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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었다고? 그럼 청바지를 읽어봐!
가끔이지만 보는 TV라고는 '뉴스'와 'TV, 책을 말하다(즐기던 프로인데,방송이 폐지된 것이 심히 유감이다)', '타큐멘터리 류' 정도인데,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시간대를 맞춰 보거나, 인터넷에서 일부러 찾아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EBS의 [지식 e]이다. 비록 5분이지만 충분히 나이를 먹어 모를 것이 있을쏘냐 싶은 '얕은 지식'을 늘 무참하게 깨부셔줘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식 e - 2005년 9월에 기획․편성된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세 편씩 방영되며, ‘e’를 키워드로 한 자연(nature), 과학(science), 사회(society), 인물(people)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5분’ 동안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은 시청자들에게 당대의 예민한 시사쟁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일종의 TV 형식으로 진화된 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단 5분 만에 시대성과 시사성, 그리고 고민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웬만한 1시간 짜리 프로그램과 비중을 같이한다. 지난 2007년 책으로 출간된 후 지금까지 3편이 책으로 나왔는데, 이 또한 TV물 못지 않게 글과 그림을 잘 조합해 '블로그 형식'으로 엮어 많은 배움과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출간된 지 1년 8개월 만에 3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하니, 교양서로서 손색없는 책 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있고, 똑똑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에 순종하지 않고, 왜 변해가는지, 변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 변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이러한 니즈needs에 발맞춰 네티즌이 만드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국내포털의 지식in, 신지식 등 지식 알고리즘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노력 또한 대단하다.그런 발맞춤에 '책'이 동참함은 물론이다.
2년 전부터 서서히 인구에 회자되던 장소, '신사동 가로수길'에 대한 책이 있었다. [가로수 길이 뭔데 난리야?]라는 책인데,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 TBWA 사람들이 만든 책인데, 새로운 트렌드의 메카로 떠오른 '가로수길'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기존 트렌드에서 새로운 변화로의 진화를 보여준 보기드물게 참신하고 놀라운 책이었다. 그 느낌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트렌들셰터들 답게 만든 책', 딱 그랬다.
그들이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가로수길을 넘어 이제 전국 아니 전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대상에 태클을 걸었다. 바로 블루진, 청바지를 말했다. 소개할 책은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이다.
이 책은 기획부터가 흥미롭다. TBWA가 새내기 신입사원(TBWA의 ECD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의 눈빛은 블랙홀이었고, 감수성은 스폰지였단다)들을 뽑아 2008년 4월 4일 강원도의 펜션으로 데리고 가서 OJT(직장내 훈련기록)를 한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신입사원들이 만든 책이란 거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첫 느낌은 '뭐야? 베테랑들의 소산물이 아니란거야? 그럼 볼 것도 없겠네?'였다면,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TBWA사람들이 사원을 잘 뽑는군. 인물들이 앞으로 '사고(?)', 제대로 치겠네' 였다. 더욱 대단한 것은 신입사원의 OJT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 낼 기획을 한 TBWA의 발상이었다. 생각이 통통 튀는 사람들, 그들은 보면 절로 흥이 난다.
잘못 표현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 만들어지는 청바지의 수량만으로 전 세계인구 다섯 명당 한 명이 입을 만큼 쏟아진다고 하니, 청바지의 수량은 이미 세계 인구의 그것을 뛰어 넘었다. 이 책의 저자(사원이나, 훈련생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쉽겠지만)들은 인간을 점령한 청바지를 파고 들었다. 천막 - 실용 - 팍스 아메리카나 - 이념 - 보보스 - 다양화 - JEANNE 이렇게 책을 구성하고 있는 챕터CHAPTER만 보고도 알 수 있듯, 청바지의 원류에서부터 지금까지 의복으로서의 청바지와 이념으로서의 청바지, 그리고 청바지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을 한 권의 책으로 꽉 채웠다.
룁 슈트라우스가 마차를 덮는 덮개나 천막을 위해 만들어 낸 청색의 옷감이 광부들의 작업복 재료가 되었고, 실용성을 더해 프래그머티즘의 대명사로 급부상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 후로 청바지는 단순한 '옷' 이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바로 '이념의 상징물'이다. 젊음과 끈기의 상징인 동시에 노동자, 히피족, 배드 보이 이지 라이더(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대신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통기타세대, 386 세대의 상징이 되었다. 나아가 합리적인 부자 보보스와 IT의 메카 실리콘 밸리 사람들의 근무복이 되어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노트북 하나면 거처를 정할 필요없이 업무가 가능하다 해서 디지털노마드(유목민)족이라 불리는 요즘 세대들이 여전히 청바지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의복의 한 종류에 불과한 '청바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이 책을 통해 룁 슈트라우스가 청바지의 천을 처음 만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리바이스와 리Lee, 렝글러와 같은 세계적인 청바지 메이커의 탄생소식도 알게 되었다. 나의 러브마크(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제품, 기업의 측면에서는 충성고객)인 리바이스 501의 이름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 알게 된 것은 10년 묵은 체증을 풀어주는 것 같은 큰 기쁨이었다. 트루릴리젼, 전지현의 지아나 진, 조이, 빌리, 베키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베개만한 딕셔너리나 칠판 앞 선생님께 배우는 것만이 지식이 아니더라.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활자, 그 바탕엔 온갖 청바지와 역사에 담긴 그림과 사진들. 말 그대로 이 책은 종이로 된 멋진 블로그다. 포털에 이런 블로그가 있다면 하루 조회수가 몇 만은 될 것 같다. 한 해에 수 억, 수십 억짜리 광고를 만들어내는 씽크탱크들이 책을 만들었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만 원짜리와 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씩이면 그들의 생각을 싸 잡아 읽을 수 있다는 데 안반가울 턱 없다. 지식을 날로 먹고 싶은 독자라면, 최소한 지식e를 책을 읽어 봤거나, 청바지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가장 권하고 싶은 사람은 3년 전 굳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도 유행이라기에 찢어진 구제 청바지를 거액을 들여 샀더니 다음 날 아침 찢어진 틈틈을 미싱으로 죄다 박아 6.25 때 중공군이 입은 누비바지로 만든 바 있는 울 엄니께 권하고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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