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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최악의 도망자'가 되어버린 평범한 세 사람의 이야기 !

by Richboy 2008. 7. 15.
출판사
북스토리
출간일
2008.7.25
장르
소설 베스트셀러보기
책 속으로
경제도, 사랑도, 인생도, 모든 것이 최악이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최악』. 독특한 캐릭터와 예측불허의 반전으로 웃음을 선사해온 치유의 마법사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에...
이 책은..'최악의 도망자'가 되어버린 평범한 세 사람의 이야기 !
나의 평가
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
'절체절명 命'의 도망자가 되어버린 세 사람의 이야기 !
 
 
  "그는 코메디 작가다." 라고 그의 책을 좋아하거나, 익히 읽었던 이들에게 꽤 많이 들어왔던터라 사실 그의 소설에 시큰퉁했었다. 연일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고,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는 한 주만 지나면 장바구니의 무게를 좌지우지(실제로는 가볍게만 한다. 안그런가?)하는 현실이기에 가끔 우연히 보게 되는 TV 에서 30대를 가득 채웠지만 여전히 20대 중반으로 아는 늙수구래들의 실없는 농담에 냉소冷笑 나 가끔 던지는 것이면 되었지,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코메디 작가의 글을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터라 책선물로 읽은 [스무살, 도쿄]는 의외였고, 재확인을 위해 읽은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는 '오쿠다 히데오가 코메디를 쓰기는 쓴거야?' 하는 의심을 품게 했다. 앞선 것이 사회 정체성에 흔들리는, 하지만 그리 괴롭지 않은 20대를 공감할 수 있게 써 냈다면, 뒤따르는 것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이정도는 해야 되는거야!'라고 말하는 듯 자신의 우상인 [존 레넌]의 숨겨진 몇 년간의 시간을 재구성해 멋들어지게 소설로 꾸며냈던 터였다. 나이 40의 늦깍이 데뷔 작가답게 삶을 한 계단 위에서 조망하는 듯한 기술과 표현은 내 입에 착착 감기는 듯 그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 전 그의 신간 소식에 회가 동해 열 일 제치고 손 안에 넣었다. 600 페이지를 상회하는 두터운 두께. 재미없으면 베개로도 쓸 수 있겠더라. 국내에 소개된 오쿠다 히데오奥田 英朗 의 신작 [최악], 원제는 [ 最悪 さいあく] 다. 재팬 아마존으로 확인한 바 이 책은 1999년 2월에 출간된 책이다. 다시 말해 2005년 1월 국내에 소개된 오쿠다 히데오의 첫 작품 [공중그네]는 2004년 4월에 일본에 소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국내에서 힛트를 치자 그의 최근작과 과거작품들이 서로 판매유효기간을 두고 엇갈려 쏟아지고 있어서 독자마다 서로 평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최근 그의 작품이 '희극'의 성격을 띠는 것이지 모든 작품이 그렇다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부수를 두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그를 이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를 잇는 작가'라고 평가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라이트한 코메디만 쓰는 작가'로 폄하되기는 무리가 있지 싶다. 이 책 [최악]을 읽고 난 후는 더욱 그랬다. 각설하고 책이야기로 간다.
  
   

  이 책은 47세의 영세 철공소 사장 가와타니 신지로, 23세의 평범한 은행창구 여직원 후지사키 미도리, 20세의 떠돌이 양아치 노무라 가즈야 이렇게 세 명의 소시민이 우연한 사건으로 '절체절명 命'의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제목 그대로 갈 때까지 가는 '최악最悪'을 이야기한 책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를 경험하고 한숨을 돌리는 시점의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인물소개와 사건의 발단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과 세 주인공이 한 사건으로 연류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전형적인 소설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데, 스토리의 치밀함과 재미 그리고 스피디한 전개와 박진감은 여느 영화의 그것보다 훌륭하다.
 
  
  
  
     
  
  
  위엄있는 가장으로서 신용있는 조그만 철공소의 사장으로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은 가와타니 신지로.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속썩이는 종업원,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는 원청업체, 게다가 소음으로 시비를 거는 이웃집 '오타씨 부부'의 태클 속에서도 업무량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 폭발하고 마는 그의 모습에서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그 태양을 받아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지열, LA시내로 들어가는 프리웨이 위에서 햐얀 와이셔츠 차림에 한 손에는 007 가방을 그리고 한 손에는 장총을 매고 서 있는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 분)를 연상하게 한다. 1997년의 영화 폴링 다운 (Falling Down, 1997) 속의 그 역시 헤어진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딸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서히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그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무기력, 그저 반복될 뿐인 일상의 단조로움, 우울하기만 한  한 가장의 모습을 보게 된다.
 
  월요일과 월말, 그리고 비 오는 날을 끔찍히 싫어하는 은행원 아가씨 후지사키 미도리. 그녀에게 남자는 무기력과 냉소의 대상이었지만, 어느 날 그녀에게 닥친 한 사건으로 인해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자신을 우려하고 아꼈던 이의 시선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련의 여인이 되고 만다. 그녀가 사건에 휘말려 남자에게서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는 영화  노스 컨츄리 (North Country, 2006)  에서 조시 에이미스(샤를리즈 테론 분)가 금녀의 구역 탄광에서 남성들에게 부대끼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이성에 대한 분노가 어디까지인지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영화속의 조시처럼 적들을 무릎꿇리고 당당하게 돌아서는 모습을 기대하는건 미국에서 뿐일까? 내가 사는 이땅에도 후지사키와 같은 피해자는 이시간에도 생기고 있을 거란 생각에 수치감마저 들게 한다.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아이 노무라 가즈야에게 내일은 없다. 떠돌이 양아치에게는 오늘이라는 단어만 있을 뿐 내일은 없다. 빠칭코에서 하루를 보내며 근근히 하루벌이를 하거나 톨루엔을 훔쳐 목돈을 마련하는 외톨이에게는 누군가 말만 걸어줘도 그 날은 행운인 것이다. 그에게 소중했던 것은 한 조각의 빵이 아니라 푸근한 사람의 숨결이었고, 살가움이었는지 모른다. 스무살의 잘생긴 양아치의 생활을 쫓아보노라면 우리 영화  태양은 없다 (City Of The Rising Sun)  가 떠오른다. 게다가 그에게는 악연인 친구 다카오가 있지 않은가? 도철(정우성 분)과 홍기(이정재 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누구일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정체성의 확립의 유무를 떠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그 밖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 끝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라며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웃집 남자 오타 라는 인물에게서 이 세상에 숨어 사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보게 되고, 스무 살의 철공소의 종업원 마츠무라와 은행원 이와이의 이상한 행동들은 무기력한 남자들의 끝을 보는 듯했다.
 
'사람은 어디서 인생이 갈라지는 걸까?'
무심히 내뱉는 미도리의 한 마디가 이 소설의 화두는 아닐지...
 
  




  늦은 밤 잠을 청하려 책을 들었다가 새벽 6시까지 해가 뜰 때까지 가슴졸여 가며, 잔뜩 흥분해 가며 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극한까지는 치닫지 않았지만, 한 번쯤은 경험해 봤던 나의 좌절, 배신, 오해가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지나고 난 후엔 쓴웃음도 지을 수 있는 과거라는 물고기의 비늘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딱 죽고 싶은 최악의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키는 오쿠다 히데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읽은 이 책으로 그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한 명의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할 영화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