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모두가 안개 속에서 헤맨다. 그러나 아무도 벗어날 수가 없다! 여명의 눈동자의 작가, 김성종 장편 추리소설. 어느 살인 청부업자의 안개 속 살인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뒤를 쫓는 형사들을 비정하고 건조한 문체로 그려...
이 책은..
나의 평가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생각이 날 것만 같은 책.
축축한 공기, 탁한 시야.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물벼락이 쏟아질 듯한 두려움. 어깨를 움추른다. 코트깃을 세운다. 난 안개가 싫다. 불란서 영화속 축축한 거리에 뿌옇게 번지는 가스등은 운치를 느끼지만, 영화속 모습일 뿐 보기는 좋지만 그 속에 있기는 별로다. 아니 싫다고 말하겠다. 무엇인가는 닥칠 듯 한데 알 수 없는 그것을 기다리는 듯 해서 난 싫다. 내가 운치를 느끼는 가스등 퍼지는 밤거리를 표지로 김성종의 <안개의 사나이>가 내 손에 쥐어졌다.
안개 자욱한 신새벽에 일어난 살인사건, 그리고 중국발 민항기의 폭발사고 속에서 범인인 '나'는 알 수 없는 미래 속에서 자신을 추스리는 불완전한 우리를 보여주는 듯 했고,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수사일지'는 그런 현대인을 조망하듯 지켜보는 안개의 증언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육체적 관계로만 생각했던 여인의 존재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유일한 영혼의 안식처'였고, 동무였음을 알려주고, 잠깐은 사실이었던 '나'의 죽음은 10년간 부부였던 아내에게 있어서 '나'는 단지 '돈버는 기계, 물주'였음을 알려준다.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체 살았고, 이제껏 몰랐던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인간의 간사하기도 하고, 사악하기도 한 내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거울을 보는 듯 뜨끔한 면도 있었고, 그것들을 공감하게 될만큼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 놀라 그림자가 없어진건 아닐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따르던 떠돌이 개를 보면서 어쩌면 갈 곳 없는 자신을 떠올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데려다 키울 수도 없으면서 씻고 닦인 것은 아닐까? 자신의 허물을 씻고 싶었던 것처럼.
따뜻한 파카로 새로 씻은 개를 감쌌지만, 피살자의 피로 범벅되듯이 그의 재탄생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그가 서울을 배회하고, 추억에 젖고, 떠돌이 개에게 이제는 없는 내연녀 미주라는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주게 된 것은 아마도 안개속에 휩싸여 갈 곳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피살자의 혼령이었든, 자신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포기든 지금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인간은 언어라는 함정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놓고 언어라는 한정된 시야로만 사물을 관찰하려 한다면서 그것이 옳은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음습하고, 축축한 나흘간을 '나'와 함께 동행하면서 음습하고 답답해 햇볕이 보고 싶을 만큼 충분히 느꼈다. 우리는 지금도 안개속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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