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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게으름에서 비롯된 병이다?
나를 비롯해 주변에는 게으른 사람이 가득하다. 행동도 굼뜨고, 결단력도 부족해‘나무늘보’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게으름뱅이’들 모두가 자신은 게으르지 않다고 말한다. 마치 ‘미쳤다’는 소릴 들은 것처럼 펄쩍 뛰며 그런 말을 들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기까지 하며 "내가 얼마나 바쁘게 뛰며 사는 데 그런 소릴 해?" 항변한다.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니, '게으름뱅이'는 죄인시하는 때문인가 보다. 난 행동이 느리기 보다는 선택을 느리게 하는 편이다. 신중하게 생각한다고 말은 하지만, 후회를 두려워해서 결정을 망설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결정이 너무 힘이 들어서 차라리 남이 선택해주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그럴 땐 늘 스스로가 한없이 바보처럼 여겨진다. 세상이 볼 땐 천하에 둘도 없는 '게으름뱅이'인 셈이다.
우리는 매일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선택 중에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잘한 선택’이 있는가 하면, 두 번 다시는 반복하기 싫은 ‘최악의 선택’도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최악의 선택은 ‘선택을 미루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선택을 미루는 선택’은 게으름의 일부분이다. 어쩌면 누군가 대신 선택해준 길을 가기로 한 선택이 최악의 게으름일 것이다. 게으름을 알고,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어든 책, <굿바이, 게으름>은 정신과 전문의인 문효한이 썼는데, 그는 이 책에서 게으름은 본성이 아니라 자라면서 현실과 부딪히면서 상대적으로 ‘학습’하게 된 모습이라며,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살아갈 때 게으름을 떨쳐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크게 게으름에 대한 역사, 정의, 양상, 원인 등 전반적인 개념과 분석을 한 ‘새로 쓰는 게으름’과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해 본 일종의 실천편인 ‘게으름과의 결별‘로 나뉘었다. 게으름으로부터 탈출법을 알기 위해서는 게으름이 도대체 뭔지 알아야 한다는 말인데, 게으름이 게으름이지 별거냐 싶어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의외로 게으름의 종류가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저자의 말대로라면 게으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게으름이란 과연 뭘까?
게으름에는 작은 게으름과 큰 게으름이 있다. 옷을 벗어놓고 잘 치우지 않거나, 아침잠이 많다든가 하면 이것들은 ‘작은 게으름’이다. 큰 게으름은 ‘삶의 중심 영역에서 에너지가 저하된 상태’이다. 다시 말해 오늘 하루가 내일로 연결되어 삶의 지향성을 갖느냐, 아니면 그냥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냐 하는 것 중 후자가 ‘큰 게으름’이다. 이 책은 삶의 지향성을 갖추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는 ‘큰 게으름’을 이야기 했다. 게으름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눠진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우선 이를 부적적으로 느끼는 ‘부정적 지각’의 단계와 선택을 회피하는 ‘정신적 게으름’의 단계를 지나 행동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행위적 게으름’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는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친다. 반면 실천적인 사람들의 행동과정은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긍정적으로 지각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계획을 수립해서 바로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실천한 내용에 대해 평가 해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재시도 한다.
게으름은 변신의 귀재다. 게으름의 모습은 선택의 회피(미루기), 시작의 지연, 약속 어기기, 딴 짓 하기(대체행동), 꾸물거리기, 철퇴(폐인문화), 눈치보기, 서두름(지각), 즉각적 만족 추구와 중독 등 다양하게 표출된다. 역사적으로 게으름은 미국의 히피문화, 유럽의 다운시프트족, 그리고 현대에 들어 ‘느림의 미학’으로 확장되면서 환경주의와 LOHAS족 등으로 이어지며 게으름을 예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게으름’이라는 말을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으름이란 말 대신 ‘느림’이나 ‘여유’라는 말을 예찬했어야 옳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한 것은 수동적 게으름을 뜻하는 lazy가 아니라 idle이란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유는 능동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게으름은 선택을 피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을러서 재충전이 되었다면 여유가 되지만, 후회와 피로가 쌓인다면 게으름이 된다고 저자는 말했다. 게으름은 ‘선택의 회피’라는 사실과 ‘지금 회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변명으로 이뤄져 있다. 게으름뱅이들이 말하는 단골 레퍼토리는 많기도 많았다. 그 속에는 내가 거의 매일 속으로 다짐하고 말하는 것도 있어 뜨끔했다.
첫 번째 변명 : 기약 없는 후일을 약속한다.
-신중해야 해. 실패하면 안되니까 좀더 알아보고 다음에 하자!
-오늘까지는 쉬고 내일부터. 오케이?
-모든 게 닥치면 하게 돼 있어. 난 오히려 막판에 실력이 나온다니까!
두 번째 변명: 게으름을 철학으로 미화한다.
-난 귀차니스트야! 내가 하기 싫은 일은 결코 하지 않아!
-일에는 모두 때가 있는 법이야. 여유를 갖고 살자고.
-노력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모두 욕심일 뿐이야.
-인생 뭐 있어? 그냥 즐기면서 살자고!
세 번째 변명: 게으름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회사 일이 워낙 바빠서 말이야. 그 일을 할 상황이 아니었어.
-그 일은 내게 맞지 않아! 맞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 번째 변명: 게으름을 타고난 것 혹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난 천성이 게을러! 우리 집안이 원래 그래. 어쩌겠어!
-난 원래 게으른 사람인데 노력한다고 바뀌겠어?
이렇듯 게으른 사람은 변명을 하지만, 변명은 곧 끊임없는 ‘자기비난’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게으름의 원인은 기질적 요인, 심리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 특히 뇌과학적으로 인간이 기쁨과 쾌락을 얻으면서 발생하는 도파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은 사랑하고, 칭찬을 받거나 남에게 인정받을 때, 그리고 성취감을 느낄 때 도파민이 증가한다. 하지만 그런 내적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인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꼭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쾌락’과 ‘기쁨’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불편함과 고통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하는데, 그러한 불편함과 고통을 참지 못하고 ‘즉각적인 만족’과 ‘눈 앞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행위가 ‘중독’이다. 중독은 행위를 하는 바로 그 순간 즉각적인 쾌락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게으름이란 중독 즉, ‘즉각적 만족과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독 또한 게으름의 일부라는 사실은 놀라웠다. 중독은 따로 격리되거나 장기간 치료를 요할 만큼의 증상으로 알고 있는데, 게으름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뿌리 깊은 병적 증상이었다는 말인가?
저자는 현대사회에는 중독이라는 게으름이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알코올, 마약, 도박 정도 였던 것이 지금은 섹스, 쇼핑, 인터넷, 게임, 성형, 주식, 학원 등 이름만 붙이면 가능할 만큼 중독의 종류가 많고, 중독자의 수도 많아서 실태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올수록 게으름의 문제가 이렇게 늘어나는 이유는 늘어나는 선택의 기회와 제한된 선택 능력, 다양성이 피어나지 못하는 사회, 속도 중독과 변화강박증 등 때문이라고 저자는 보았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활동은 습관화, 자동화했음에도 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선택의 상황에 놓여 있어, 어느 하나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만족은 줄고 후회는 늘 확률이 커졌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이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그 속도의 격차로 인해 정신적 위기감에 빠져 획일적 성공모델을 추종하는데 급급해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독은 게으름을 낳고, 게으름은 또 다시 중독을 낳는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게으름은 본성(천성)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 해야 한다. <몰입의 즐거운>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게으름은 천성이 아니라 ‘목표와 관계를 잃을 때 나타나는 상태’라고 보았다. 저자는 ‘도전과 재도전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삶’이 게으르지 않는 사람과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사람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시들어가는 삶은 게으름의 텃밭인 만큼 삶을 도전하는 삶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게으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의 반응은 ‘잘못’을 실패로 인식하고 곧 스스로 포기하고 말지만, 게으르지 않거나 그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잘못을 ‘만회 가능한 실수’로 인식해서 이를 보완해 재시도(도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한 정신훈련으로 ‘ACE 정신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즉 변명과 비난을 경계하며 자신을 엄정하게 살펴보는 Awareness Power 자각 능력과 원하는 미래를 오감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는 Creative Power 창조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Executive Power 실행 능력이다.
저자는 ‘게으름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궁극적 목표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충만한 삶은 남을 따르는 흉내 내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순리를 때를 때 충만한 삶은 가능해진다. 개인의 삶에서 순리란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획일적 성공과 외적 성취만이 강조되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색깔을 일어버린 채 남의 뒤를 쫓아가는 삶, 흉내 내는 삶을 살기 때문에 결국은 주저앉고 게을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삶, 자기실현을 이룬 삶이다. 즉 지위, 부, 명예와 같은 외적 동기에 충실하기보다 내적 만족을 우선시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10가지 열쇠, 변화일기 쓰는 법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게으름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이해하는 것 만으로 이 책에서 얻는 소득은 컸다. 또한 단락마다 <실천지침>이라는 코너를 두어 내 안의 게으름을 파악하고, 점검할 수 있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고,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순간 게으름은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무한한 정보와 빠른 속도로 대표되는 오늘날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게으름에 원인을 둔 중독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너로서 살아가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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