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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철학·예술·교양

최고의 민속공예품, 떡살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책!

by Richboy 2008. 10. 24.

 

 

 

최고의 민속공예품, 떡살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책!

 
책을 펼치는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공극(, air gap) 하나 없이 속이 꽉찬 나무들이 엿가락처럼 자유자재로 휘어져 있고, 평평한 면 하나 없이 제각각의 모양을 띄며 작품으로 아로 새겨져 있다. 석고처럼 쉬이 깎이는 나무가 있던가? 싶을 정도로 정교한 그림과 무늬들이 새겨진 이 나무들은 하나같이 멋들어진 작품들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보는 것이 아니란다. 떡에 모양을 찍어내는 떡살이란다. 우리나라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 뒤늦게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여름 나는 [아름다운 떡살무늬]라는 책을 읽고 보며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그에 앞서 지금 소개하는 이 책 [소중한 우리 떡살]이 우선봐야 하는 것이란다. 지난 번 리뷰가 떡살에 색을 입혀 종이에 찍은 탁본들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떡살 그대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20년을 전통떡살 제작에 정성을 쏟아부은 떡살 제작 기능보유자 김규석님께서 제작하신 책이다. 김규석 님은 다양한 떡살을 수집해 연구하고 자료를 취합, 분리하여 나름의 체계를 세워 홀로 하기에는 매우 버거운 작업을 17년 동안 해오면서 약 700여 점의 실물을 탁본으로 만들어 각종 무늬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실물과 도면을 완벽하게 정리하셨다. 그분의 작업을 높이 사는 부분은 전통기능 전승자로서의 책임을다한 것은 물론, 떡살의 원형은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시대감각에 맞게 무늬들을 재구성하여 전통공계의 계승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이다. 하나하나 작품이라도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과연 떡에 무늬를 박기 위해 만든 것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우리 민족은 조상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붙여가면서 사용했기에 떡살과 다식판은 민족 고유의 정서와 당시의 사회현상을 잘 드러내는 생활도구이다. 예를 들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떡살 중에는 뒷면에 주소, 택호나 만든 사람의 수결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잔칫날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떡을 만들거나 남의 집 떡살을 빌려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겨둔 것이라 한다. 서민들이 만들어 쓰던 떡살이나 다식판은 애초부터 공예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주변에 굴러다니는 나무토막을 주워 적당히 손질한 것이다. 구하기 쉬운 재료로 사용하기 쉽게 만든 떡살은 민속예술품의 모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세월에 따라 부드럽게 닳고 기름이 벤 떡살들은 누구에게나 친숙하여 우리의 민속공예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떡살은 떡에 찍을 무늬를 새긴 판과 손잡이로구성되어 있는 단순한 도구이지만 사양하고 창의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무늬의 상징성과 예술성으로 인해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김규석님의 손을 빌어 태어난 떡살과 다식판을 살펴보면 단순하게 떡에 살을 박는 작업을 해야 하는 사용자의 노고를 충분히 고려하여 손에 잡기 쉽도록 손잡이부분을 둥그렇게 다듬고, 각진 부분이 거의 없도록 조각해 두었다. 그리고 무게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떡에 살이 모두 박힐 수 있게 하기 위해 힘을 집중할 수 있도록 고려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작고 예쁜 모양들도 많아 현대인들의 필수품에 장식용 소품으로 활용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가 밥을 지어 먹으면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만큼 떡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예전에는 사시사철 세시음식에 빠지지 않았고, 절식과 시식때에도 함께 했던 떡은 말 그대로 '무슨 때만 되면 등장하던 단골음식'이었다. 그랬기에 떡살과 다식판의 소용은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특히 떡 중에서도 절편을 으뜸으로 치는데, 그 이유는 절편의 무늬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우리 조상들은 떡에 정성을 들였고, 벽가기복의 뜻을 담은 무늬들도 새겼다. 돌이나 회갑상에는 장수해로를 바라는 무늬를 사용했고, 수복, 강녕, 부귀,다남 등의 길상무늬는 무운장구를 빌거나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할 때 많이 쓰였다. 혼례나 과거급제 행사에는 사군자나 송학등 기품있는 문양을 썼으며, 상례나 제례 때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저승에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토와 윤회의 의미가 있는 무늬를 선별하여 썼다. 그래서 절편을 먹음은 곧 떡을 만든 이의 정성과 마음을 먹는 것이었으니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었겠나 싶다.
 
  이 책에서는 특별히 다식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그것의 이름과 만드는 법 그리고 그 소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가장 주목이 되었던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저자가 직접 떡살 제작과정을 보여준 부분이다. 어느 목공예보다도 섬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그 과정을 음미할 수 있도록 했는데,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지 직장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떡살이 우리에게 주는 큰 의미는 단순히 '보기 좋게 만든 작품'이 아니라, 염원과 희망을 담아 그림으로 대신해 새기고, 그것을 떡이라는 음식에 박아 염원의 대상에게 먹게 한 '우리선조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느끼게 하는 도구라는데 있다. 그것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전통문화이며 민속공예품이 아니겠는가? 이토록 훌륭한 떡살이 한 권의 책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것을 되살리고, 아끼기 위한 노력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 떡을 사랑하는 마음도 가져야 할 것이다. 생크림 케익대신 우리의 떡을 케익처럼 현대화해서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정성과 마음이 담기 우리의 절편도 아끼는 마음이 필요하다. 특히 디자인이나 실내장식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떡살공예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왕릉속에 숨겨진 삼족오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우리 고유의 문양이라며 소중히 여겨지는 것처럼 우리의 떡살무늬 또한 현대인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규석님은 전남 담양군 대전면 다치리 1071번지 목산공예관(061-382-0057)에서 오늘도 작업중이시다. 테마가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이곳을 방문하여 우리의 떡살을 직접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미술과 문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멋지고 훌륭한 최고의 미술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