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더라'
세상에서 가장 정성 가득한 요리책
사내의 아내는 아팠다. 많이 아팠다.
병든 아내를 위해 사내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사내는 처음으로 부엌에 섰다.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루페)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다.
좋은 책의 9할은 저자의 생각이다. 어떤 이가 무슨 의도로 썼는지를 알아도 책을 읽을지 말지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없단 뜻이다. 당신이 동의하든 않든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탓에 이 책을 집어 든 데 난 주저함이 없었다. ‘아픈 내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요리를 해야 하는’ 정반대 된 나의 입장을 제외하면 ‘요리로 가족의 건강을 챙겨야 하는’ 상황은 똑같았으니까. 게다가 아픈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기가 죽도록 벅찰 텐데, 그 마음과 과정을 글로 내려놓았다니... 언감생심 ‘나라면 못하겠다’ 싶었다.
몇 해 전 우리 동네에 ‘미역국’ 집이 생겼다기에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달랑 미역국만 파는 집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시켰다. 첫 술을 뜨다가 울컥했다. 두 해 전 돌아가신 엄마가 해 주시던 ‘그 맛’이 훅 하고 내 입속으로 들어와서였다. 애써 잊었던 당신의 기억이 ‘뽀얀 국물 한 술’에 소환된 것이다. ‘참기름과 소금 그리고 다시다 한 큰 술’의 재료로 무심하게 끓여내던 당신의 ‘맛’에 취해, 나는 밥숟가락을 든 채 한참을 울었다. 내가 당신을 꽤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난 그때 알았다.
내가 아픈 이후 가족의 먹거리에 신경을 더 쓴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인생의 절반을 책으로 배우며 살았던 나인지라 요리책 몇 권 읽으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종원의 요리비법이라면 나오는 족족 사서 읽고, 요즘 뜬다는 요리책으로 책장 한켠을 가득 채워도 내 요리 솜씨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모양새야 무슨 상관이냐 맛만 있으면 그만 아닌가 했지만 그 맛 하나마저 없었으니 돌아서면 삼시 세 끼를 맹그러내기가 여간 곤혹스러웠다. 그 밥을 먹은 가족은 또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나는 요리하면 일본 드라마 <오센 おせん>에서 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밥을 지으며 연신 ‘오이시이니나레(맛있어져라)’고 주문을 외던 젊은 오카미상 아오이 유우의 모습이 생각난다.
요리란 게 무섭다.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하더라도 불의 세기에 따라 맛이 다르고 어떤 순서로 요리하는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재료를 알맞게 잘라 순서에 따라 넣고, 그 때마다 불의 세기를 달리 하며 섞어내는 일이 요리라면 그 요리를 먹는 이를 생각하고 그가 ‘딱’ 좋아할 적당한 음식을 생각하고 요리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는 아오이 유우의 주문과 같은 ‘정성’이라는 특제 양념이다. 책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는 어느 요리책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특제 양념이 가득한 책이었다.
그는 아픈 아내를 위해 끼니마다 ‘지금 꼭 먹고 싶은’ 요리를 묻고, 싱싱하고 안전한 재료를 얻으러 굳이 아이쿱이라 불리는 생협에서 구했다. 환자에 어울리는 ‘슴슴한 맛’을 내기 위해 그는 소금 한 알갱이를 세는 마음으로 간을 봤을 테니, 그 마음 하나하나가 어땠을까나 하고 행간에 숨은 정성을 읽느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의 압권은 책 중반에 있는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의 기찬 효능’이었다.
CT만으로 봤을 때 온몸에 암이 퍼져 있어서 수술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 대수술이 될 거라는 의사의 말에 저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양제 주제만으로 반달을 지낸 아내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라던 대수술은 의외로 두 시간 정도 걸려 끝나자 그는 ‘열었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닫았다’는 생각에 심하게 낙담했다. 하지만 오히려 수술이 잘 되어서 빨리 끝났다는 의사의 말은 반전이었다. 소장과 대장을 연결한 수술의 결말이었던 방귀를 뀌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대패삼겹살 몇 점만 먹고 싶’ 다던 아내를 위해 아이쿱에 들러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을 사서 구워주었다. 온 식구가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게 거의 육 개월만이었고, 바싹 구운 순수한 대패삼겹살을 입에 넣던 아내를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대패삼겹살을 겨우 두 점 먹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저렇게 맛나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다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을리라는 절망감에 가슴이 저미게 아팠던 게 겨우 이 주쯤 전이다. 아들은 지금까지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맛있다면서 ‘너무 많다’ 던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이 먹는 걸 보면서 흐뭇해하느라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125~126)
달랑 두 점 일망정 다시 먹을 수 있다는 아내의 기쁨과 그녀의 먹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남편의 기쁨이 잘 어울린 이 대목은 두 사람의 감정 모두를 실제로 경험했던 나를 한동안 울게 했다. 행복은 사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절실함을 경험하면 매 순간이 행복할 투성이다. 그 절실함을 빨리 잊는다는 게 흠이지만. 그 날의 행복감에 대해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날따라 창으로 비쳐 든 햇살이 눈부셨다. 봄이 활짝 다 핀 것 같았다. 참 따뜻했다. 이내는 다 나은 사람처럼 흐믓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들은 폭풍 흡입하면서 연발하던 ‘정말 맛있다’를 다 먹은 뒤에도 몇 번 말했다. 우리 가족은 마주 보며 웃었다.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의 효 능은 기억까지 없애버렸다. 그 전날 혼수상태까지 갔던 끔찍한 폭풍의 흔적과 곧 다시 찾아올 지독한 폭풍마저도.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126)
아내를 보낸 얼마 후 홀로 밥을 지어먹는 장면을 표현한 역설적 소제목 ‘행복한 혼밥’에서는 음식은 가득한데 희한하게도 정성은 없고 그저 ‘죽지 못해 먹는 밥’ 맛이 느껴졌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밥과 국 그리고 반찬. 밥을 먹다가 아들이 퍼뜩 생각나고, 사람 대신 앞에 앉아 재잘재잘 이야기해줄 텔레비전을 켜고 그는 ‘티슈를 한 장 톡 뽑아 눈물 콧물을 훔치며’ 밥을 먹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어쩔 수 없이 떠먹는 ‘지겨운 밥 한술’은 외로움 한 숟가락에 그리움 한 조각이 얹힌 반찬, 눈물 한 방울이 담긴 한 술이었겠다 싶어 마음이 아렸다. 더 말하면 무엇하랴. 그것이 인생 C'est la vie이 아니던가.
곧 떠날 아내를 바라보며, 또 지금은 가고 없는 아내를 생각하며 밥 짓듯 지은 글,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정성이 가득한 요리책이 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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