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학창시절에도 '미움받는 아이'는 있었다. 군대에서도 이른바 '고문관'이라고 해 고참들의 꾸중을 도맡아서 듣기도 했다. 누가 먼저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는 몇몇에게 미움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함부로 거들 수 없는 것은 대다수가 미워하고 있기에 애잔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애써 무시했었다. 이제와 그들을 생각해 보니 주늑들어 움츠려 있는 그들의 어깨와 반쯤 내리 깐 멍한 시선이 떠오른다. 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 게임하자. 치카 데리고." 2학년 3반의 어느 점심시간, 이 누군가의 입에서 제안된 이말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심심하잖아. 장난인데 뭐 어때?" 로 동의를 구하며 시작된 그녀들의 게임은 같은반 친구 치카를 따돌리는 일이었다. 집단 따돌림, 소위 왕따를 말하며 일본말 이지메イジメ 에서 비롯된 무서운 게임이다. 일주일이 넘어 계속 되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눈을 쫓으며 도와달라는 표정을 짓는 치카를 외면하기 힘들어 스이카는 "이제 그만해!"라고 말한다. 다음날, 교실 자신의 책상위에 흰 국화꽃이 놓여 있다. '어제부로 다치야마 스이카는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스이카 그녀가 왕따의 대상이 된 것이다. 16세의 나이로 소설을 낸 하야시 미키의 소설[미안해, 스이카], 원제목은 いじめ 14歳のMessage -이지메(왕따)14세의 메시지 이다.
<국내판 표지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포스토들, 마지막 일본원서 표지>
이 책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집단따돌림(이하 왕따)을 당한 여학생이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아픈 경험을 소설로 쓴 소설이다. 왕따를 당한 동급생 치카를 돕다가 오히려 왕따의 대상이 되어버린 스이카는 같은 반의 요우꼬와 그 무리들로부터 참을 수 없는 시련들을 겪는다. 처음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치카마저 스이카를 외면하면서 그 슬픔과 괴로움은 더해 간다. 섬득한 아이들이 행동과 그것을 온몸으로 부딪혀 막아내며 '절대로 지지 않을거야'라며 스이카는 버텨내지만 날로 더해가는 그들의 괴롭힘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다. '지겨워. 지겨워 죽겠어. 이내 끝을 내야 할 때야.' 여기까지의 내용으로 본다면 비극적인 성장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이카의 투신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낸다. 유체이탈 상태의 스이카는 사고후 자신을 둘러싼 지난 날의 일에 대해 치카는 밝히게 되면서 모든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피해자이기도 했던 저자는 스이카의 입을 빌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용기가 있다면 자신을 '쉬게 할 용기'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니 등교거부든 뭐든 방법을 찾으라. 분명한 것은 죽는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혼자서 감내하지 말고 외부로 표출할 수 있는 용기있는 행동이 벗어날 수 있는 방법임을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난 가해자의 두목격인 요우꼬에 주목하고자 한다. 왕따를 주도한 학생은 다른 아이에게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들은 욕을 퍼붓거나 고립시키고, 위협하고, 물건을 손상시키며, 감정적 신체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자기들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킨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시킴으로써 다른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 아이들은 자신도 부모나 형제로부터 왕따를 경험했으며 자신의 보금자리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런 행동을 배웠을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가족과 사회에서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것을 겪었는데, 학교에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한편 희생자는 자신이 고립됐으며, 불안하고, 자신감이 부족하여, 적합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대접받는 것을 느끽게 되면서 어울리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영향은 오래가기 때문에 왕따가 위험한 것이다. 왕따에 동조한 아이나 친구를 위해 나서지 못한 아이들도 죄책감으을 느낄 수 있다. 슬프게도 왕따의 희생자는 제대로 지도되지 않는다면 쉽사리 가해자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왕따를 겪었던 치카처럼.
일본사회에서 만연되고 있는 말 중에 마케이누(負け犬 -まけいぬ)란 표현이 있다. 원래는 '싸움에 져서 꼬리를 감고 도망치는 개'를 뜻하는데, 예를 들어 '30대 이상, 미혼, 아이가 없는 여성'을 일러 마케이누라고 한다.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이지만, 일본여성은 20대 안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는 전통이 있는 일본사회에서 20대에 경쟁에 뒤쳐저 30대까지 결혼을 못한 여성을 비꼬는 말인데, 이처럼 일본은 알게 모르게 '경쟁부추기는 사회' 이기 때문에 경쟁에 조차 끼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부류를 선정해 경쟁에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분노를 그들에게서 풀어내려는 비열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본디 내성적이고, 표현을 자제하는 이들이었던 만큼 왕따의 대상에 행하는 짓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인간적이고 포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만 그럴까?
일본의 여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지만, 이 무섭고 슬픈 이야기는 결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가족과 자녀들이 오늘도 가해자로, 피해자로, 그리고 가슴졸이며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어 겪는 우리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왕따문제의 단절은 그들을 통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무한경쟁사회'가 된 것을 당연한 일인 듯 아주 잘된 일 인듯 생각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먼저 자성해야 할 문제이다. 이 소설을 통해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무서운지를 독자가 가슴으로 체험느낄 수 있다. 스이카와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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