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함에 대한 잡스의 통찰
애플이 정상을 재탈환했다. 작년 10월 내놓은 아이폰 6와 아이폰 6플러스 출시에 맞물려 7450만대라는 사상 최대치 판매를 기록하면서 애플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끌었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46%나 증가한 역대 최대 분기 판매 실적으로 시장 예상치였던 6490만 대를 약 1000만 대 가까이 뛰어넘었다.
일등공신은 중국. 대화면 아이폰에 대한 중국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최대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중국 매출은 사상 최대인 161억4000만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무려 70%나 증가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1분기 아이폰의 중국 매출은 지난 5년 동안 중국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애플의 성공비결은 뭘까?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소비자들이 애플의 ‘심플함(simplicity)에 반해서’다.
17년간 스티브 잡스와 함께 광고와 마케팅을 이끌었던 켄 시걸 역시 애플이 잇따른 혁신을 가능케 한 것은 '단순함(simplicity)‘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미친듯이 심플Insanely simple>에서 ’잡스에게 단순함은 종교였고 그리고 무기였다‘며 단순함을 향한 잡스의 헌신적인 집착을 높이 평가했다. 잡스는 애플에서 종종 폭군으로 불렸다. 하지만 잡스가 폭군이 될 때는 명확하지 않고 애매하게 둘러대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그때마다 잡스는 ’본론이 뭐냐?‘ 혹은 ’그래서 결론이 뭐냐?‘는 단순함에 집착하는 그만의 심플스틱(simple stick)을 휘둘렀다.
“단순함은 애플의 혁신을 그저 가능케 하는 수준을 넘어 ‘몇 번이고’ 혁신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변해 애플이 그 변화에 적응하더라도, 단순함에 대한 신념만큼은 변함없다. 자신들의 기술을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기기로 전환할 수 있는 배경에 바로 이 가치 체계가 자리한다.
단순함을 향한 애플의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라보이는 모든 곳에 단순함이 자리한다. 그것이 곧 회사의 제품이고, 광고이며, 내부 조직이고, 스토어이며, 고객과의 관계다. 애플 내부에서는 단순함이 목표고, 업무 프로세스이며, 평가의 척도다.“
( 17쪽)
1997년 존 스컬리를 쫓아내고 애플의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그간 만들어왔던 애플의 제품들을 검토하다가 “이제 그만! 이건 미친 짓이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화이트보드에 2X2 매트릭스를 그린 후 가로줄에는 ‘일반용’ ‘전문가용’, 세로줄에는 ‘데스크톱’ ‘휴대용’이라고 적고 “각 4분면에 해당하는 제품을 하나씩 결정해 총 4개의 제품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려.”라고 말했다. 잡스는 고객에게 과도한 선택권을 주는 것은 오히려 싫증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잡스에게 혁신(innovation)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다. 그는 평소 ”나는 실제로 애플이 한 일 못지않게 하지 않은 일도 자랑스럽게 여긴다. 수많은 것들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혁신이다.“(94쪽)라고 말했다. 아이폰의 주기능은 인터넷과 전화, 아이팟 세 가지였다. 세 가지면 아주 적은 수, 하지만 잡스는 버튼을 세 개가 아닌 달랑 하나만 달았다. 이유는 단 하나, 셋은 하나보다 많기 때문이다. 세 버튼을 장착했더라면 아마도 거의 완벽한 아이폰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는 이 ‘거의(almost)'라는 단어와의 절충을 거부했다. 저자는 이러한 타협을 거부해야 자신이 추구하는 단순함(핵심가치)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잡스는 애플 내에서 형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싫어했다. 그와 회의할 때는 ‘심플‘하게 탁자와 화이트보드, 그리고 솔직한 아이디어 교류만 있으면 됐다. 반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달랐다. 그는 몇 날 몇 주에 걸쳐 예행연습과 수정을 거듭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가장 효율적인 신제품 공개에 최선을 다했다(잡스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선보이는 슬라이드 쇼를 본다면 그 내용이 지극히 심플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잡스와 회의실에서 회의하는 것 같은 ’심플‘하고 자연스러움을 갖게 했고, 지금껏 잡스가 최고의 연설자로 불리게 하는 이유이다.
아이팟이 등장하기 전, 뮤직 플레이어 시장은 가히 춘추전국시대였다. 마지막 후발업체나 다름없던 애플은 시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단순함’이라고 판단했다. 잡스는 다른 뮤직 라이브러리 대신 아이튠즈를 기반으로 아이팟을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애플은 1세대 아이팟을 출시할 때, ‘5기가바이트 드라이브에 무게가 약 184그램인 뮤직 플레이어’란 설명 대신, 간단히 ‘주머니 속의 노래 1,000곡’이라고 말했다. 반응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이었고, 아이팟이 뮤직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는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네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애플이 추구한 단순함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단순함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애플의 핵심가치를 달성하도록 돕는 방향등이다.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마지막 심플한 한 문장이 바로 기업의 핵심가치다. 그런 핵심가치만 꺼낼 수 있다면 어느 기업이든 애플과 같은 성공은 가능해진다.
1967년 보잉 비행기 3대로 시작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그야말로 영세 항공사였다. 창업자 허브 켈러허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경쟁자보다 싼 가격‘이라고 판단, 핵심가치로 삼았다. 방법은 ’심플‘했다. 스스로를 ’초저가 항공사‘로 규정하고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과정 이외의 불필요한 서비스는 줄이고 효율성은 극대화해서 가격을 경쟁사보다 파격적으로 낮췄다.
우선 비행기 기종은 보잉 737로 통일했다. 조종사 교육, 부품재고 등 유지관리비 최소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가급적 복잡한 허브공항을 경유하지 않고 지방 공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직항노선을 개발했다. 목적지는 최대 2시간의 운항거리를 넘지 않도록 정했고, 목적지 도착 후 10분 내에 재운항 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시스템화 했다.
좌석등급과 좌석 선택권도 없애고 ‘선착순 탑승제’을 도입했다. 출발시간을 지연시키는 화물 항공우편도 취급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내식 서비스도 없앴다. 모든 결정의 판단의 기준은 ‘초저가 항공사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과연 어울리는 제도인가?’였다.
이렇게 효율성이 극대화되자 비행기 요금은 경쟁사의 절반 정도가 가능해졌다. 사우스웨스트는 경쟁상대를 아예 대형 항공사가 아닌 고속버스인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정하고 ‘그레이하운드를 탈 바엔 사우스웨스트를 타자’고 마케팅을 펼쳤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고속버스보다 더 싼 비행기 요금이 있더라’는 말이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결국 전체 항공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며 사우스웨스트는 세계 최초로 초저가항공 시대를 열었다.
9·11 테러 이후 수많은 항공사가 파산과 통·폐합을 거쳤지만 효율성을 극대화한 사우스웨스트는 오히려 승승장구할 수 있었고, 지금은 연간 1억3000명의 고객이 이용하는 세계 최고의 항공사가 되었다. 미국 취업정보 사이트인 글래스도어는 사우스웨스트를 기업문화와 가치 측면에서 ‘올해 현직 직원들이 만족하는 기업 6위’으로 선정했다.
켄 시걸은 잡스와 함께 일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기록하고 정리했고, 그 속에서 일정한 원칙을 발견했고, ‘미친듯이 심플’한 애플의 경영의 11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책에 담았다. 그 원칙들을 통해 애플이 주도한 모든 혁신들은 단순함을 향한 사활을 건 헌신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애플의 모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의 방법론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지난 주말 저녁 책을 덮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가 그레이컬러의 아이폰6 플러스(64 기가)를 구입했다. 2년 전부터 써오던 삼성 갤럭시3의 마지막 할부금을 갚지 않은 채 조바심에 서두른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더 빨리 <미친듯이 심플>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였다. 이보다 더 나은 평이 있을까.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출판저널
<기획회의>(386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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