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내몸 A/S 이용 설명서'
시대는 바뀌어 이제는 소비자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에 불만이 생기면 더이상 '소비자보호센터'에 연락해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2-3달을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의 홈피나 블로그에 그 불만사항을 온 세계에 알리고, 의견을 나누어 피해고객끼리 힘을 합쳐 '개선'과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 큰 소비자'의 시대가 온 것이다. 단 한가지 '의료서비스'만 빼고.
같은 '서비스'인데도 좀처럼 소비자가 기를 펴지 못하는 곳이 '병원과 약국'이다.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소비자, 고객'에서 '환자患者' 즉 근심을 가지고 있는 아픈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되면서 소비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약해지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세상의 시시비비는 죄다 알고 있는 사람들도 '흰가운의 그들'을 찾아가게 되면 '개장수를 만난 황구黃狗 꼴'이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들이 관장하는 것이 다름아닌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두려움을 감싸주고, 대신처리해주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자세 또한 꼿꼿하기 그지없다. 그 이유를 거듭 생각해보니 의사들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환자'들이 많다는데 있다. 제 몸을 보석처럼 여겨야 한다는 웰빙의 시대인 탓도 있지만 당당히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입는 국민이다 보니 기침만 세번을 연이어 하고 방귀소리만 이상해도 병원을 찾을 판이다. 한정된 병원에 찾아드는 환자가 늘다 보니 병목현상으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죽어나가는 현상마저 일어나게 된다. 제 목숨이 달린 일을 맡겨야 하고, 누구보다 빨리 진료를 받으려 하니 '의사의 손'은 '신神의 손' 못지 않고, 고평가를 받는 의사의 지위에 반비례해 '환자의 권리'는 저평가되어 가기만 한다.
두 해 전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한 후 병원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병원의료 서비스' 문제에 대해 불만과 걱정을 했었는데, 그런 중에 우연히 만난 책이 있다. [양,한방 똑똑한 병원 이용] 이다. '의료 소비자의 당당한 권리 찾기'라는 매력적인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보통 의사들이 낸 책이라고 하면 [질병]을 설명하고, 그 치료법과 예방책을 주로 다루고 있고, 마지막엔 자신의 치료법으로 시술하고 있는 병원을 알리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부제는 일종의 '양심선언'같은 뉘앙스를 띠고 있어 흥미로웠고, 특히 의사이자 한의사인 저자의 이력이 돋보였다.
저자는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지시와 순종, 또는 단순히 치료하는 자와 치료받는 자의 수직적 관계로만 인식되고 있는데, 이러한 의료 소비자의 권리의식 부족과 주체성 결여가 결국 병원을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의료 소비자가 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갖춘 똑똑한 소비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병원의 의료 정보 독점은 유니크한 지식을 가진 권력자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가하는 횡포나 다름이 없는데, 지식의 벽이 상당히 높은 의료계에서 이렇듯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의료 소비자들을 위해 [치료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제공했다는 점에서 반가움이 앞섰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환자들이 질병에 닥쳤을 때 제일 먼저 고민하는 문제 '병원(양방)을 갈까, 한의원(한방)을 갈까?'하는 문제에 대해 양방 진료와 한방의 진료의 특성과 장단점을 알리고, 저마다 찾아야 할 질병의 경우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주류의학을 보완 대체하는 치료법인 대체의학에 대해 설명하고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두번 째는 양,한방 병원을 똑똑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크기와 단계별로 차이가 큰, 양방 병원에 큰 비중을 두었다. 우선 병원의 규모에 따라 보건소, 의원, 종합병원, 대학병원으로 나누고 병원에 따라 소비자에게 장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부분에서는 '보건소'에 대한 설명이 유익했는데 영유아, 임산부, 성인대상 혜택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특히 보건소에 따라서는 각종 물리치료와 한의 치료와 치과 치료도 받을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조금만 아파도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그 질병의 정도에 따라 보건소나 의원에서도 치료가 가능하겠다고 느꼈다. 똑똑한 환자의 좋은 병원 찾기, 좋은 의사 찾기, 양방 병원의 현명한 이용법, 그리고 진료 부분별 실속 가이드는 현명한 병원의 선택방법에서부터 입원과 수술 그리고 응급상황시 소비자와 그 가족들이 병원을 대상으로 유의해야 할 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가장 주목된 부분은 바로 '의료비를 줄이는 실속 전략'. 부르는게 값인 것이 병원의 '진료비'인데 의료 소비자로서 꼼꼼하게 짚고 넘어간다면 의료비를 줄일 수 있고, 그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놓은 부분이다. 이 부분만 읽고 기억해도 책값은 톡톡히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목된 부분은 진료에 앞서서 보험이 적용되는 진료 인지를 확인하는 방법과, 비보험 진료는 병원마다 비용에 큰 차이가 있으니 그것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 고액이나 중증 질환은 특별 지원도 받을 수 있으며, 종합검진 대신 증상별로 검사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 등이 소개된다. 또한 진료비가 과다하게 청구된 것 같다면 진료비 세부 명세서를 받아 건강보험 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 확인요청을 하라고 말하며 그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또한 병원의 불만과 불편에 대해서도 이들 기관에 당당하게 신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그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두었다. 특히 있어서는 안될 '의료사고'에 대해 사전 방지법과 그 대처법에 대해 언급한 마지막 부분은 '당하지 않으면 모르는' 특별한 노하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의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류,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至上)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 전문
의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부분에 이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양심과 위엄으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는 의사들로 가득한 세상이면 좋겠다. 하지만 환자 역시도 자신의 질병을 잘 알고, 그 질병에 맞는 병원과 의사를 찾아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현명한 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를 비롯한 그런 잠재적인 의료 소비자들에게 있어 이 책은 참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우선 한 번 읽어 본 후 병원을 찾게 될 경우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더욱 현명한 병원이용이 가능할 것 같다. 집안에 가정상비약을 항상 준비해 두듯이 한 권쯤 가지고 있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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