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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보이 기고문] 선진국 기부 방식에서 대안 찾아라 - 시사저널

by Richboy 2012. 6. 1.

 

 

 

'선진국 기업가들의 기부 문화'에 대한 생각을 요청 받아 쓴 글인데, 이번 주 시사저널[1180호]에 실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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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은 20세기에서나 볼 수 있는 기부문화입니다. 

소중한 돈, 어디에 쓰였는지 알려고 하는 것이 새로운 세기 기부문화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국민 개개인은 물론 기업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기부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면서도 국내 기업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 공헌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기업을 묻는 한 설문에 60% 이상이 ‘모르겠다(49.2%)’와 ‘없다(11.5%)’라고 응답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영 전문가들은 ‘진정성’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운영하는 공익 재단에 대해서는 개인 비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은 다르다. 비교적 젊은 경영자들이 적극적으로 기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욘(yawns)족(族)이 대거 등장했다. 욘족(young and wealth but normal)은 젊은 나이에 부를 축적했으나 호화 생활보다는 자선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성향을 보이는 엘리트 계층을 일컫는다.

 

자선 단체 직영…기부를 경영과 연결하기도

 

기부금 역시 정보 격차 해소나 교육 개혁 등에 사용되는 등 실효성을 중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최근 기부자가 발언권을 갖는 ‘참여 기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자신의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 결과는 어떤지 등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 주식 거래 회사인 ‘사이버코프’를 만들어 억만장자 클럽에 가입한 필립 버버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력 증권사인 찰스슈왑에 4억5천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이후 ‘글리머오브호프(A Glimmer of Hope)’라는 개인 자선 단체에 1억 달러를 기부했다.

 

버버는 단순히 돈을 맡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필요한 곳에 돈이 정확히 사용되는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버버 스스로 “나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라 사회 사업가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 구호 단체의 덩치가 커지면서 고유 목적 사업 이외의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부금 1달러 중에서 실제 자선 사업에 사용되는 비용은 19센트에 불과했다. 버버는 발언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선 단체 활동에 개입했다. 자선 단체 운영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그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효율 면에서 기존 구호 단체와 차별화되고 있다. 기존 단체가 사용했던 비용의 절반 정도로 자선 사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드웨어의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델 델 컴퓨터 창업자나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이 버버의 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효율적인 자선 단체 운영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 2위의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최근 전 재산의 85%인 3백74억 달러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그 역시 자신이 설립한 재단이 아니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부부가 운영하는 ‘빌&맬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게이츠라면 제대로 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여론에 밀려 보유 주식을 그대로 공익 재단에 옮기는 국내 재벌 총수와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기업은 기부를 경영이나 마케팅에 연결시키기도 했다. ‘현대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시장의 출현을 예고했다. ‘마켓 3.0’ 이론이었다. 기존 시장의 경쟁력은 상품력(1.0)을 넘어 서비스 및 고객 만족(2.0)으로 진화했다. 3.0 시장의 초점은 제3세계의 빈곤이나 환경 파괴 등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기업에 맞추어져 있다. 이런 기업이 3.0 시대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기업의 활동이 곧 마케팅이 되는 시대이다. 이미 일부 기업은 사회적인 문제를 기업의 가치관이나 경영 방식에 통합함으로써 성공을 거두고 있다. 멕시코의 세계적인 시멘트 기업 시멕스(Cemex)는 심각한 주택난을 겪고 있는 멕시코 국민들을 잠재적인 소비자로 규정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시멕스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종의 ‘계(契)’를 만들어 매주 돈을 모으게 했다. 그리고 대기업의 지위와 공동 구매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빈곤층을 지원했다. 자재 공급업자들로부터 싼값에 자재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시멕스의 벽돌도 싸게 할부로 제공했다. 건축설계사도 소개해주었다. 시멕스는 현재 ‘집 없는 고객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회사’로 불리며 멕시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가들 “기부에 앞서 진정성부터 갖춰야”

 

소비를 기부로 승화시킨 사례로 유명한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탐스슈즈 회장이 한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있다.

‘피라미드 저변(Bottom of the Pyramid)’ 이론의 창시자인 스튜어트 하트 코넬 대학 교수는 “봉사활동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빈곤층을 기부의 대상이 아닌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빈곤층에게 맞는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빈곤 문제를 푸는 묘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식품업체인 다농(Danon)이 77원짜리 요구르트를 출시한 것이나, 유니레버(Unilever)가 인도에 1백20원짜리 세제를 출시한 것도 이 이론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탐스슈즈(TOMS Shoes) 회장은 소비를 기부로 승화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2006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저개발국의 주요 전염병은 흙속 기생충에 의해 감염된다. 하지만 신발이 부족한 데다, 도로가 발달되지 않아 발에 상처가 나면 감염 위험이 크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신발 한 켤레를 팔 때마다 한 켤레를 기부하는 탐스슈즈를 설립했다. 탐스슈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언론 광고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기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조금 더 비싼 구입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며 지갑을 열었다. 창업자의 혁신적인 기부 시스템과 개념 있는 소비자들의 생각이 이런 ‘진정한 기부’ 문화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 공헌을 하는 기업을 찾아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임팩트 금융’ 모델까지 생겨났다. JP모간 글로벌리서치팀은 임팩트 투자 규모가 향후 10년 내에 1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남미의 10여 개 마이크로크레딧 기관에 투자하는 중남미계 프로펀드(ProFund)는 매년 6%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임팩트 금융’이 향후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 국내 기업 역시 보여주기 식 기부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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