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이국의 땅 토론토에서 정원을 화려하게 꾸며놓고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상 느끼는 써니, 전망좋은 집을 가지고도 항상 배부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인 혜령,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난 년들' 사이에서 보다 '난 놈'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 우영. 이렇게 세 여인과 그녀들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이야기, 아니 사랑이야기가 김윤영의 소설 [그린핑거]의 대략이다. 감히 사랑이야기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사랑이야기, 즉 러브스토리라 불러야 할까를 고민해서였다(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남자가 여성 작가가 쓴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항상 꺼름직하다. 마치 거뭇거뭇한 솜털을 달고 제 정체를 몰라 두려워 하는 소년이 연신 두근대며 쓰레기통을 딛고 올라 여탕을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지금껏과는 표지도 달라 얼핏봐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추듯 의식하며 읽어대는 나를 보면 아직도 솜털이 자라고 있나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읽는 이유는 지금 이 책을 읽고 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다.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을 알기 위해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대를 보내는 이성異性의 생각들은 짐작도 못했던 것들이어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붙잡고 '이 글의 표현대로 느낀 적이 있는가?' 묻고 싶을 정도다. 다름을 알게 하고, 그래서 더욱 알고 싶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랑으로 맺어진 커플이 그들의 결실을 보려 함에 있어 두려워 하는 것들, 그리고 있어야 할 대상이 없어 부족함을 느끼는 커플과 소중한 결실을 잃어버린 커플의 마음이 전반부에 걸쳐 표현된다. 이것은 써니와 혜령만의 케이스가 아니라 노령화로 인해 미뤄왔던 아이갖기를 정작 바라게 될 때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의 심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남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과연 내가 저렇다면...'하고 고민하게 된다. 후반부에 나타나는 '잘나가는 직장녀' 우영만큼만 '계산적'이라면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면 언제든 다시 낳을 수 있고, 잘못되면 서로 합의하에 중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자식에 대한 20세기와 21세기의 가치관의 차이인가? 계산력의 차이인가? 헛갈리게 한다. 또한 사람이 좋아지는데 있어서 학력과 배경을 베이스로 깔아야 한다는 이 억지스러운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결혼이 끝이 아닐진대 우영이 써니와 혜령같이 되지 말란 법은 없는데, 그들의 계산에 의해 맺어진 사랑은 앞의 두 여인의 상황이 되면 또 그들의 계산법대로 해결되는 걸까? 혼란스러워진다.
이 세사람의 공통은 '부족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그래서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때보다 풍족한 이 시대는 오히려 '부족감이 더해가는 시대'인건가? 그런 그녀들의 절반인 남자들은 어떨까? 채워주고 싶지만 못하는 그것 때문에 낙심할까? 아니면 한없이 바라는 그들때문에 실망할까? 세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게 하고 싶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 책은 '우울'하지만 '러브스토리'인 것은 확실하다. 그 말은 이 시대가 충분히 공감하는 러브스토리라는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커플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일까? 그런걸까? 많은 생각을 던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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