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도는 활어를 요리하는 사람이다. 펄떡이는 재료의 식감을 살려 먹음직한 크기로 칼질한 후, 근사한 접시에 담아 만찬을 차려낸다. 그런데 그 재료가 재밌다. 활어는 활어이되 ‘活魚’가 아니라 ‘活語’다. 늘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언어가 그의 만찬 재료다.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한마디를 한글로 전환해 전달하는 그는 17년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어와 영화의 간극을 조절하며 좀 더 입에 감기고 눈에 쏙 들어오는 표현을 찾아 헤매는 일이 그의 주된 업무다. 그렇게 손을 거쳐 간 작품이 460여 편. 슈렉과 쿵푸 팬더의 대사 한마디를 감칠맛나게 버무려 관객들의 포복절도를 이끌었다. 그렇게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던 그는 요즘 식재료와 요리의 폭을 넓혀 관객이 아닌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영어와 영화를 테마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더니 각종 매체의 인기 칼럼니스트로 떠올랐고, 대기업과 관공서에서 강연하며 이름 앞에 새로운 수식어를 부여하고 있다. 분야가 다른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그는 늘 그 모든 일이 ‘요리’라고 말한다. 과연 그가 걷고 있고, 걷게 될 길 위엔 어떠한 식재료가 기다리고 있을까. 요리로 소통하는 이미도는 주방이 아닌 서재에서 오늘도 언어와 씨름 중이다. 에디터 김수연 포토그래퍼 김영준 성과의 근간은 결국 집중이다 최근 외화 번역가보다 작가, 강연자로 더 유명해졌다.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것 같은데(웃음). 재미있어서 그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같은 듯 다른 영역인데 직업의 범위를 확장한 건가. 창작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2004년인가.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 그러면서 책을 쓰게됐다. 처음에는 영어 실용 학습서를 썼는데 나중에 욕심이 생기면서 내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까지 도전하게 됐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신문에 영어와 영화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됐지. 번역이 창작의 스승이 됐고, 창작 작업 역시 번역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을 그만둔 건 아니다. 최근에는 약 3:7 비율로 번역과 창작 작업에 시간 안배를 하고 있다. 몇 달 사이 어린이 영어학습만화 시리즈를 내놨고, 새로운 산문집도 예정돼 있다던데. 지난 연말에 내놓은 영어학습만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집필한 책이다. 두 번째 산문집 <이미도의 영어선물>은 평소에 써놓은 글과 그동안 매체에 썼던 글을 다듬고 덧붙인 책이다. 크게 세 가지 챕터로 나눠지는데 ‘생각’ ‘인생’ ‘세상’ 순으로 구성했다. 우리가 긍정적,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인생도 그렇게 변할 것이고, 더불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창의적인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는 게 주제다. 생각의 확장이 이 책의 큰 줄기지. 영화와 영어에 내 인생 철학도 첨가됐고. 수많은 독자들 중 어린이를 타깃으로 집필한 이유가 있을 텐데.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을 실천하고 싶어서(웃음). 하워드 가드너란 다중지능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가 쓴 <열정과 기질>에 아인슈타인이 “사람이 제일 창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기는 6~7세 사이”라고 했더라고. 상상력 풍부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좀 더 창의적인 영어 공부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도식 영어 학습법은 어떻게 다른 건가. 국내 영어 교육은 문법을 분해해 공부하는 교습법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문법적으로 따져서 문장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건 비교적 잘하지. 그런데 거꾸로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드는 건 약하다. 미국 아이들은 단어와 단어를 연결시켜 문장을 조금씩 넓혀나가며 말을 배운다. 내 책은 미국식 영문법 교습에 맞췄다. 총 35권 완간을 목표로 정했는데 각 권의 스토리가 하나의 전체 스토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멀티 유징될 수 있게 공들이고 있지. 그동안 외화를 번역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시나리오 구성력이 어찌나 도움이 되던지. 지금까지의 이력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웃음).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많은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본래 여러 가지 일에 집중을 잘하는 편이다(웃음). 일에 대한 시간 분배만 잘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거든. 실은 나이도 있고, 그런 이유로 시간을 더 바짝 조여 활용하려고 한다. 지금 내 나이가 오십인데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대략 10년 정도 남지 않았나 싶거든. 물론 예순 살 이후에도 일할 순 있겠지만 그건 보너스가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 10년은 일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집중이 관건이다 보니 서울을 떠나 새로운 작업실도 두게 됐고. 왜, “떠나면 떠오른다”는 말도 있잖아. 그래서 작업실을 부산으로 옮겼는데 서울에서 일할 때보다 작업량이 2배나 늘더라고. 자율적 유배생활의 득이라고나 할까(웃음). 2배나 더 일한다? 부산에서의 일과가 궁금하다. 조간신문이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모닝커피와 함께 아침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대략 오전 9시에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신문 연재, 만화 스토리 구성, 외화 번역, 강연 준비, 각각의 일에 따라 순서를 정해 해치운다. 능률에 따라서 끝내는 시간이 유동적이긴 한데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만 일한다. 나름의 법칙이지(웃음). 영어를 영어로 암기해야지 왠 한글? 미군 통역관이면서 사서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던데. 그랬지. 나의 첫 영어 선생님이셨으니까. 아버지는 영어를 독학하신 분이다. 그래서 영어 공부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계시지. 그래서인지 하루에 하나에서 두 개 이상의 단어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대신 그 뜻을 내 눈높이 맞춰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단어를 단순히 한국말로 외우게 하지 않았고, 대신 영어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줬다. 단어 하나당 몇 장씩 필기하면서 단어를 외웠는데, 그 단어를 활용한 예문까지 함께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준 영어 동화책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정작 전공은 영어가 아니라 스웨덴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자주 극장에 다녔지. 영어만큼이나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영화였다. 많은 매력을 느꼈지. 1980년 대 초 내 기준에서 예술영화는 스웨덴영화였다.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언어이니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단 욕심도 있었고, 그렇게 스웨덴어를 전공하게 됐다. 외화 번역가를 업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 그건 아주 얼떨결이었는데(웃음). 과거에는 외화를 한국의 수입사에 소개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거든. 지금이야 해외 마켓에서 직접 거래하거나 온라인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지만 과거에는 그랬다. 아는 분이 그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돕게 된 게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블루> <화이트> <레드> 시리즈 연작이었지. 그 와중에 번역을 권유하더라고. 그래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요즘은 영어의 달인들이 많아서 번역하는 일도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오류를 집어내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도 오류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지. 번역 측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작품들이 많은데 사실 난 극장용에만 자막 작업을 하거든. 자막 번역이라는 게 극장, DVD, IPTV, 공중파 TV, 케이블 TV까지 매체마다 번역자가 다르다. 영화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산업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때때로 의역하기도 하거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융통성 있게 이해해주면 좋을 텐데(웃음). 당신도 영어 공부를 할 텐데. 일하는 것 자체가 영어 공부지. 영화 속 영상언어는 살아 있는 ‘활어’처럼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하는데, 그것만 쫓고 따라가도 영어 공부가 충분하다. 좀 지겨운 질문인데 도대체 어떻게 공부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어 의미를 떠올리며 단어를 암기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영어 실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 영어 단어를 영어로 이해하는 암기를 해야지. 암기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죽도록 필사해야지. 미국 아이들이 사용하는 영영사전을 사다가 하루에 한 페이지씩 그대로 쓰고 외우면 1년 후 영어 실력이 확 달라질걸. 가끔은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속 명대사를 꼽는다면. “Be the Miracle!” <브루스올마이티>에서 창조주 역할을 맡은 모건 프리먼의 대사다. 왜 내게는 기적이 안 생깁니까?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말이죠. 뭐 이런 식으로 울분을 토하는 짐 캐리에게 모건 프리먼이 응수하는 말이다.너 스스로 노력해서 달라지고 변화하면 그것이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고 그것이 기적이라는 말이지. 기적이란 스스로 노력하고 변화해야 생기는 것이다. 인기 강연자로 나섰는데 강연의 주제가 뭔가. ‘창조적 상상력을 디자인하라’가 주제다. 다방면에 걸쳐서 창조적으로 혁신하자는 게 주된 이야기지. 강의에서 언급하는 ‘창조’의 개념은 무엇인가. 영어로 이야기하면 Creative지만 내가 강연에서 풀이하는 ‘창조’의 개념은 ‘Unique’에 가깝다. ‘Only one’이지. 다른 이가 아니라 나만 생각해낼 수 있는 상상. 그것이 내가 말하려는 ‘창조적 상상’이다. 디자인? 디자인(Design)이란 단어를 분리하면 De+Sign으로 나눠진다. Sign은 기호이자 통념이고, 고정관념이며 틀이다. Sign을 De, 그러니까 파괴하자(Destruct)는 이야기다. 고정관념과 틀을 깨버리자 이거지. 그래야 창조적인 상상을 할 수 있다. 창조적 상상력을 디자인하는 비결이라면. 아이처럼 상상하고 무모해질것. 가끔은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한다. 사람이 낯선 상황에 처하면 호기심이 커지고 많은 질문을 하게 되거든. 수줍은 동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창의성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편다. 그 창의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늘 순수하게 왜냐고 묻고 생각할 줄 아는 호기심. 그 호기심을 자극하는 근원은 다양한 방면의 방대한 독서다. 돌아보면 방황의 시기가 있었을 텐데. 내 인생의 영화가 <스탠 바이 미>인데, 영화의 원작이 된 스티븐 킹의 소설 첫 문장을 정말 좋아한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e Hardest Thing.’ 모든 사람에게는 고백하기 힘든 사연이 있다. 그런데 그 고백하기 힘든 사연이라는 건 그 사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가진 것이지. 내게도 고백하기 힘든 사연이 있는데 길게 말할 순 없지만 가족사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방황하기도 했지. 결국 그때 힘을 준 건 영화와 책이었다. <스탠 바이 미>도 그랬고, 이병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상처를 치유했다. 그럼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왜? 내가 성공한 것 같아서?(웃음) 글쎄, 좀 쑥스럽긴 한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예전에 영화 <빌리지>를 찍고나서 시고니 위버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성공의 열쇠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이걸 일에 대입하면 답이 나오거든. 실력과 성실성, 그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이 내놓은 결과물에 거짓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두고 성공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을까. 남이 생각하는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평가하고 가늠할 수 있는 성공 기준이 더 중요하다. 당신은 어떤가. 미도(美道)란 이름처럼 아름다운 길을 걸어왔나. 열심히 살아왔지. 다행스럽게도 꽤 재미도 있었다. 음… 아름다운 길 맞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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