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으로 100만 독자를 열광시킨 바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쾌도난마 한국경제』 이래 만 7년 만에 한국 경제에 대해 거침없는 직설을 펼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시사인 경제국제팀장과 함께하는 이번 대담에서 장 교수는 보수와 진보, 여와 야가 갑론을박하는 문제들의 시비와 가부를 논함에 있어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는다.
오늘 우리 경제가 이렇게 만신창이의 모습을 하게 된 책임은 근본적으로 주주 자본주의화, 금융 자본주의화를 ‘시장 개혁’ 내지는 ‘경제 민주화’라고 착각한 일단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좌파 신자유주의냐 우파 신자유주의냐’의 차이만 있을 뿐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우리 경제를 몰고 갔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도 그래서이다.
요즘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가 메아리치는데, 실질적으로 이는 경제의 비(非)민주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1인 1표’가 아닌 ‘1원 1표’가 세력을 떨치게 되면서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의 경제 지배를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영화 이후 인력의 절반을 구조조정한 KT, 벌어들인 돈 이상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도 했던 KT&G, 외국 자동차회사에게 먹튀를 당하고 구조조정에 신음해야 하는 쌍용자동차가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어디에 있는가?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세 저자는 이번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스웨덴식 생산적 복지국가’를 그 해답으로 제시한다.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스웨덴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완성하기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는 것만 봐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저자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북돋는다. 재벌과의 대타협을 통해 경영권을 보장하는 대신 복지국가 구축에 협조하게 하고, 중산층도 증세에 참여하도록 설득한 다음 우리가 60년대에 경제 개발을 시작할 때처럼 복지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노력하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오늘 우리의 경제 현실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를 보여 주는 책인 동시에 앞으로 우리 경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책 제목 그대로 독자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말이다.
저자 장하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국가의 역할』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공저) 『개혁의 덫』 등이 있다.
저자 이종태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대구 『매일신문』에 입사, 경제부와 사회부를 거쳤으며, 2001년엔 ‘한국전 직후 민간인 학살’ 관련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2000년 3월 진보적 시사 종합지인 월간 『말』로 직장을 옮겨 편집장을 지내고,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시사IN』에서 경제?국제팀장을 맡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국가의 역할』(공역)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공역)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공저)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공저)등이 있다.
저자 정승일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녔으며 1980년대 내내 철학과 정치경제학, 민주화 운동에 몰두했다. 199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훔볼트 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와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금융경제연구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 근무했으며, 시민단체 대안연대회의를 거쳐 현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Crisis and Restructuring in East Asia』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공저) 등이 있다.
당신이 바라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장하준, 독자에게 묻다!
장하준ㆍ정승일ㆍ이종태 세 사람이 한국 경제 정밀 진단을 위해 다시 뭉쳤다. 2005년 『쾌도난마 한국 경제』 이후 7년 만에 거침없는 직설이 재개된 것이다. 세 사람은 경제 현안에 대해 애매하거나 멈칫거리는 일 없이 명쾌한 해석과 처방을 내놓는다.
우선, 쾌도난마의 칼날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모두 영미식 자본주의, 그것도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상화된 자본주의를 모델로 삼으며 월스트리트를 지향하고 있다고 못을 박는다.
진보 진영의 ‘박정희 체제 청산’ 구호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그동안 저지른 실책에 대한 알리바이로 박정희를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이른바 ‘재벌 개혁’, 심지어 ‘재벌 해체’를 요구하는 ‘경제 민주화’ 주장에 대해서도 결국 ‘외국 투기 자본을 위한 잔칫상 차리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고 정리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 벌어진 주요 사건에 대해 이런 쾌도난마 식의 진단은 계속된다.
-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노무현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진보의 착각이 야기한 것이다.
- 2008년 리먼 사태 직전에 벌어진 금리 인상 논쟁은 정부 판단이 맞는다.
- 리먼 사태 직후에 벌어진 관치 금융 논란도 정부 판단이 맞는다.
-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을 두고 ‘제2의 IMF 사태’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다.
(…)
논란이 한창인 경제 현상에 대해서도 두루뭉수리 넘어가지 않는다.
- 보수파가 일단 키워야 한다는 파이는 실제로 주주들이 먹어 치우고 있다.
- 부동산 거품을 키운 건 시장 개혁 주장자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바로 그 첨단 금융 기법이다.
- 중소기업은 재벌의 피해자가 아니라 ‘경제 민주화’의 피해자다.
- 은행 민영화야말로 반(反)중소기업적인 경제 정책이다.
- ‘신의 직장’ 운운이야말로 공정을 핑계로 하향 평준화를 도모하는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다.
- 청년 창업은 패배자만 양산할 수 있다.
(…)
재벌 해체가 경제민주화인가?
예컨대 장하준ㆍ정승일ㆍ이종태 세 사람이 보기에 ‘재벌 해체’는 경제 민주화가 아니다.
“일례로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을 떼어 내 매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누가 주인이 되는가? 지난 민주 정부 시절의 재벌 개혁 경험으로 보면 GM 같은 다국적 기업이나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 아니면 다른 재벌이 인수하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게 진보고, 민주화인가? (…)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며 대기업의 해악을 막는 방법을 논해야 한다. 재벌이 문어발 경영을 한다고 욕하는데, 아파트 짓던 현대가 자동차로, 양복지 만들던 삼성이 전자로 문어발을 뻗쳤기 때문에 지금의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있는 것이다. 장점과 문제점을 함께 보며 장점은 키우고 문제점은 고쳐야지, 무조건 대기업은 나쁘다, 재벌은 더 나쁘다고만 하면 안 된다.”
또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애플 대 삼성’ 식의 비교야말로 불공정하기 짝이 없다.
“‘삼성 대 애플’, ‘갤럭시 대 아이폰’이라는 대립 구도를 만들고, 전자는 혁신을 가로막는 나쁜 재벌, 후자는 혁신적 기업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애플이나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같은 회사는 일본에도, 독일에도, 프랑스에도, 스웨덴에도 없다. 그 나라에 재벌이 있어 그런가? 그 나라가 ‘창의성이 떨어지는 멍청이’라 그런가? 아니다. 애플이나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는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적 특수성의 결과다. 그리고 그 실리콘밸리는 사실상 미국식 산업 정책의 산물이다.”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라는 주장은 아예 일축해 버린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서서히 늘어나던 비정규직이 1998년 이후로는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양극화 역시 뚜렷해진다. 신자유주의가 본궤도에 오른 거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엄연한 사실을 부인한다. 바로 자신들이 ‘합리적 시장’이니 ‘경제 민주화’니 하는 명분으로 그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며 밀어붙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스로 저지른 실책에 대한 알리바이로 박정희를 끌어들이고 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집권 10년 동안 양극화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악화시켰다. 그 이후 재집권한 보수 세력은 더욱 악화시켰고.”
자유주의 환상에서 벗어나 본질을 보라
결국 장하준ㆍ정승일ㆍ이종태 세 사람이 보기에 문제는 자유주의에 있다. 자유주의가 시장주의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막연히 자유에 집착하다 보니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나쁘지만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을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 혹은 합리적 자유주의자라고 한다. 일부는 진보적 자유주의자, 사회적 자유주의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대부분이다. 즉 한국 노동자ㆍ시민을 위한 것이 아닌, 국내외 금융 자본을 위한 정책이다. 그렇다면 다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이런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고,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까 장하준ㆍ정승일ㆍ이종태 세 사람이 원하는 것은 하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립과 분노만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힘겨루기와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이 대립과 분노의 본질이 묻힐 위험성이 크다. 예컨대 여야가 내놓는 대안들이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외시되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변곡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10년 뒤, 50년 뒤의 우리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결정을 앞둔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것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은 그래서 다시 독자에게로 넘어간다.
과연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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