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차면 주위에 아픈 사람이 한 둘 꼭 있다. 책을 쓰던 중 책을 죽어라 읽지 않는 손윗동서와 술자리를 하면서 원고를 보여준 적이 있다.
글을 읽은 지 몇분 안되어 동서는 연거푸 술을 마시며 울었다. " 이 꼴난 글 몇자가 뭐라고 나를 이리 울리는거야?" 하며 울었다. 글 속에 십수 년전 간암으로 몇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였다며 울며 또 마셨다.
지금껏 병구환하느라 재산 다 털어먹고 가셨다고 , 그래서 내가 고생한다고 원망했는데 당신이 이리 고생하다 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맘이 아프다고 반백의 중년은 주위를 아랑곳않고 꺽꺽댔다.
독서는 책을 읽어 글 속에서 내 생각과 대화하는 일이다. 그 속에는 경험과 고민과 추억이 들어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면, 누가 뭐라든 잘 읽은 것이다.
난 내 글에 공감해준 또 한 명의 반백 중년을 만났다. 그의 뜻과 상관없이 난 그를 친구라 부를 것이다. 고맙습니다, 홍선생님.
책 제목 :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저 자 : 김은섭
어느 날 페북에 아픈 사람의 글이 올라왔다. 안타까웠다. 나도 아플 때였다. 허리디스크. 꼼짝 못하겠더라. 그런데 나는 이 사람만큼 아프지도, 힘든 병도 아니었다. 그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임을 알았다.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지금 내 허리는 괜찮다. 다행히도 이 사람도 괜찮다고 한다. 책을 통해서 그간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죽을 병으로 아프면 무슨 생각이 날까?
사람이 죽을 것을 알게 되면 겁이 날까, 아니면 담담하게 맞아들일까?
자기에게 집중할 것같은데 뜻 밖에도 식구들 걱정부터 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 걱정, 아내 걱정. 저자는 아들을 볼 때마다 힘들고 괴로웠다고 한다. 말 그대로 ‘온전히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의 걱정부터 했다. 하기사 그 순간에 나만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참 쓸쓸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살아갈 의미가 있겠지.
그런데 죽을 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사람의 심정을 책으로 풀어냈다. 하기사 별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못하니 읽고 쓰는 일이 가장 쉬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와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하다.
우리 집에도 비슷한 병을 앓았다가 나은 사람이 있다. 누나와 엄마. 암이니까 아프겠지 하고 지나갔다. 그들이 얼마나 아픈 지는 잘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누나와 엄마가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냈는 지 실감이 났다. 그리고 저자는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 만일 내가 아프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내가 암에 걸리면 난 어떻게 할까? 나아야겠다고 마음먹을까, 아니면 이 것도 내 운명이려니 하면 쉽게 포기할까? 잘 모르겠다. 아마 어느 정도 병이 진척되었는 지, 아니면 나을 가능성이 높은 지에 따라 내 마음도 달라질 것 같다. 동창 중의 하나는 말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좋은 직장에서 잘 지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암 발병 중기라는 선고를 듣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저 세상에 간 친구도 있다. 아직도 그 친구의 속 마음에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드는 생각은 ‘만일?’이다. 만일 내가 암에 걸린다면 난 어떻게 할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
하지만 암에 걸린 사람, 뭔가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아픈 병을 낫게 하는 비법은 없지만, 적어도 담담하게 대처하는 마음가짐은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저자는 병이 나았고 남은 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이 저자의 독자들도 그가 쓴 책을 앞으로 몇 권을 더 읽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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