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 죽을 죄인 결코 아니다
요즘 대한민국 가정이 가계부채로 질식 직전에 있다. 2015년 2분기까지의 가계부채는 1,132조원으로 급증했다. 1분기 전인 지난 3월 말보다 무려 32조 2천억원이나 늘었다. 1년 새 94조 6천억원의 가계빚이 폭증한 것이다. 매달 10조원씩 증가한 셈인데, 이런 식이라면 올해 말이면 1,200조 원에 육박한다. 물론 수치상일 뿐 이미 1,200조 원을 훌쩍 넘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주목할 점은 가계부실 위험가구가 112만에서 190만 가구에 이른다고 하니 가계부채는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아닐 수 없다. 원인은 부동산 과열. 전세난과 전세금 폭등이라는 악재와 사상 최저 금리와 역대 최대 분양 물량이라는 호재 맞물리면서 너도나도 부동산을 위한 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회계용어로 채무요, 자본과 더해지면 자산이기도 한 이 빚은 ‘레버리지 효과’라는 경제용어에 포장되면 투자금이 된다. 하지만 말이 좋아 투자지 요즘 같은 현실에서 이 투자投資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돈과 같은 재물(資)을 내던지는(投) 행위인지 곰곰이 살펴보니 후자가 더 많더란 거다(그 점에서 언젠가 꼭 한 번은 투자를 할 우리는 언제든 빚을 질 수 있는 잠재적 빚쟁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빚 준 상전이요 빚 쓴 종’이라고 투자하자고 진 빚이 잘못되어 ‘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와 당신이 누구에게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그 빚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는 빚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서민경제 전문가이자 에듀머니 대표인 제윤경은 이 책을 통해 ’왜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가?’라며 부채는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상식에 태클을 걸었다. 저자는 전작 <약탈적 금융사회>에서 ‘약탈적 대출을 서슴지 않는 금융권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절실할 때이다. 더 이상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린 사람을 향한 과도한 비난도 거둬야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하고 금융권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빚진 자'에게만 엄해서 도덕적인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고 나아가 채무자가 되면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미래까지 저당 잡혀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금융과 개인의 채권-채무 관계는 쌍방의 거래로 이루어진 것인데, 왜 빚을 갚지 못한 비난은 온통 채무자만 져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채무자의 신용이나 재무 상태 이상으로 돈을 빌려준 금융권에게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돈이란 것이 국민들이 금융기관을 믿고 맡긴 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정부의 금융정책과 한국 사회의 금융이 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해결을 위한 대안을 직접 제시했다. 그렇다면 기업을 차려 돈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관리 방법 등을 강의를 통해 교육하는 기업가였던 저자가 어떻게 해서 사회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걸까?
“나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채무자 구제 운동에 점점 깊이 빠져든다. 어떤 단단한 신념이나 이론, 이념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죽거나 좌절하거나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 금융권의 수익성 때문에 사람들의 인격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각뿐이다.” 9쪽
이러한 사회문제의 가장 큰 손실은 바로 사람을 잃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추산하는 채무 취약 계층이 350만 명으로 국민 10명 중 6명이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매일 같이 40여명이 자살하는데 주된 내용이 경제적 여건, 즉 빚 때문이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이 넘어서고 빚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도 우리 사회는 개인 빚을 탕감해주거나 깎아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금기시하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 짓고 있다(12쪽). 그래서 ‘죄인’이 되기 싫은 그들은 빚 때문에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고, 더 높은 이자의 빚으로 기존 빚을 갚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아고갈’에 이르게 되고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하나가 있다. ‘카드를 만들어달라고 사정하고, 지점장이 나와 대출을 권하던 금융사는 내가 빚을 못 갚게 되자 얼마나 곤란해 진걸까?’ 놀랍게도 금융사는 큰 손해가 없다. 금융사들은 연체된 채권을 오래 보유하지 않는다. 3개월 이상 연체되면 대부업체 등에 헐값에 팔아버린다. 처음 돈을 빌린 곳은 은행이었는데, 나중에 채권추심회사나 신용정보회사 같은 대부업체에서 독촉전화가 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은행과 대부업체 간의 커넥션도 숨어 있다. 은행은 석 달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부실에 따른 위험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은행은 당신과 내가 3개월 이상 진 빚을 ‘부실채권’이라는 이름으로 대부업체에 땡처리’해 버린다.
“대부업체는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채무자에게 원금은 물론이거니와 연체이자와 법정 비용까지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가령 1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연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5퍼센트 전후 즉 5만원에 매입한 뒤, 원금 100만원과 더불어 연체이자 및 법정 비용까지 포함해 극단적으로는 1,000만 원 이상도 받아낼 권리가 생긴다. 금융감독원의 2012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은행과 카드, 캐피탈 등 여신전문회사와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부업체에 대출 채권을 넘겨준 고객이 76만 명에 달한다. 금액 기준으로는 9조원을 넘는다.” 254~255쪽
금융사의 부실은 손쉽게 처리함으로써 부실대출의 실태를 감추고, 채무자는 여러 채권자에게 시달리도록 하는 채권 땡처리 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적이다. 은행은 물론이고 정부 기관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에서조차 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하고 있는 현실에 배신감을 넘어 분노케 한다. 게다가 금융사들은 일종의 컨소시엄으로 대부업체를 만들어 채권 땡처리 시장에서 또 다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다니 과연 이들이 ‘내가 주거래 은행이라 신뢰했던 그 은행이 맞나’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채무자인 우리에게 ‘빚 못 갚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돈을 빌렸으면 당연히 갚아야 하지만 못 갚을 경우 어떤 형태의 형벌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채무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빚을 갚겠다는 무리한 의지에 있다고 말한다. 즉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려고 무리하게 노력하다보면 은행 빚을 카드빚으로, 카드빚을 사채로 갚다가 결국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는 낳는다는 것이다.
대안은 연체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것. 즉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 워크아웃 등의 제도를 이용하거나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한 국민행복기금 등의 신용회복 프로그램, 그리고 지자체를 통한 금융복지 상담센터 등을 이용 채무조정 절차를 밟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2012년 “교육, 의료, 주거 등과 같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 때문에 서민들이 빚을 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국민들의 부실채권을 추심회사로부터 사들여 소각한 미국의 롤링주빌리 프로젝트에 모티브를 얻어 ‘주빌리 은행’을 설립,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792명의 빚 51억 3,000만 원을 소각했고 곧 더 큰 규모의 ‘99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에 의한 빚 탕감 시민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르뽀 형식의 생생한 현장감에 실사구시의 유익함을 더한 책, <베니스의 상인>에서 ‘살은 베어도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패소하게 만든 포샤의 명판결 같은 책이다. 안토니오와 같은 빚쟁이라면 일독하시라. 빚에 대한 현명한 대응력을 선사할 것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402호)
경제경영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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