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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인문

라면의 정치학 - 오늘도..정치 드십니까?

by Richboy 2009. 10. 16.

 

라면의 정치학

 

詩人 - 신혜정

 

현대는 엑기스의 시대다

정보의 집합체에 접근하기

혹은 접근 금지의 아고라에 모여들기

농축이 아닌 것들은 천대 받는 시대

 

젊음은 치기라는 농축 엑기스의 집합체로

술을 마셔도

연애를 해도

미친 듯이,

미친 듯이

객체와 영혼의 융화를 이루어내는

 

라면은 현대 식문화의 집대성으로

영양학자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이슈는 스프 속에 감춰진 비밀 레시피

소고기맛 베이스

지미강화육수분말

육개장양념분말

햄맛분말

향미증진제

돈골엑기스......

 

엄청난 살육의 엑기스를 분말로 만들어내는

물리학의 기적

 

팔팔 달아오른 냄비는 뜨거운 욕망을 탄생시키고

한 번의 사용을 위해 가지런히 포장된 비닐봉지는

원 나잇 스탠딩

구깃구깃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부패되지 않는 것들을 양산하는 현대의 문명은

한 끼 식사에 30분을 소비하지 않는다

 

냄비가 끓었다면

이제 곧 먹을 차례다

 

정치적인 핵심과 이슈들이 퉁퉁 불기 전에

초스피드 배후설을

완성할 차례

 

역사와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것은

활자처럼 찍혀

좌우로 팔려나간다

 

+ + + + + + + + + + + + + + + +

 

우리가 흔히 즐기는 먹거리 라면에서 인간의 행태를 찾아내는 시인의 안목과

해학적인 표현이 잘 버무려진 시입니다. 제목이 <라면의 정치학>이라네요.

 

정치적인 핵심과 이슈들이 퉁퉁 불기 전에

초스피드 배후설을

환성할 차례

 

라는 부분이 압권이네요.

 

소스가 이슈되고 거기다 소스가 덧붙여져서 범벅이 되면

진위를 파헤친 소수는 바보가 되는 세상

염장질을 누가 더 계속하는냐가 승리의 관건이 된 세상이 오늘입니다.

 

결국 "진위가 무슨 상관이냐, 신문에...포털 메인에 뜨면 그만이지." 라는

푸념이 진리가 된 세상입니다.

 

 

친근한 먹거리가 소재가 되니 문외한인 저도 시를 읽을만해지네요.

제가 먹는 것 하나는 '없어서 못 먹고, 안줘서 못 먹는' 지경이거든요.

 

먹거리는 곧 생生 입니다.

먹거리 때문에 사람이 움직이고 살아가는 셈이죠.

 

먹거리 앞에서는 고귀한 학문도 가르침도 필요없습니다.

최고의 임금은 만백성을 잘 먹이는 임금이요,

최고의 진리는 모든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말씀이 진리가 아닐까요?

 

90년 4.19 의거를 기념하려 수유리에 있는 4.19탑을 수 천의 동지(거창합니다. 선후배)들과

행진을 할 때입니다. 학생수보다 더 많은 전경이 도열을 하며 인도로만 가도록 막고 있었죠.

 

"너...여기 왠일이냐?"

 

앞장 서서 걷던 선배가 걸음을 멈추고 그 놈이 그 놈은 복장의 전경 무리에 대고 말을 겁니다.

피는 땡기는가 봅니다. 눈만 보이는 전경 헬멧 속에서 일 년 전 입대한 '동생'을 찾아낸 겁니다.

 

" 밥은 먹었냐?"

 

"말 시키지 마. 저기 중대장 보고 있어."

 

"아, 그래. 엣다, 있다가 뭐라도 사 먹어."

 

오천원을 건넵니다. 동생이 모른 척 하고 서 있자, 선배는 중대장에게 달려가 뭐라고 이야기를 걸더니

다시 동생에게 달려 왔습니다.

 

"거봐, 이 새끼야. 받아도 된다잖아."

 

"고, 고마워. 형."

 

전경 헬멧을 툭툭 쳐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매맞거든, 전화해. 경찰서 앞에서 대모해 줄라니까." 

 

==========

 

"난 오늘 신촌으로 간다. 그리로는 오지 말아라. 다치지 말고."

 

'기동타격대 반장'인 아버지가 데모에서 전조(데모대에서 선봉을 뛰는 전투조 라죠)를 뛰는 대학생 아들에게 

말을 건넨 곳도 아침상이 차려진 '식탁' 앞 입니다. 고집쟁이 3대 독자를 차마 자신의 손으로 잡을 수는 없었던거죠.

 

묘하게도 이들은 대립되는 이데올리기 앞에서 '먹거리'를 함께 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문제는 '모두'냐 '소수'냐의 문제겠지요.

한 봉지의 라면이 별 생각을 들게 합니다. 모두가 이 잘난 시 한 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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