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제국주의를 초래한 나폴레옹의 평생을 지배한 책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과 카이사르의 전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었으며, 매일 책 1권 이상을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던 히틀러는 토마스 칼라일의 영웅주의에 매료되어 ‘궁극의 독재자’가 되었다. 반면, 톨스토이는 노자의 《도덕경》을 두 번이나 번역했을 정도로 좋아했으며, 노자의 반권력과 비폭력, 반전의 사상이 자신의 사상과 통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그 사람을 읽어라!
“책은 어떻게 인간의 영혼과 만나는가?”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
“독서는 세상을 혁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것이다. 독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면 독서가 필요하다. 그처럼 참된 독서를 하면 혁명가가 된다. 제대로 된 책들은 현실을 혁명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책을 읽다보면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알기 마련이고 책은 잘못을 고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혁명과 독서를 함께한 것도 독서를 통해 혁명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떤 책도 절대적인 구원을 약속할 수 없다. 그런 절대를 주장하는 책은 사기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책 한 권에서 모든 것을 얻고자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몇 줄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으면 충분하다. 단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독서는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게 진정한 혁명이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자유가 진정한 혁명이다. 전체주의적으로 정해진 교육 체제를 벗어나 스스로 추구하는 독서야말로 진정한 자유, 따라서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독서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공부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독서독인』에서 다룬 인물들은 모두 독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각각 권력과 반권력을 지향했다. 나폴레옹, 링컨, 레닌, 스탈린, 히틀러, 괴벨스, 무솔리니, 마오쩌둥, 호찌민, 폴 포트 등은 독서로 권력을 훔쳤으며, 마르크스, 크로폿킨, 톨스토이, 간디, 루쉰, 프리다 칼로, 체 게바라, 킹, 니어링, 만델라 등은 독서로 권력에 맞섰다. 독서는 인간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련시켰으며, 책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과 만나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될 수도 있고, 반권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독서는 한 영혼을 단련시키면서도 세상을 혁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독서, 권력을 훔치다
나폴레옹은 독서광이었다. 그가 읽은 고전 목록을 보면 인문학의 대가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고전들은 모두 반민주적인 책으로 나폴레옹은 ‘독서가 낳은 괴물’이기도 했다. 그의 평생을 지배한 책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과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의 전기였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에게 중요한 독서였다. 나폴레옹의 영웅주의, 야망주의, 경쟁주의는 세계사에서 불행을 낳았고, 그의 세계 정복은 제국주의를 초래했다. 그런 그가 “나는 무정부라는 수렁을 닫았고 혼돈 상태를 해결했소. 역사가들은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오”라며 독재를 정당화했다.
레닌의 혁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모든 사상의 산실이다. 특히 사회주의를 비롯한 모든 공공 사상의 실험실이다. 그리고 지식을 사유가 아닌 공유로 갖는 곳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공유에 있지 사유에 있지 않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름답다. 외양이 화려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아름답다. 1920년 모스크바의 한 도서관에서 옥외 대출이 금지된 사전 몇 권을 대출받기를 원한 레닌은 대출신청서에 “하룻밤만 대출하면 안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 일찍 반납하겠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스탈린은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독서광이었고 노력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맹렬하게 독서했다. 감옥에서도 유형지에서도 심지어 내전 때 전장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레닌의『국가와 혁명』을 가지고 다녔다.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는 전위 없이는, 유일한 당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전제 권력자이자 대량 학살자로 19세기 이전의 무자비한 러시아 통치자들처럼 행동했다. 그는 공포를 일상화하여 모든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분파주의의 뿌리털도 남겨놓지 않고 도려내버린 비정한 근절 정치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한의 공포였다.
히틀러도 어려서부터 매일 밤 책 1권 이상을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군사, 예술, 점성술, 대중소설, 가톨릭 관련 책들이 주를 이룰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는 토마스 칼라일의 영웅주의에 매료되었고, 그것에 빠져 ‘궁극의 독재자’가 되었으며, 반유대주의 정책을 펼쳤다. 히틀러의 충복이었던 괴벨스는 도스토옙스키가 서구를 구원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위대한 러시아의 혼이라고 한 메시아주의에 열광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괴벨스의 히틀러에 대한 절대 신앙을 지배한 근원이었다. 그래서 독서는 악몽을 초래하기도 했다.
독서, 권력에 맞서다
세상의 모든 책은 영국박물관 독서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읽을 수 있었다. 돈으로 구속과 차별을 만드는 자본주의의 본산에서 유일하게 자유와 평등이 온전했던 곳이 독서실이었다. 그래서 독서실은 세상에 유일한 사회주의의 전당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든 이 기막힌 모순의 집에서 마르크스는 반평생을 살았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자 했던 마르크스는 “모든 것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며 지적 열정을 불태웠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책에 파묻히기’였다.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한 크로폿킨은 시인들이 인류에 대한 사랑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를 읽어라. 시는 인간을 고양시켜준다”는 말을 평생의 모토로 삼았다. 그에게 독서란 그가 지적 발전을 이루는 데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한 자율적 공부의 기본이었다. 톨스토이는 50세부터 60세까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복음서와 에픽테토스의 『어록』, 노자의 『도덕경』을 최고로 치고, 그다음으로 『논어』와 『맹자』를 꼽았다. 그는 1893년 『도덕경』을 두 번이나 번역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노자의 반권력, 비폭력, 반전의 사상이 자신의 사상과 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상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노자를 비판하기도 했다.
창조적이며 실천적인 정치가였던 간디는 종교를 가장 혁명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실천했다. 또한 종교의 최고 원리인 ‘욕망의 자제’만이 폭력적인 독재 권력에 맞설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간디만큼 비판적인 독서를 한 사람은 없었다. 간디는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필요한 책들을 골라서 읽었고 대중들에게 그것을 쉽게 알렸다. 그는 추상적이거나 신비적인 사념에 사로잡혀 책을 읽거나 무비판적으로 교조적인 교리에 따르는 독서를 하지 않았다.
루쉰이 평생을 통해 추구한 주제도 권력을 가진 강력한 지배자 주인과 종 또는 노예로 차별된 대다수 민중의 불평등과 부자유의 사회, 그것을 합리화하는 유교니 도교니 하는 전통문화와 사회주의 등의 이름으로 권력과 지식인이 조작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허위에 대한 비판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구축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준 책은 여러 유교 비판서였다. “유교 도덕은 인간이 만든 것으로, 위가 아래를 제압하고 아래가 위를 받들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인’으로서는 일방적 지배를 펼 수 없으므로 ‘충효’나 ‘염절廉節’과 같이 ‘삼강오륜’을 만들어 상하의 등급을 구별하고 그것을 신하나 자식의 전용으로 만들어 군주나 부모에게는 적용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혁명은 자유롭고도 철저한 독서에 의한 교양과 체험에서 나왔다. 그의 독서 목록을 보면 그가 읽지 않은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책의 우주는 방대하다. 다양한 독서야말로 게바라라는 인간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독서는 비판적으로 정선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독서는 킹을 자유롭게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을 거쳐 간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루소, 홉스, 로크 등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월터 라우션부시의 사회 복음 신학은 킹의 평생을 좌우했다.
독서는 불의한 세상에 맞서는 힘이다
나쁜 세상은 독서가가 없는 세상이다. 진정한 혁명가는 진정한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히틀러나 스탈린, 폴 포트나 박정희가 아닌, 톨스토이나 마르크스나 간디나 게바라나 모두 그렇다. 물론 그 반대는 아니다. 즉, 독서가가 혁명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가다. 적어도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적이다. 독서는 바르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그 변화 앞에 비판이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 비판 앞에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능력이 있다.
혁명가가 사라진 세상은 그야말로 말세다. 세상의 나쁜 점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이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혁명가는 그런 분노에서 출발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나쁜 세상에 분개하여 죽을 때까지 그 분노를 버리지 않은 체 게바라가 그랬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근본악이 이기주의였다.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혁명가였다. “인간은 교양을 갖춰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말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넬슨 만델라는 “사고할 줄 아는 아프리카인 전체의 총체적 삶이 양심과 법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권리를 거부당하면 법 밖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그를 법 밖에 두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나의 경우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인권 투사가 되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지금 우리에게 로버트 번스의 다음의 시가 필요한 이유는 독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방이 성공을 만나기를! 분별이 해방을 악에서 지켜주기를! 폭군과 폭정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를! 정처 없이 헤매며 악마에게 사라지기를! 읽는 자들에게 자유를, 쓰는 자들에게 자유를! 진실에 의해 비난받을 자들만큼 진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나니!”
“책은 어떻게 인간의 영혼과 만나는가?”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
“독서는 세상을 혁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것이다. 독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면 독서가 필요하다. 그처럼 참된 독서를 하면 혁명가가 된다. 제대로 된 책들은 현실을 혁명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책을 읽다보면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알기 마련이고 책은 잘못을 고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혁명과 독서를 함께한 것도 독서를 통해 혁명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떤 책도 절대적인 구원을 약속할 수 없다. 그런 절대를 주장하는 책은 사기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책 한 권에서 모든 것을 얻고자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몇 줄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으면 충분하다. 단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독서는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게 진정한 혁명이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자유가 진정한 혁명이다. 전체주의적으로 정해진 교육 체제를 벗어나 스스로 추구하는 독서야말로 진정한 자유, 따라서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독서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공부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독서독인』에서 다룬 인물들은 모두 독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각각 권력과 반권력을 지향했다. 나폴레옹, 링컨, 레닌, 스탈린, 히틀러, 괴벨스, 무솔리니, 마오쩌둥, 호찌민, 폴 포트 등은 독서로 권력을 훔쳤으며, 마르크스, 크로폿킨, 톨스토이, 간디, 루쉰, 프리다 칼로, 체 게바라, 킹, 니어링, 만델라 등은 독서로 권력에 맞섰다. 독서는 인간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련시켰으며, 책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과 만나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될 수도 있고, 반권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독서는 한 영혼을 단련시키면서도 세상을 혁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저자 박홍규는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오사카대학교·고베대학교·리쓰메이칸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저자는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동안『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리더의 철학』, 『마르틴 부버』, 『이반 일리히』, 『세상을 바꾼 자본』,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예술, 법을 만나다』,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플라톤 다시 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 평전』, 『내 친구 빈센트』,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자유인 루쉰』 등을 집필했으며, 『마루야마 마사오』, 『유토피아』, 『인간의 전환』, 『예술과 기술』, 『절제의 사회』, 『유토피아 이야기』, 『이반 일리히의 유언』, 『학교 없는 사회』, 『자유론』, 『간디 자서전』, 『오리엔탈리즘』, 『사상의 자유의 역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독서, 권력을 훔치다
나폴레옹은 독서광이었다. 그가 읽은 고전 목록을 보면 인문학의 대가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고전들은 모두 반민주적인 책으로 나폴레옹은 ‘독서가 낳은 괴물’이기도 했다. 그의 평생을 지배한 책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과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의 전기였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에게 중요한 독서였다. 나폴레옹의 영웅주의, 야망주의, 경쟁주의는 세계사에서 불행을 낳았고, 그의 세계 정복은 제국주의를 초래했다. 그런 그가 “나는 무정부라는 수렁을 닫았고 혼돈 상태를 해결했소. 역사가들은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오”라며 독재를 정당화했다.
레닌의 혁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모든 사상의 산실이다. 특히 사회주의를 비롯한 모든 공공 사상의 실험실이다. 그리고 지식을 사유가 아닌 공유로 갖는 곳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공유에 있지 사유에 있지 않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름답다. 외양이 화려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아름답다. 1920년 모스크바의 한 도서관에서 옥외 대출이 금지된 사전 몇 권을 대출받기를 원한 레닌은 대출신청서에 “하룻밤만 대출하면 안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 일찍 반납하겠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스탈린은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독서광이었고 노력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맹렬하게 독서했다. 감옥에서도 유형지에서도 심지어 내전 때 전장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레닌의『국가와 혁명』을 가지고 다녔다.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는 전위 없이는, 유일한 당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전제 권력자이자 대량 학살자로 19세기 이전의 무자비한 러시아 통치자들처럼 행동했다. 그는 공포를 일상화하여 모든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분파주의의 뿌리털도 남겨놓지 않고 도려내버린 비정한 근절 정치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한의 공포였다.
히틀러도 어려서부터 매일 밤 책 1권 이상을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군사, 예술, 점성술, 대중소설, 가톨릭 관련 책들이 주를 이룰 정도로 방대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는 토마스 칼라일의 영웅주의에 매료되었고, 그것에 빠져 ‘궁극의 독재자’가 되었으며, 반유대주의 정책을 펼쳤다. 히틀러의 충복이었던 괴벨스는 도스토옙스키가 서구를 구원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위대한 러시아의 혼이라고 한 메시아주의에 열광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괴벨스의 히틀러에 대한 절대 신앙을 지배한 근원이었다. 그래서 독서는 악몽을 초래하기도 했다.
독서, 권력에 맞서다
세상의 모든 책은 영국박물관 독서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읽을 수 있었다. 돈으로 구속과 차별을 만드는 자본주의의 본산에서 유일하게 자유와 평등이 온전했던 곳이 독서실이었다. 그래서 독서실은 세상에 유일한 사회주의의 전당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든 이 기막힌 모순의 집에서 마르크스는 반평생을 살았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자 했던 마르크스는 “모든 것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며 지적 열정을 불태웠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책에 파묻히기’였다.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한 크로폿킨은 시인들이 인류에 대한 사랑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를 읽어라. 시는 인간을 고양시켜준다”는 말을 평생의 모토로 삼았다. 그에게 독서란 그가 지적 발전을 이루는 데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한 자율적 공부의 기본이었다. 톨스토이는 50세부터 60세까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복음서와 에픽테토스의 『어록』, 노자의 『도덕경』을 최고로 치고, 그다음으로 『논어』와 『맹자』를 꼽았다. 그는 1893년 『도덕경』을 두 번이나 번역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노자의 반권력, 비폭력, 반전의 사상이 자신의 사상과 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상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노자를 비판하기도 했다.
창조적이며 실천적인 정치가였던 간디는 종교를 가장 혁명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실천했다. 또한 종교의 최고 원리인 ‘욕망의 자제’만이 폭력적인 독재 권력에 맞설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간디만큼 비판적인 독서를 한 사람은 없었다. 간디는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필요한 책들을 골라서 읽었고 대중들에게 그것을 쉽게 알렸다. 그는 추상적이거나 신비적인 사념에 사로잡혀 책을 읽거나 무비판적으로 교조적인 교리에 따르는 독서를 하지 않았다.
루쉰이 평생을 통해 추구한 주제도 권력을 가진 강력한 지배자 주인과 종 또는 노예로 차별된 대다수 민중의 불평등과 부자유의 사회, 그것을 합리화하는 유교니 도교니 하는 전통문화와 사회주의 등의 이름으로 권력과 지식인이 조작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허위에 대한 비판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구축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준 책은 여러 유교 비판서였다. “유교 도덕은 인간이 만든 것으로, 위가 아래를 제압하고 아래가 위를 받들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인’으로서는 일방적 지배를 펼 수 없으므로 ‘충효’나 ‘염절廉節’과 같이 ‘삼강오륜’을 만들어 상하의 등급을 구별하고 그것을 신하나 자식의 전용으로 만들어 군주나 부모에게는 적용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혁명은 자유롭고도 철저한 독서에 의한 교양과 체험에서 나왔다. 그의 독서 목록을 보면 그가 읽지 않은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책의 우주는 방대하다. 다양한 독서야말로 게바라라는 인간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독서는 비판적으로 정선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독서는 킹을 자유롭게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을 거쳐 간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루소, 홉스, 로크 등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월터 라우션부시의 사회 복음 신학은 킹의 평생을 좌우했다.
독서는 불의한 세상에 맞서는 힘이다
나쁜 세상은 독서가가 없는 세상이다. 진정한 혁명가는 진정한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히틀러나 스탈린, 폴 포트나 박정희가 아닌, 톨스토이나 마르크스나 간디나 게바라나 모두 그렇다. 물론 그 반대는 아니다. 즉, 독서가가 혁명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가다. 적어도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적이다. 독서는 바르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그 변화 앞에 비판이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 비판 앞에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능력이 있다.
혁명가가 사라진 세상은 그야말로 말세다. 세상의 나쁜 점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이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혁명가는 그런 분노에서 출발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나쁜 세상에 분개하여 죽을 때까지 그 분노를 버리지 않은 체 게바라가 그랬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근본악이 이기주의였다.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혁명가였다. “인간은 교양을 갖춰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말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넬슨 만델라는 “사고할 줄 아는 아프리카인 전체의 총체적 삶이 양심과 법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권리를 거부당하면 법 밖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그를 법 밖에 두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나의 경우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인권 투사가 되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지금 우리에게 로버트 번스의 다음의 시가 필요한 이유는 독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방이 성공을 만나기를! 분별이 해방을 악에서 지켜주기를! 폭군과 폭정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를! 정처 없이 헤매며 악마에게 사라지기를! 읽는 자들에게 자유를, 쓰는 자들에게 자유를! 진실에 의해 비난받을 자들만큼 진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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