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며칠 전 15년 만에 만난 고교동창생을 만나니 그 말이 새삼스럽더군요. 쓰디 쓴 커피 한 잔을 놓고 한 시간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마음은 이십 수년 전 여드름투성이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가정형편으로 거의 세 달 가까이 점심을 반친구들의 도시락으로 떼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 중에 제 도시락에 숟가락을 대자 "야! 니, 거지냐?" 핀잔을 줬던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며 싸웠었는데, 이젠 서로의 일정이 없었더라면 소주 한 잔 놓고 밤을 하얗게 새우며 옛날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과거가 소중한 건, 그 시절에는 어떠했든 기억이라는 포장에 싸이면 아련한 무엇이 되는 덕분인가 봅니다. 주말마다 '응사'에 열광했던 이유도 그 덕분이었지요.
이번엔 하루키를 통해 옛날을 추억합니다. 세월을 더듬어 80년대를 갑니다. 문득 생각하니 까까머리, 먼지 냄새 가득한 교복, 버스 토큰, 팝송이 떠오릅니다. 물론 매일 거듭된 엄마 잔소리도...함께 '스크랩'하시죠.^^ - Richboy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1980년대의 추억을 스크랩하다!
이 책은 마이클 잭슨이 전세계 뮤직차트를 석권하고, 파랑 펩시와 빨강 코카콜라가 열띤 경쟁을 펼치고, 로키와 코만도가 테스토스테론을 마구 뿜어내던, ‘로망’ 가득한 시절의 문화를 작가 특유의 심플하고도 유쾌한 문체, 리듬감 넘치는 필치로 1980년대를 그려낸다. 더불어 청년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볼 수 있는 즐거움이 눈에 띈다.
담배를 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거나, 머리숱도 별로 없는 아저씨 빌 머레이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에 대해 질투 섞인 투정을 부리는 등 우리네 모습들과 다르지 않은 자연인의 모습에 정감을 더한다. 특히 두 번째 장에는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에 동행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일러스트를 함께 수록해 오랜 콤비 ‘무라카미 하루키×안자이 미즈마루’가 빚어내는 글과 그림의 하모니를 맛볼 수 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1980년대, 하루키 씨와 제대로 추억하기
걱정 마세요, 재미있으니까!
비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더 스크랩》을 새롭게 단장해 선보인다. 원문을 충실하게 반영한 새 번역에 제목과 꼭 닮은 커버재킷을 입은, 한층 알찬 구성이다. 사진삽화와 앙상블을 이뤘던 원서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기존 한국어판에 없던 40여 컷의 일러스트도 새로 그려넣었다. 구성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뉜다. 처음 장은 《에스콰이어》《롤링스톤》《라이프》《뉴욕타임스》 등, 신문과 잡지에서 흥미가 당기는 기사를 스크랩하여 쓴 81편의 ‘스크랩’ 에피소드이고, 개장을 앞두고 있던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기’와 1984년 LA 올림픽 시즌에 쓴 ‘올림픽과 관계없는 올림픽 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특히, 둘째 장에는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에 동행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일러스트를 함께 수록해 오랜 콤비 ‘무라카미 하루키×안자이 미즈마루’가 빚어내는 글과 그림의 하모니도 맛볼 수 있다.
《더 스크랩》은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격주간지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들을 한데 엮은 책이다. 지금은 환갑이 훌쩍 넘은 작가가 서른다섯 살이던 시절이고, 작품으로 보면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발표한 즈음이다. 책에 실린 것처럼, 마이클 잭슨이 전세계 뮤직차트를 석권하고, 파랑 펩시와 빨강 코카콜라가 열띤 경쟁을 펼치고, 로키와 코만도가 테스토스테론을 마구 뿜어내던, ‘로망’ 가득한 시절이다. 카렌 카펜터스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유명을 달리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태어난 아기들이 벌써 스물아홉, 서른이 되었으니 꽤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되는 셈이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오늘도 그 시절의 문화를 향유하며 살고 있는 데다, 무진장 재미있으니까! 작가를 닮은 심플하고도 유쾌한 문체, 그 특유의 리듬감에 실린 1980년대가 이제 한국 독자에게 응답할 차례다.
작가적 근력과 재기 넘치는 순발력, 여유 있는 유연성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세계적인 작가의 기초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메타 에세이
《더 스크랩》을 읽는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자연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다는 데 있다. 육 개월 전에 담배를 끊었는데 꿈속에서 무의식중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꿈에서도 깜짝 놀랐다며 애꿎은 말보로 광고를 타박하고(《말보로 나라로 오세요》), 머리숱도 별로 없는 아저씨 빌 머레이가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냐며 질투 섞인 투정을 부리고(《빌·‘고스트 버스터스’·머레이》),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가만히 있어도 한 달에 기만 부가 팔리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한다(《1951년의 파수꾼》). 하루키 에세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 음악, 책 이야기도 풍성하다.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을 세 번이나 봤다며 스타워즈 예찬론을 늘어놓고(《스타워즈의 츄바카》), 스티븐 킹의 팬이지만 그래도 《쿠조》는 좀 지루했다며 솔직한 독후감을 토로한다(《스티븐·공포·킹》).
“〈에스콰이어〉 12월호는 《호밀밭의 파수꾼》 출판 삼십 주년을 기념해서 ‘중년을 맞이한 파수꾼’이라는 작은 특집기사를 꾸몄다. 소설도 생일을 축하받다니 대단한 일이다. 흔히 이십 년 지나도 평가가 변하지 않으면 그 소설은 진짜라고 하는데 (…중략…) 그런데 가만히 내버려둬도 한 달에 이삼만 부가 팔리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_《1951년의 파수꾼》에서
“지난번에도 이 칼럼에서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쿠조〉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에는 같은 스티븐 킹 원작으로 존 카펜터가 감독한 《크리스틴》 이야기다. 유감스럽게도 이 원작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하여간 줄줄이 신작을 내는 사람이라) (…중략…)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영화는 참으로 재미있다. 어디가 재미있는가 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의 빈티지 자동차인데, 그 점이 재미있다.”_《스티븐 킹&존 카펜터》에서
하여간 기분 나쁘지 않게 ‘돌직구’를 날리는 법을 하루키만큼 잘 아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한편 아침 발기 횟수에 대해서 집요하리만치 상세한 통계를 전달하고(《늙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성병 헤르페스에 대한 정보를 담담하게 설명하고(《헤르페스1,2》), 유명인사의 연수입을 키워드 삼아 당당하게 돈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레지 잭슨과 빌리 조엘, 두 사람이 100만 달러를 버는 방법》) 등, 다소 주뼛거릴 수 있는 화제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사소할 뿐이라며 이삿짐을 싸다 벽장에서 나온 오래된 앨범을 보듯 무심코 봐달라고 작가는 책머리에서부터 겸손을 표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글들의 백미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빤한 순간을 무라카미 작가만의 눈으로 스크랩하여 들려주는 점일 것이다. 작가가 ‘로키’ 실베스터 스탤론을 두고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로키’가 뻔한 시리즈라고 한다면 스탤론의 인생도 뻔한 인생이다(어쩌면 누구의 인생이건 뻔한 인생이다). (…중략…) 신의 계시라고 말하지만, 딱히 그 정도는 아니다. 여자, 술, 사치, 좌절…… 성공에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흔히 있는 얘기다. 그러나 그 흔히 있는 얘기를 ‘신의 계시’라 생각하고 대작 영화를 만들어 히트시킨 점이 스탤론의 대단한 점이다.”_《호랑이 눈·‘로키’·스탤론》에서
그런 점에서 하루키도 꼭 마찬가지로 대단하다. 일상이라는 아득한 크레바스에서 빛나는 순간을 길어올려 이렇게 걸작 에세이로 풀어내 히트시키니 말이다. 역시 하루키!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 만으로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는 작가답다. 서른다섯, 청년작가 하루키의 존재감으로 반짝반짝하는 《더 스크랩》은 그 시절 청년들은 물론이고 삼십 년 후 오늘의 청년들에게도 흥미진진한 독서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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