활주했습니다. 코카 콜라 간판을 향해 포탄을 쏘는 이벤트도 뒤따랐죠. 결혼 서비스 회사인 버진브라이드(Virgin Bride) 개업식엔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미국 내 첫 메가스토어를 개업할 때는 상점 100피트 상공에서 커다란 은색공을 타고 뛰어 내렸죠. 수 천명의 사람들이 그의 돌발 행동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그는 “ ‘버진(Virgin·미혼여성이라는 뜻)’ 그룹이 결혼 서비스 회사를 만들다니, 회사 이름과 모순 아니냐”란 농담도 곁들였다.)
― 하지만 이러한 제품들은 사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길을 걸었는데요.
“핸드폰이나 콜라는 사실상 실패했죠. 이게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핵심 속성입니다. 좋은 마케팅 기법도 제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오래된 진리로 돌아가는 거죠. 신제품을 출시할 때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항상 사람들의 흥미와 열기를 높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만약 제품의 질이 그에 호응할 만한 수준이 안 된다면 결국 농담거리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겠죠.”
― 훌륭한 마케팅 감각이란 결국 어떤 건가요?
“마케팅에 대한 이해도를 기준으로 나는 CEO들을 네 종류로 분류합니다. 최악의 부류는 마케팅이 광고와 홍보책자를 만드는 부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이 부류는 마케팅을 프로모션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조각으로 봅니다. 마케팅을 회사 성장의 원동력으로 보지 못하는 부류죠.”
(이름을 ‘콕 찍어’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몇몇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름을 말하면 큰일난다”며 곤란해했다. “힌트라도 줄 수 없겠냐”라고 묻자, 그는 자연스럽게 말끝을 흐리며 다음 부류 설명으로 넘어갔다.)
“이보다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사람은 마케팅을 네 조각으로 보는 부류죠. 이들은 제품개발(product development)·가격책정(pricing)·판매장소(place)·판촉(promotion)으로 마케팅을 정의합니다. 기본적으로 마케팅이 회사를 키운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부류보단 조금 낫죠. 나는 이 단계에 오른 CEO들을 ‘4P CEO’라고 부릅니다. 이보다 좀 더 나은 경영자들은 마케팅을 통해 가장 좋은 시장 기회를 포착합니다. 그들은 마케팅을 통해 그들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어요. 4P도 이해하면서 그들이 타깃으로 하는 소비자들도 이해하는 사람들이죠.”
―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부류는?
“넷째 그룹은 ‘희귀종’ 들이에요. 마케팅이 기업 성장 동력이라 믿는 경영자들이죠. P&G사의 래플리(A.G. Lafley)는 마케팅이 기업을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었습니다. 두 번째로 잘하는 사람은 GE의 이멜트입니다. 이멜트는 환경문제를 푸는 데서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견했어요. 물과 공기 오염 등을 개선해 기업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높였죠. 이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은 이렇게 탄생했어요. 아까 말한 리처드 브랜슨과 더불어 스티브 잡스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는 어느새 혁신의 아이콘처럼 돼있죠.”
― 지금 언급하신 CEO들은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는 경영자들이기도 합니다. 마케팅에 대한 리더십이 결국 기업의 성공을 이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최고의 경영자들이 모두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Company)’라는 책의 저자 짐 콜린스는 13개의 최고 기업들을 분석했어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업들의 CEO들이 꽤 소박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직원들을 편안함으로 이끄는 게 사실 카리스마보다 중요해요. 나는 빌 게이츠가 한번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는 회사를 위하는 현명한 리더죠. 이기적인 행위(ego trip)을 과감히 벗어 던질 줄 아는 리더가 결국 마케팅과 기업 경영에서 모두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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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본 코틀러 교수의 철학
선정민 산업부 기자 sunny@chosun.com
B2B 브랜드 마케팅 (B2B Brand Management, 2006)
브랜드 관리는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 대상)기업에도 중요한 화두다. 인텔, 시스코, 오라클, 지멘스 등 신뢰받는 B2B기업들은 강력한 브랜드 구축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코틀러는 “브랜드는 기업의 약속이고 고객의 마음에 구축된 자산이다”라며 기업 외부의 시각에서 브랜드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케팅 A to Z (Marketing Insights from A to Z, 2003)
마케팅의 주요 개념을 ‘광고’(Advertising)에서 ‘열정’(Zest)까지 80개 키워드로 풀어쓴 개론서. 그간 ‘판매 행위’ 또는 ‘마케팅 부서의 업무’로 치부돼온 마케팅을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했다. ‘창의력’(Creativity)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리더십’(Leadership)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코틀러의 철학도 포함돼 있다.
국가 마케팅 (The Marketing of Nations, 1997)
국가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21세기에 코틀러는 “국가도 시장 관리의 접근 방법으로 발전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직면한 경제성장의 문제를 마케팅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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