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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독서법·글쓰기

[한전 사보 칼럼] 중고서적에서 e-book까지. 그리고...

by Richboy 2012. 7. 5.

 

 

   요즘 중고책이 인기다. 금융위기 이후 얇아진 지갑으로 연극 영화 등으로 문화생활 하기는 언감생심, 새 책조차 사기가 힘든가 보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소식통에게 들은 말로는 전년 동월 대비 매출이 40퍼센트 줄었다 하니 내 추측이 억측은 아닌 것도 같다.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이 절반 들고, 다른 한편으론 허튼짓(?)할 돈이 없어 다시 책으로 돌아왔다니, 방황하던 탕자 아들 맞듯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문화생활로 어디 독서만한 게 없지 않나.

 

   그래서일까. 헌책방도 덩달아 인기다. 오프라인 헌책방으로는 신금호역 근처에 있던 ‘고구마 헌책방’이 제일 컸는데, 지난 3월, 50만 권을 들고 경기 화성시 팔탄면으로 옮겼다고 한다. 28년째 이 독특한 이름의 중고 서점의 주인장인 이범순(57) 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유인즉 "고구마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란다. 이른바 복합공간으로 거듭난 것인데, 헌책방의 인기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헌책의 매력은 싼 값이다. 헌책은 새우깡과 같다. 새우깡이 맛있는 이유는 값싸고 부담이 없어서다. 헌책도 마찬가지. 싸니까 끌리고, 그 끌림에 이끌려 한 권 두 권 읽다가 보면 어느덧 무궁무진한 책의 세계에 빠지고 만다(그 점에서 독서의 대중화에 헌책이 한몫 톡톡히 한다).

 

   새 책을 모셔둔 큰 서점은 만드는 족족 갖다 놓으니 죄다 엇비슷하다. 하지만 헌책방은 다르다. 책을 보는 안목과 가치를 아는 주인장이 헌책을 받아서 헌책방 하나마다 문화이고 세상이다. 일본의 칸다 고서점가神田古書店街 나 영국 웨일즈의 헤이온와이(Hye on Wye) 헌책방 마을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헌책에 빠지다 보면 어느덧 헌책방에도 빠지게 되고, 종교인이 성지를 순례하듯 독서가들도 헌책방을 순례하게 된다.

 

   헌책방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리는 지표다. 책을 많이 읽으면 헌책은 자연히 많아지고, 읽어버린 헌책은 결국 헌책방에 쌓인다. 헌책방에 책이 많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을 들리고, 이러한 선순환은 계속해서 독서가들을 양성한다. 헌책시장이 잘 되면 새 책 시장은 더 잘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서대국 일본의 헌책방 ‘북오프’는 매장이 무려 1,000개나 되고, 직원이 6,000명이 넘고, 영국에 있는 120년 전통의 헌책방 포일즈Foyles는 책꽂이를 교체하는데만 60억 원이 들었다 한다. 대한민국 헌책방은 인터넷 강국답게(아니면 땅값이 비싸서) 온라인으로 숨었다. 인터넷 서점은 욕심도 많아서 중고서적도 취급하고, 또 어떤 친절한 서점은 리펀드라 해서 새 책을 사서 읽고 나면 헌책을 반값으로 사주고 있다.

 

   일본과 영국의 헌책방과 다른 점을 꼽으라면 온오프의 공간적 차이 외에도 헌책을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외국의 헌책방은 오래되고, 사용한 흔적이 많을수록 좋은 책이라 하고 값을 후하게 매기는데, 우리나라 헌책방은 ‘우리는 고물상이 아니라우’ 대답하듯 아예 사지를 않는다. 그 이유에는 ‘값이 싸면서도 새 책 같은 책’만을 찾는 소비자, 즉 우리나라 독서인들에 있을 것이다. 헌책방의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절판되어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책을 살 수 있어서일텐데, 정작 헌책에는 애당초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서글프다. 대한민국 성인 중 1년 동안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세 명이고, 우리나라 한 가구당 연간 도서 구입비가 2만 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이유를 알 듯 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일찍이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민음사)에서 전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20세기의 ‘전자 미디어’에 의해 종이 인쇄물 등의 선형적 사고(linear mind)는 소멸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성인 10명중 7명이 1년에 2만 원정도 라도 책을 사서 그나마 읽어주니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토록 책읽기를 방해하는 책의 경쟁자가 TV 였다면, 오늘날은 무엇일까? 딩동댕! 바로 스마트폰이다. 혹시,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가? 아마도 첨단의 스마트폰으로 어제 못 본 드라마와 영화를 보느라, 게임을 하느라, 혹은 카톡을 하느라 지하철 풍경을 자세히 보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잘 안다, 오늘 아침 나도 그랬으니까.

 

   열에 아홉 명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지켜보거나 두드리고 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단잠에 빠지거나, 무가지 신문을 읽거나, 몇몇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스크린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림자와 빛이 겹쳐 흡사 좀비를 닮았다.

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유무선 기술의 애플리케이션들은 혼자 있는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대신 내게서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아갈 뿐, 정작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켠다. 혹 잠깐이라도 생각에 빠지면 ‘쓸데없이 멍~ 때린다’고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잠깐의 침묵에도 우리는 쉽게 외로워지고 불안해진다. 그리고 곧 스마트폰을 켠다.

 

   그 와중에 반가운 사람은 e-book을 읽는 사람이다. 내게는 ‘광서방’(http://kwang.info/988)이라는 닉네임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e-book으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는 e-book 유저다. ‘도서관을 넣어도 될 만큼 장서를 보유할 수 있고,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고, 중요한 부분은 잘라서 저장했다가 요약본도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컨텐츠 가격이 종이책보다 저렴하다’는 등의 탁월한 장점을 내게 늘어놓으며 e-book을 권했다.

 

   업무상 잦은 외출과 출장하는 그에게 e-book은 더 없이 소중한 독서 플랫폼인 것만은 틀림없을 터, 하지만 내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의 말에 혹해 고액을 주고 e-book 단말기를 구입했지만, 나는 채 한 권을 읽지 못하고 e-book으로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말해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였다. 나는 왜 e-book으로 읽지 못하는 것일까. 꽤 고민했다. 그리고 “난 처음 종이책으로 독서를 시작한 구식(舊式) 인간이라 종이라는 재질이 주는 물성(物性)을 놓지 못해.”라고 결론지었고, 지금도 두툼하고 묵직한 종이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청림출판)에서 ‘읽기’에 관련해서 한때 언어의 바다를 헤엄치는 스쿠버 다이버였지만 인터넷 때문에 지금은 제트 스키를 탄 사내처럼 겉만 핥고 있다며 단어마다 달려 있는 링크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첨단의 e-book이 과연 ‘온라인 시대의 읽기’를 책임질 수 있는 ‘미래의 책’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회의적이다. 그는 킨들과 아이패드와 같은 기기의 최신 기능은 우리가 전자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높여주겠지만 고요함 속에서 오래 집중하고 깊이 사색하게 하는 능력은 키워주지 못할 거란 결론이다. 하지만 나는 무수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지는 정보를 서치(search)하고, 스킵(skip)하고, 스캐닝(scanning)을 할망정 어떤 형태이든 책을 읽는다면 인간성의 정수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메모의 소중함은 21세기에도 이어져 카메라와 녹음기 키보드가 장착된 어플리케이션인 에버노트Evernote가 종이와 펜을 대신해 전 세계에서 킬러앱으로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언젠가 e-book이 종이책을 대신하게 되는 그 때, 헌책방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까지 나는 과연 살아 있을까?

 

 

이 글은 한국전력 사보 KEPCO TODAY (제 18)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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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이해

저자
마셜 매클루언 지음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1-04-2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전문가의 번역과 편집으로 새로이 출간된『미디어의 이해』결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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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저자
니콜라스 카 지음
출판사
청림출판 | 2011-02-19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스마트' 시대,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까?인터넷, 정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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