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불안’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시의 책<불안>에서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 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왜 우리는 불안한가? 풍요로움의 시대, 그 어느 때보다 물질은 물론 지식과 수명, 기회 등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이 없는 오늘날이지만 이와 동시에 불안의 수준은 높아졌다. 다시 말해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버린 것이다.
특히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종류의 불안 중 사회적 지위(status)와 관련된 불안이 가장 크고, 그 가운데 베이비부머를 뛰어넘어 최다 인구가 포진되어 있는 40대는 가장 불안한 세대다. 그래서일까.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지난 생을 돌아보게 되면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마흔의 서재>,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등이 많이 읽혔다. 흔들리는 중년에게 길을 보여주는 ‘고전’이 유독 읽혔고,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의 <하루 15분 정리의 힘>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 인맥에 대한 정리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만성화된 불안감에 지쳐버렸다.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출간 직후 한국 직장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성과주의의 사회 속에서 강조되는 ‘긍정의 정신’을 비판하고, 이러한 자기 착취의 사회 속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했다. 경제적으로 팍팍한 삶 가운데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의 작은 열망이 ‘집짓기 열풍’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땅콩집이라 해서 도시에서의 획일화된 삶을 벗어나 한결 실용적인 형태를 띠어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꿈꾸기도 했다.
한편 불안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위로와 위안을 바랐다.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신뢰의 위기’에 대한 대답으로 ‘진정성‘이 화두가 되었다. 그래서 불안에 대한 해결책으로 힐링과 멘토링의 키워드가 국민을 사로잡았다. 먼저 힐링이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2012년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2010년 12월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누적판매부수 200만 부를 거뜬히 넘겼다. 두 번 째 에세이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역시 지난 가을 출간 이후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럼 멘토링은 누가 책임졌을까? 하반기에 가장 뜨거웠던 키워드를 고르자면 역시 ‘안철수 현상’이다. 한창 그의 대선 출마 여부에 촉각이 곤두세워져있던 시기에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은 대한민국 출판시장의 모든 기네스를 갈아 치우며 단기간에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그렇다면 2013년을 이끌 트렌드는 뭘까? 아마도 ‘경제의 빙하기’일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년을 전망한 <2013년 세계경제대전망>에서는 한국경제가 소비와 투자, 수출부진 등 내수와 외수의 부진으로 인한 트라이다운Tri-down에 직명하고 있다며 2013년 한국경제의 화두는 단연 부동산 시장과 일자리 전쟁으로 내다봤다. 지속되는 경제 불황에 국민들의 지갑은 바닥났다. 소비나 저축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국민총처분가능소득(2012년 2분기)은 318조8000억 원으로, 전 분기 318조7000억원보다 1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여윳돈이 바닥나면서 돈을 빌려 살림을 꾸려가는 사람이 늘어 ‘가계부채 1,000조의 시대‘가 되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은 저축할 여윳돈은 고사하고 생계를 꾸려갈 돈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극심한 내수 부진을 겪고 있는 지금도 이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위기감도 오래되면 무뎌진다.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래는 벌써 우리 곁에 와 있고, 내일의 트렌드는 이미 어제부터 흐름을 이어 오고 있다. 그 흐름과 미래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트렌드 읽기의 즐거움이다. 2013년 한국인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즐기고 어떤 일에 열광할 것인가. <트렌드 코리아 2013>에서 서울대 소비자학과의 김난도 교수는 올해 대한민국을 불확실성, 경쟁, 상시위험의 사회, 한마디로 바짝 긴장한 ‘날 선 대한민국’으로 보고, 올해의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빌리고, 함께하고, 나누면서 소유보다 향유를 택한다. 북유럽의 바람을 타고 온 스칸디맘은 디자인과 스타일 분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까지 바꾼다. 팍팍한 현실을 미각의 풍요로움으로 채우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 년 사시사철 시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기를 원한다. 1인 가족의 증가는 혼자서 고품격 휴식을 취하는 라운징 트렌드를 이끌고, 온갖 물질적 정신적 독소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디톡스 열풍이 분다. 세상은 이미 난센스가 넘치기에 그저 재미있기만 하면 용서가 된다. 경쟁과 일에 지친 사람들은 아예 자신을 소진시키기를 열망하고, 100점짜리 제품과 서비스보다는 적절한 불편을 선택한다.”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사람들은 바로 20대다. 20대와 가장 많은 소통을 하고 있는 저널지 ‘대학내일’은 <20대를 읽어야 트렌드가 보인다>에서 20대들이 위로받기를 넘어 스스로 진화하여 액션을 취하며 ‘나만의 스토리’를 찾고, 스마트폰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며 디지털 네이티브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았다. 20대는 ‘꽤 괜찮은 저가’에 지갑을 열고,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한 해가 된다고 전망했다.
한편 베이비부머 세대 이후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는 30, 40대는 어떨까? 트렌드 읽어주는 남자 김용섭은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이라는 부제로 <라이프트렌드>를 냈는데, 저자는 지난 해 대선을 앞두고 ’모두, 함께‘ 힘을 모으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면, 새 정부 출범 1기인 올해는 보다 개인 즉 ’나‘에 집중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민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는 ’재미와 놀이‘에 치중할 전망이라고 했다. 오늘날 40대는 10대 때 88서울올림픽을 지켜보고 교복 자율화를 겪었으며 소련의 몰락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사건도 경험한 세대다. 아울러 햄버거와 피자 등을 처음 소비했으며, 20세 전후에는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가 되면서 배낭여행을 비롯한 해외여행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세대, 한마디로 쫌 놀아본 세대인 것이다. 오늘날 패션과 스타일에 민감하고 오토캠핑과 야구를 즐기며 해외여행을 본격 소비하는 40대 초중반 세대에 대해 저자 김용섭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40대는 이전의 40대와 달리 패션과 스타일에 아주 관심이 많다. 다시 돌아온 오렌지족들은 40대를 젊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명품 소비에서도 큰손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충분한 40대 남자에게 명품은 자존감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선택 중 하나다. 20대였을 때는 돈이 없어서 고가의 명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못했지만 40대가 되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어릴 적 동경했던 명품을 직접 소비하게 된 것이다.”
지난 해 2012년 인기를 모은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네 남자는 1972년생, 91학번 동갑내기다. 과거 40대가 진짜 '아저씨, 아줌마'였다면 '신사의 품격'의 40대는 약간 나이가 든 오빠였다. 한마디로 요즘 40대는 그냥 40대가 아니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에 있는 장난감 테마관 '토이 & 하비'는 '좀 놀아본 오빠'들을 위한 공간이다. 여기서 판매되는 장난감은 무선조정 자동차나 비행기, 헬기 등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돈이 많아서일까? 아니다. 의식주에 쓰는 돈은 최대한 줄이면서도 취미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그들에게는 당장 즐겁고 행복한 것이 가치있는 것이고 여기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 난 라면을 먹어도 개에게는 스테이크를 먹이는 시대, 이는 결혼하지 않는 30~40대가 늘면서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편 경기불황으로 실업이 늘고, 아파트 값이 하늘을 찌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 1인 가족의 증가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 한 집에 가족이 아닌 1인들이 뭉쳐 사는 형태가 떠오르고 있다. 청년 실업률도 높고 비정규직도 많은 요즘, 젊은 1인 가구의 연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2013년은 뱀의 해다. 뱀은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동물임과 동시에 생존력 강하고 지혜로운, 거기다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영물이기도 하다. 아울러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는 첫 해, 우리 위기 운운하며 움츠려 들 것이 아니라 부디 뱀의 생존력과 지혜를 닮는 2013년이기를 바란다.
'(1 st)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 > 언론,미디어의 반응'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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