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눈감아야 할 100가지 이유
동서고금의 성공하는 리더들의 습관 중에는 독서와 함께 종이신문 읽기가 손꼽힌다. 리더의 출근길에는 항상 신문이 들려있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잠깐의 시간을 두어 일간지와 경제신문을 읽으면 세계의 어제를 알 수 있고, 오늘과 내일을 내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도 옛말이 된 듯하다. 오늘날의 아침 신문엔 의견과 가십, 광고와 선전만 가득할 뿐, 정작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정보는 거의 없어 보인다.
당장 주위에 굴러다니는 신문을 한 번 펼쳐 보자. 우리나라 거대 종합 일간지 지면의 40% 정도가 광고이고, 부동산, 건설, 주택시장 관련광고가 대부분이다. 기사는 또 어떤가? 포털사이트의 첫 화면처럼 대중의 관심public attention을 끌기 위한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그득하다. TV를 켜도 마찬가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 시간만 되면 즐겨보던 '뉴스 프로그램'이 꽤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말 그대로 '그 놈이 그 놈'이다. 인터넷을 화면으로 그대로 옮긴 후 앵커들은 프롬프터로 읽어내고 있다. TV 프로그램중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 뉴스라던데 요즘도 그럴까?
대한민국 언론에 진실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 온전히 세상을 읽고 싶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다. 언론의 본분은 ‘대중의 관심사’가 아닌 ‘대중에게 필요한 사안’들이 아니던가? 언론은 지금 ‘직무태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의 경제가 요동쳤던 2008년 가을, 뉴욕의 주식시장에서 다우지수가 하루에 500포인트가 넘게 떨어지고, 리먼 브러더스처럼 파산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들의 주가가 20~30%씩 폭락했다. 세계 최대 보험회사였다가 파산한 AIG는 단 하루 만에 주가가 60%나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이 시기(9월1일~12월 31일) 미국 최대 경제신문 ‘월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기사 중에 금융위기라는 말이 1,743번이나 언급되었고, 공포fear 라는 단어는 587번, 공황panic 이라는 단어는 351번 언급되었다. 하지만 뉴욕과 무려 12,400여 킬로미터 떨어진, 14시간 시차의 한국의 한 대표적인 경제신문은 금융위기라는 단어를 월 스트리트 저널의 3배 가까운 4,870번이나 언급하며 파산위기에 직면한 미국보다 더 ‘공포’스럽게 금융위기를 보도했다. 이러한 자극에 한국의 투자자들은 동요되었고 자연히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건데 언론의 사명은 필수적 사회 현안을 대중이 알기 쉽게 전달해서 대중을 깨우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왜 이처럼 대중의 관심에만 주목하고 부풀리려하는 것일까? 이유는 대중의 눈길이 가는 곳에 ‘광고주’가 있기 때문이다. 상업주의 언론에서 기사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단이 되었다.
답답한 것은 오늘날이 뉴스 비즈니스News Business의 시대인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신문을 펼쳐 뒤지고 뉴스채널을 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9시의 거짓말>은 일종의 내부고발서다. KBS에서 탐사보도 영역으로 ‘이 달의 기자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최경영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KBS를 비롯해 상업주의 언론으로 전락한 한국 언론을 비판하고, 그런 언론에 수십 년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휘둘려온 한국 대중도 함께 비판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바라보는 눈이 기자의 시선이 아닌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부자, 워렌 버핏이라는 점이다. ‘워렌 버핏은 신문기사를 어떻게 바라볼까?‘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찾고자 하는 답이었다.
“한국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워렌 버핏을 해석했습니다. 워렌 버핏이 말하는 기업의 본질 가치와 한국 언론의 진실을 등가로 보았습니다. 워렌 버핏의 상식과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대조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워렌 버핏의 상식이 한국 언론의 몰상식보다 기업의 본질 가치나 진실에 훨씬 더 가까운 길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세계 최대 자본가의 상식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한국 언론의 몰상식보다는 훨씬 효용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10~11쪽)
워렌 버핏이 뉴스를 대하는 관점과 철학은 언론과 대중, 언론 보도와 주식시장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낯설게 한다. 한편 주식 투자자로서 그의 삶과 가치관은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워런 버핏은 1년에 50주 동안 생각하는데 쓰고, 남은 2주 만을 일한다고 한다. 그 역시 매일 신문을 펴서 뉴스를 읽지만, ‘뉴스에 사고 파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투자론은 차라리 선문답과 같다. “시장은 대체로 옳다.” “나는 내가 투자한 기업의 다음 분기 실적도 알 수 없다.” “언제 네 머리를 깎아야 할지를 이발사에게 물어보지 말라.” “주식의 포트폴리오는 6개 기업 정도면 충분하다.”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주식투자자가 할 일은 별로 없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절감하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부자의 투자 철학은 진실에 다가서고 싶다면 긴 안목을 가져야 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투자할 기업을 선정할 때도 당장의 이익이 아닌 10년 후를 내다봐야 하고, 50주 동안 신중에 신중을 더해 선택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점도 항상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판단의 근거는 늘 자신이 검증한 기업의 본질 가치에 둔다.
반면 신문과 뉴스 속에 비춰지는 한국 언론은 항상 초단위로 호흡한다. 오늘 얼마나 오르고 내린 수치는 큰 뉴스이고, 이슈가 된다. 언론은 항상 진리를 구현한다고, 항상 사실만을 쓴다고 주장한다. 기자들은 자신이 많이 아는 줄 알고, 상당히 객관적인 척 한다. 그리고 시장은 항상 옳다고 말하고, 시장을 항상 믿는다고, 그리고 대중의 뜻을 항상 신뢰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의 가사는 대부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토마스 제퍼슨이 “착오와 거짓으로 점철된 신문을 매일 읽는 사람보다 신문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 좀 더 진실에 접근한다.”고 일갈했을까.
오늘자 신문의 뉴스에 주식을 사고파는 대중은 언론에 의해 들쥐 떼처럼 몰려다니며 벼랑 끝으로 치닫지만,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들은 뉴스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기업을 탐방하고 기업주를 직접 만나 자신이 알고자 하는 정보를 이미 획득했기 때문에 뉴스는 가십거리는 될지언정 정보로서의 효용가치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역으로 뉴스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한다. 워렌 버핏과 같은 현명한 투자자 역시 대중들의 속성을 이용해 기회를 찾았다.
뉴욕 증권가에서 2,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고향 오마하에서 평생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워렌 버핏. ‘언론’으로부터 휘둘리지 않도록 물리적인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 ‘주가는 인기투표가 아닌 체중계’여야 한다는 가치투자의 전제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뉴스읽기에 색안경이 필요한 개인투자자라면 일독할만하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40호)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9시의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