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의 고수 ‘파란 여우’가 보내는 인문 공감 에세이
모두가 힘겨운 시대다. 사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지경에 이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시로 이렇게 토로하곤 한다. 우리는 지금, 정말 잘살고 있는 것일까? 서평의 고수 ‘파란 여우’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세상의 모든 ‘독’의 근원을 찾기 위해 한미FTA, 광우병, 4대강, 삼성, 왕따, 교육, 환경, 동물, 공정무역, 예술, 사랑, 결혼 등 깊고도 넓은 독서를 몸소 실천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독이 든 자본주의의 삶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의식을 향해 쓴소리를 뱉어야 한다는 것을, 자본주의라는 틀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통해 ‘공동체’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란 여우’의 새 책 『독(毒)과 도(道)』는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라는 공동체를 바라보는 절망을 통해 역설적으로 희망을 찾고자 한다. 모두가,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자본주의의 톱니바퀴에 절망의 원인이 있고, 그 자본주의의 획책에서 벗어나 제대로 살고자 하는 ‘행위’에 희망의 동인이 있음을 말하려 한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세상이 바뀌어도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 『독과 도』는 지금, 여기 나와 너와 우리를 향한 따끔한 위로이다.
저자 윤미화는 1964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삼성전자를 거쳐 공무원 생활을 끝으로 40대 이후 일체의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촌구석에서 살고 있다. 비 오는 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읽다 잠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경향신문과 각종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염소를 친다. 쓴 책으로 서평 에세이 『깐깐한 독서본능』이 있다.
자본주의가 안겨준 마음속의 독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
서평계의 고수, 파란여우가 돌아왔다.
첫번째 책 『깐깐한 독서본능』에서 조곤조곤, 그러나 다부지게 ‘할 말’은 하던 윤미화가 이번에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을 위한 약을 들고 찾아왔다. 일단 약을 먹기 전에 그녀가 쓴 처방전을 살펴보니 이번에도 따끔하다. 자세히 읽어보면 그 안에 위로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세상의 병들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한미FTA, 광우병, 4대강, 삼성, 왕따, 교육, 환경, 동물의 생존권, 공정무역, 예술, 사랑, 결혼 등의 열쇠말의 범위 역시 깊고도 넓다.
그렇다면 왜 독과 도일까. 저자는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를 견디느라 켜켜이 쌓인 마음의 상처를 ‘독’이라 정의한다. 안타깝게도, 아니 허무하게도 현대인의 삶 구석구석 처박힌 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방법은 하나. 욕망을 욕망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패착에 이르게 하는 자본주의를 즐기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쌓인 ‘독’을 덜어내는 ‘길(道)’밖에 없다. 나 혼자가 아닌, 타자와 우리라는 공동체를 보는 길, 세계가 끊임없이 변해도 우리가 묵묵히 걸어가는 저 길의 끝에는 여전히 ‘희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도시에서의 삶을 스스로 접고, 시골로 낙향해 책을 읽고 책에 관한 글을 쓰며 살아간 지도 수년이 되어 간다. 어쩌다 가끔 일이 생겨 서울을 가노라면 예전에 다닌 길이 낯설 정도다. 저자가 시골에서 염소를 키우며 책을 읽는 사이, 서울은 더 거대해졌다. 늦은 밤 지하철에는 마네킹처럼 생기 없는 ‘지하철 나그네’들이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책 읽는 사람은 물론이요 ‘사람을 보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때마다 저자는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묻고 싶었다고 한다.
“사는 게 쉽지 않아요, 그죠? 나만 중심 잡고 살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죠? 왜일까요? 그래요, 우리는 제도에 구속되었답니다. 행복을 얻으려면 더 빨리 달려서 더 많은 돈을 벌라고 부추기는 국가와 자본이라는 제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 이러한 세상의 굴레 속에서 누군가의 상처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어요?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지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셨어요?”
서평의 고수 ‘파란 여우’가 건네는 따끔한 위로
출산비용이 없어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만삭의 여인,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 등록금에 신음하는 대학생, 결혼비용이 없어 헤어지는 슬픈 연인, 정리해고로 실직한 뒤 투쟁에 지쳐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린 쌍용자동차 노동자, 명문대 입학 강요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저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조여 오는 마음의 독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삶의 비극을 잉태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들이 한때 무릎을 맞대고 앉아 따순 밥을 먹던 사람들임을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비통하고 절박한 세상 속에서 책을 붙들고 있는 게 무슨 소용 있나 무기력에 빠질 때도 많았다고 토로한다. 생각해보라. 소용돌이치는 만경창파 같은 세상에서 책 따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과 한미FTA와 백만 명 청년실업과 자살률 증가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부서진 뗏목’을 타고 ‘화폐지상주의 급류’에 휩쓸려가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우울했다는 저자의 고백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산을 좋아하던 친구는 산에 가지 않고, 시인이 되겠다는 친구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던 친구는 급식 도우미가 되어 생계를 꾸리고, 작곡가를 꿈꾸던 친구는 회사원이 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던 친구는 일용직 건설노동자가 되고, 만화가가 되겠다던 친구는 택시를 몰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겨우 살 만하고 또 누군가는 어렵기 만한 세상. 우리가 한때 오롯이 지녔던 꿈이 날 선 현실에 긁히고 찢어져서 영영 손쓸 수 없이 마모된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저자는 ‘공동체’라는 화두에 천착한다. 현대인에게 ‘공동체’는 존재하는가, 오늘날의 공동체는 어디에서 와서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 하는 공동체에 대한 절망을 통해 역설적으로 희망을 찾고자 한다. 이유는 하나. ‘제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기 위함이었다.
『독과 도』는 지금, 여기 나와 너와 우리를 향한 따끔한 위로를 담은 책이다. 세상에 꿈과 사랑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고마운 책이다. 살면서 날개가 부러진 새들, 살면서 쓰러진 나무들, 살면서 넘어진 사람들, 살면서 허기진 영혼들에게 단 하루라도 사랑의 안식일이 주어졌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 SNS에서 화려한 수다로 하루를 연명하지만 공허함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손에 들고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를 낚았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마음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억압과 차별과 편견과 서러움의 능선을 넘느라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진솔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독이 든 자본주의의 삶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의식을 향한 쓴소리, 자본주의라는 틀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 우리가 ‘공동체’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를 담기 위해 자신의 독서 인생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이 우리의 남은 삶을 이끌어주는 소중한 지침서로 남을 거라는 확신은 여기에서 나온다. 나와 너와 우리를 향한 위로, 그것이 독과 도다.
파란 여우가 탐닉한 책
강상중, 『고민하는 힘』
서경식, 『난민과 국민 사이』
유정숙 외, 『나, 여성노동자』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앨빈 토플러, 『에코스파즘』
정민, 『삶을 바꾼 만남』
김예슬, 『김예슬 선언』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아리엘 도르프만 외,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바야시 다키지, 『게공선』
공선옥, 『꽃 같은 시절』
박경미, 『마몬의 시대, 생명의 논리』
앙드레 고르, 『에콜로지카』
앤드류 니키포룩, 『대혼란』
게리 폴 나브한,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웬델 베리, 『온 삶을 먹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조화로운 삶』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 『데르수 우잘라』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미셸 깽, 『처절한 정원』
프랑수아 쳉, 『티아니 이야기』
박희병, 『나는 골목길 부처다』, 『저항과 아만』 外
독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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