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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하루키씨, 쓰다 쓰다 이제 당신이 입은 티셔츠 얘기요?

by Richboy 2023. 6. 15.
 
무라카미 T
정갈한 슈트보다 왠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 훨씬 잘 어울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느새 곁에 모여버린’ 티셔츠 예찬 에세이. 수집한 적도 없는데 상자가 넘치도록 쌓이게 되었다는 옷더미 속에서 잘 선별한 티셔츠를 모아놓고 옷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을 능청스레 털어놓는다. 진지한데 유머가 넘치고, 트렌디하면서도 고집스러우며,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글을 따라가노라면 우리가 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그의 에세이를 사랑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위스키, 마라톤, 레코드 등 각 에세이 주제가 하루키의 일상을 대표할 만한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티셔츠를 통해 읽는 하루키’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터.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백여 장의 (엄선된) 티셔츠 사진은 물론, 권말에 특별 수록된 추가 인터뷰도 놓치지 말 것.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비채
출판일
2021.05.10

 

"하다 하다 이제 티셔츠냐?" 이 책을 만날 때 저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무라카미하루키 , 신드롬을 넘어 바라기 열풍으로 이어지는 현상 덕에 태어난 책이 이 책이 아닐까. 이 책 #무라카미T 는 한마디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고 있고, 입는 #티셔츠 들에 대한 단상들을 이미지와 함께 수록한 글모음'이다.

어느 잡지에 연재한 것을 모았다는 글을 얼핏 읽은 것 같은데, 게 뭐가 중하랴. 하루키가 입는 티셔츠라고 하지 않은가.

나는 하루키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워서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 중반, 막 독서가 좋아질 무렵 용돈을 아끼고 아껴 화제가 된 하루키의 소설 < #댄스댄스댄스 >, < #바람의노래를들어라 >을 읽고, '이게 뭔 소리냐' 하며 나만 모르냐는 절망감과 그 돈으로 차라리 뻥튀기를 사 먹을걸하는 아쉬움에 허탈해한 이후, 애써 무시했던 작가다. 거대한 서사에 놀라 엄지척을 하고 난 #소설 < #사랑과환상의파시즘 >은 알고 보니 하루키가 아니라 ' #무라카미류 ' 였던 적도 있으니...난 하루키를 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하루키가 쓴 소설과 #수필집 과, 그를 #필력 을 말하고, 소설 속에 넣은 #음악 들을 말하고, 심지어 그가 입고 갖고 있는 티셔츠를 말한 책들을 거의 가지고 있으니, 이 역시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책들 절반 정도는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언젠가 곧, 읽을 예정이다.

이 책 <무라카미 T>도 몇 해 전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비바람이 치던 지난 주말 침대 위에 쭈구려 앉아 몽땅 읽었다. 내용이라곤 별 게 아니다. 절반은 이미지, 절반은 글로 가득한 티셔츠에 대한 수다집. 티셔츠를 언제 왜 샀는지, 입었는지 지 얼마 줬는지 등이 난삽하게 적혀 있어 읽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그럼 난 이토록 투덜거리면서 그의 책들을 긁어모으는 걸까.

하루키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그의 글은 나의 #상상 을 닮았다. 아니, #망상 이라고 해야겠다.

두서는 없지만 끊임없이 생각하던 스토리,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은 결말을 맺는...어느 한가한 날, 어떤 계기로 한동안 내 머리속을 떠오르던 스토리들을 그가 말하고 있어서다. 그의 글을 읽다가 보면 어데서 읽은 듯 #데자뷰 를 자주 경험하는데, 그 때문이 아닐까. 원래 데자뷰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나는 내 기억일텐데, 그의 소설을 읽으면 당연히 데자부를 랑데뷰할테니, #랑데자뷰 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은 허무맹랑한데 친숙하다. 실제로 그는 책 < #직업으로서의소설가 >에서 자신은 소설을 배운 적도, 써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영어로 쓰고 일어로 번역하며 글을 쓴 적도 있다고, 그래서 번역체라 불린다고도 하잖은가.

물론 30여년을 소설을 써서 먹고 살고, 책도 많이 팔았으니 재능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고 자신을 평가하기도 했지만, #기승전결 은 고사하고 스토리보드도 없고, 플롯보드도 없고, 티핑포인트도 없는....의식의 흐름이 시키는대로 적어가는 한마디로 근본없이 쓴 소설이란 말인데....귀해서 일까, 생각이 발칙해서 일까, 이게 참 묘한 매력이다.

손님 없는 어느 #재즈바 주인과 한 잔 두 잔 걸친 게 한 시간 정도 되었을 때, 문득 주인 하루키씨가 "난, 이런 생각을 해 봤어..." 라며 주저리 주저리 끝없이 낮지만 같은 톤으로 떠들고, 적당한 취기와 분위기에 무장해제된 난 가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에 빠지는....그런 느낌을 소설 속에서 경험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하루키라는 이름을 들으면 ' #노벨문학상 을 받아야 할 대표작가'라기 보다는 '옆집에 사는 #얘기꾼 #술친구 아저씨'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난 그가 달리는 이야기도, 그가 즐겨 듣는 #올드뮤직 이야기도, 심지어 목이 늘어난 게 묘한 매력이라는 빈티지 티셔츠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리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하루키를 키워드로 하는 책을 죄다 모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