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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다면, 하루 몇 번이라도 감탄하면서 살아라!
누군가 내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헛헛함을 덜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헛헛함은 심심함도 될 수 있고, 무료함도 대체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깊은 무엇이 담겨 있다. 헛헛함이란 단어는 얼마 살지 않은 내 평생을 쫓아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단어이고 내게 변화를 추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헛헛함이란 뭘까? 이를테면 바쁘게 보낸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노라면 헛헛함을 느낀다. ‘나름 바쁘게 오늘을 보냈는데, 내게 돌아온 건 조금 더 늘어난 내일 할 일과 통장잔고란 말인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바로 헛헛함이다. 뭔가 어제와는 다른 하루여야 할텐데 다르지 않을 때 마치 오늘을 헛산 것 같을 때 ‘헛헛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그녀와 헤어진 다음 날 아침과 같고, 대입시험을 치룬 날 저녁을 닮았다. 이런 기분이 들면 괜히 ‘울컥’해지고, 지금의 기분을 당장 떨쳐내려고 당장 뭔가 변화를 시도해지고 싶어진다. 젊은 시절엔 이런 기분이 들면 술을 찾았다. 친구를 부르고 한데 어울려 ‘으쌰 으쌰’하다 보면 ‘헛헛함’은 어느 샌가 모르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로 떨쳐내려는 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술로 잊은 헛헛함은 텅 빈 지갑 쓰라린 위를 부여잡고 더 헛헛한 아침이 만나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그런 날이면 책을 읽었다. 뭔가 궁싯거린다는 기분을 갖기에 독서보다 더 손쉽고 경제적인 방법이 또 없다. 부러 절대고독의 순간을 만들어 글을 읽고 나면 ‘느끼고 배웠다’는 소득의 느낌은 포만감으로 다가온다. 안단테 콘 모토 Adante con moto, 즉 느리게 그러나 활기차게 책장을 넘겼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면 등이 뜨듯해진 것 같고, 5밀리미터 정도는 키가 커진 듯한 느낌을 얻게 된다. 그리고 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든 기분이 든다. 헛헛함을 덤과 동시에 매일 조금씩 크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하지만 난 여전히 점프해야 2미터 남짓이다) 내가 지금까지 눈꺼풀이 잠기는 순간까지 책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심리를 다룬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와 같은 책을 만나면 그런 기분은 최고조로 달한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한 친구를 만나 밤을 새워 술을 마신 기분, 이 책을 읽은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다.
처음엔 황당하고 무모한 제목(아니 위험천만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때문에 어떤 도발적인 내용이 있을까 무척 궁금했지만 애써 읽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본다면 ‘아내에게 불만이 가득한 유부남’으로 보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급기야 TV에서도 책제목을 언급하며 ‘요즘 남자의 심리’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저자인 김정운 교수가 ‘잘 나가는 스타강사’로 불리는 것을 보고는 집어들 때임을 짐작했다. 책을 집어든 후 이름마저도 김정일의 후계자와 같아 엄청 위험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내 선입견은 채 몇 장을 넘기지 않고 처참하게 무너졌다. 저자 양반이 한마디로 골 때리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이 책을 심리학책으로 평가한다면 잘못 본거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자가 자신과 함께 주위를 둘러싼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자서전이기도 한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이에 빗대어 오늘날 중년 남성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병리현상을 조목조목 잘 짚어내고 있다. 구불구불한 곱슬머리에 슈베르트가 낀 듯 한 안경을 뒤집어 쓴 두툼하고 둥근 저자의 외모는 결코 한국형 남성의 표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자신의 이야기와 심리는 정도만 다를 뿐 딱 나였고 주위에 있는 선후배들 이었다. 소제목의 앞 뒤 마다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멍청한 듯한 말들은 어쩌면 그리 내 마음과 닮았던지...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책의 재미는 처음부터였다. 책의 프롤로그부터 저자의 다소 위험한 고백은 앞으로 펼쳐질 대단한 고백들을 짐작하게 한다. 책의 제목을 재미있게 설명한 부분은 나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한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책의 제목을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했다고 하자, 이내가 묻는다.
당신, 진짜로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해?
나는 약간 주저하다 대답했다.
응, 가끔...
아내는 잠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바로 몸을 내 쪽으로 항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만족하는데...
내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는데, 아낸의 나지막한 한 마디가 내 가슴을 깔끔하고도 깊숙하게 찌른다.
아주 가끔...
이렇게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가 함께 사는 집이 우리만은 아닐 것이다.“ 프롤로그 8~9 쪽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남성들이 갖는 고민들을 잘 대변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버금가는 맛깔 나는 글맛도 좋지만, 그들(한국남성)이 갖는 고민이 결코 그 만의 것이 아니며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의 문제점임을 밝히며 위로하고 있다. 나아가 심리학적 근거와 해결책을 제시하며 ‘별 것 아냐’라고 등을 토닥였다.
이를테면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저자가 호텔의 침대에서 잠을 잘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알기에 집에 있는 침실에서도 ‘백열등 부분조명’과 ‘하얀 침대시트’를 ‘조작적’으로 설치한다면 굳이 호텔에 가지 않더라도 매일 잠자리에서 만큼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위적인 행위’를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 내가 내 집, 내 침대에서 행복하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나 역시 호텔 침대에서 자면 ‘편안하다는 기분’이 듦을 새삼 깨달았다. ‘백열등 부분조명’과 ‘하얀 침대시트’가 다음 쇼핑의 ‘must buy list'에 있는 건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저자는 매일 아침의 갖 볶은 커피를 갈아마시는 행위를 통해 아주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추얼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준다고 말한다. 내가 그 날 기분에 따라 향수를 바르고 문 밖을 나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그런 즐거움임을 배웠다.
또한 그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후회를 한다면서 어차피 해야 할 후회라면 짧게 하는 편이 낫다고, 그래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말까를 망설인다면 일단 저지르고 후회하는 편(그것이 저지르지 않고 후회하는 기간보다 짧단다)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조언한다. 이 조언은 피끓는 젊은 시절 내가 품었던 연애관과 일치했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 말을 건네지 못해 밤새워 애태우기 보다는 차라리 망신을 당하더라도 일단 말은 건네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을 무던히 지켰던 터라 뺨도 많이 맞았고, 남의 집 앞에서 서성거린다고 파출소에 잡혀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불리고 싶었던 변강쇠라는 닉네임 대신 껄떡쇠라는 오명을 대학기간동안 안고 살았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적재적소에 박혀 있었던 심리학적 근거 때문만은 아니다. 망사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좋아 물고기를 잡는 그물만 봐도 심장이 벌렁대고, 나이가 들자 가슴이 풍만한 김혜수가 좋아지고, <엄마가 뿔났다>를 <엄마가 미쳤다>로 기억하고 불렀다가 망신을 당하고, 처칠처럼 자신만의 트레이드를 갖고 싶어 ‘나만의 양복’을 맞춰 입었지만 사람들이 ‘교복’으로 본다는 저자의 고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구술은 독자들을 자신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저자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고, 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후덕하게 잘 생긴 구봉서보다 배삼룡이 더 웃기고, 이상해보다 이주일을 더 좋아하는 것과도 같다.
촌철살인은 독자들을 스토리텔링에 빠지게 한 그 다음에 있다. 내(남자들)가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지를 심리학 이론들을 근거로 나 혼자만의 심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떨쳐낼 수 있는 해결책도 함께 제시한다.
그가 말하고 싶은 궁극적인 말은 단 한가지다. 바로 매일 매일 ‘재미있게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책과 강연을 통해 남들에게는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면서도 스스로는 재미없는 하루를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며 결국 그도 쉽게 화내고, 자주 좌절하고, 사소한 자극에도 짜증부터 내는, 아주 전형적인 한국의 중년 남자였음을 절절하게 고백했다. 그리고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그의 전작의 제목처럼 매일을 놀 듯 살아간다면 재미있는 하루가 되고 행복한 하루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은 일을 해야 하며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공부하는 것과 더불어, 내 안의 심리적 상태를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쉰다는 것은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휴식(休息)이 라는 한자는 그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휴식의 한자를 풀어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스스로自의 마음心을 돌이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쉬는 것이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중략)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본문 270~271 쪽 정리
책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가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 때는 과연 언제 일까? 모두 읽고 책장을 덮을 때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자신이 죽어라 골프장에 가는 이유를 들어 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산꼭대기까지 죽어라 오르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건강하려고 산을 오른다면 중간까지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죽어라 하고 정상에까지 올라가는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니고,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산 꼭대기에 올라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우와~!”하며 감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날 보고 끝없이 반복해서 해준 그 감탄이 그리워서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도 나를 보고 감탄해주지 않는다. 감탄한 일도 없다. 그래서 한국 남자들이 죽어라 골프장에 가는 것이다. (중략)
감탄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나보고 감탄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는 감탄이 된다. 그것도 네 시간 다섯 시간 동안 계속된다. 그래서 골프에 그토록 미치는 것이다. 허나 그 다양한 삶과 문화의 영역을 제쳐두고 오직 산비탈 한구석에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감탄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외된 삶은 없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음악회도 열심히 가야 하고, 미술관도 아내와 팔짱 끼고 가야 하고, 축구장과 야구장에 아이들 손잡고 가야 하는 것이다. (중략) 감탄은 이 숭고함과 장엄함의 구체적 반응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고 개념화할 수 없으나, 삶의 가장 궁극적 경험이 우리에게 와 닿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감탄이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감탄으로 양육한다. 감탄이 사라지는 순간,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285-288 쪽 정리
저자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하루에 몇 번 감탄하는가에 있다고 말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하루에도 몇 번의 감탄이 쏟아진다면 그곳은 행복한 가정이고 행복한 직장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함께 사는 이유는 감탄하고 감탄 받고 싶어서, 우리가 사는 이유 역시 감탄하려 산다는 것이다.
정말 명쾌한 삶의 이유였다. 하루가 재미있고, 즐겁고 나아가 행복해지려면 감탄해야 한다. 내가 나름 치열하게 책을 읽는 이유 역시 저자의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세상과 공감하고, 동감하며 감탄하려 책을 읽고 있다. 저자의 말과 글에 감탄했기에 리뷰도 쓴다. 읽고 쓰는 시간을 모두 더한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이 짓(?)을 만약 누가 돈을 주고 시킨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감탄하며 즐거워한 피드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자잘한 읽는 재미와 심리학적 유익함이 잘 배어있는 책이다. 사십 끝줄의 저자가 자신을 말한다지만 그가 갖는 고민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이미 하고 있거나, 곧 하게 될 고민들이었다. 자신을 낮춰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은 웃음 뒤에 페이소스를 느끼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이 마치 노는 듯 즐거웠다. 게다가 감탄을 자아내는 가르침도 있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런 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나라는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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