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매주 토요일 오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라는 주제로 총 5회에 걸쳐 강의를 하고 있다.
책을 즑겨 읽는 내게 '국립중앙도서관'에서의 강의는 의미가 매우 특별하다. 수강을 신청한 1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35명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강의 수준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의외로 수강생들이 매우 진지하게 강의에 임해 줘서 인상적이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표현 본능이 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글쓰기는 모든 사람의 ‘로망’이다. 열에 아홉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글 쓰고자 하는 욕망은 가득한데 글씨기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글쓰기에 선뜻 덤비지 못하고 있다.
한편 달리 생각하면 누구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메일 편지함을 가득 채우는 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문자 메시지에 답을 한다. 어젯밤 본 드라마의 홈피에 댓글을 달고, 내 홈피에 남겨진 일촌신청에 응할지 말지를 고민한다.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 왜 ‘글쓰기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바로 내가 매일 남기는 이러한 글들을 ‘글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댓글 달고, 덧글 붙이고, 카페나 블로그, 홈피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며 자기만의 글쓰기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여러분은 작가이면서 기자이다. 또한 모든 작가와 기자의 독자인 셈이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사람들이 마음껏 내쏟은 정보 속에서 유영하며 사회 정서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자니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거짓된 정보가 남발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자신이 쓴 글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미숙한 일부 사람들로부터 오는 폐해를 발견하고 정화시키는 것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편 오늘날 자유로운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의견수렴, 경청의 자세일 것이다. 기성세대는 신세대의 정서를 이해하려 하고,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 속에서 정당한 논리를 찾는 사회적 성숙함이 이뤄져야 한다.
오늘날 글쓰기에 능숙한 사람은 일상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면 글로써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들은 다양한 수단과 매체를 통해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블로그 글을 모아 블룩Blook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책을 만들고, 전국의 시민이 기자가 되어 온라인신문(오마이뉴스)을 만드는 것이 좋은 예이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은 트위터에 올린 140자의 글들을 모아 지난 해 책을 만들었다. 케이블 채널의 뉴스본부장도 트위터 글로 '단상집'을 준비중이다.
일방적으로 뉴스를 지켜보던 시대는 지났다. 내가 본 뉴스에 대해 평을 하고, 내 스스로가 뉴스를 만드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또한 내가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마음껏 표현하기를 요구하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이 모든 표현활동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글쓰기’이다.
이런 것만 봐도 오늘 우리가 꾹꾹 눌러대는 글자들 역시 글쓰기였다는 걸 알게 한다.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는 독서의 그것에 못잖게 대단한 것 같다. 지난 주 수강생들이 강의에 임하는 자세나 질문의 수준만 살펴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것은 단 두시간 강의를 위해 서너 배의 시간을 들여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내일은 지난 시간에 다하지 못했던 작문과 퇴고를 마무리하고, SNS 글쓰기와 블로그 글쓰기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내일있을 수강생과의 스파링이 기대된다. 지난 주말 다소 무리를 한 것이 몸살과 감기로 이어져서 컨디션이 바닥이다. 오늘까지만 아프기를 바랄 뿐이다. -Richboy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