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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짜리 수입와인 호텔선 9만원…이래도 되나

by Richboy 2007. 7. 13.
"와인 가격이 너무 비싸 못 사 먹었어요." 지난 3월 방한한 프랑스 유명 와인 제조사 조르주 뒤뵈프의 프랭크 뒤뵈프 사장이 인터뷰 도중 내뱉은 '깜짝 발언'이다. 당시 그는 묵고 있던 호텔 내 와인바에 들렀다가 너무나 비싼 가격에 놀라 결국 마시기를 포기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

와인이 너무 비싸다.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회의에서 돌렸다는 샤토 라투르 82년산 등 한 병에 수백만 원이 넘는 와인이 있는가 하면 웬만한 와인바에서는 5만원 이하 와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싼값에 와인을 사 비싼 값에 파는 경매가 활발해 '와인테크'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제 와인은 한국 사회에서 그냥 술이 아니다. 좀 괜찮은 와인은 한 병에 수십만 원씩 해 재력의 상징이자 수준과 취향을 보증하는 '마시는 명품'이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너도 나도 비싼 와인을 선호하고 비싼 와인을 몇 병 먹어 보았나 자랑하는 분위기"라며 "대중화되기 이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 미국서 6만원짜리 한국서 27만원 =

국내 와인 가격이 전반적으로 비싸지만 특히 유통의 마지막 단계 중 하나인 와인바와 레스토랑, 호텔에서 팔릴 때 가격은 천정부지다.

일반적으로 와인바는 수입원가에 100% 마진을 붙이고, 호텔이나 청담동 등 일부 고급 와인바에서는 200% 마진을 붙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1만원에 들어온 와인이 세금과 도매 소매를 거쳐 고급 식음료장에서 소비자의 손에 닿을 때는 9만원 이상 가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라고 말한다. 아직 와인을 소매점에서 사가지고 집에 가서 먹는 사람보다 음식과 곁들여 특별한 기념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감안하면 와인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에는 와인바와 레스토랑이 가장 큰 몫을 담당하는 셈이다.

특히 호텔이나 와인바 등은 덜 알려진 저가 와인일수록 마진을 높게 가져간다. 현지 가격을 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가격을 높일수록 고급 와인으로 인식돼 잘 팔리는 소비 심리에 기대는 것이다. 실제 매일경제가 취재한 결과 세금이 붙기 전 1만원인 이탈리아산 A와인은 시내 특급호텔에서 11만원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프랑스 고급 와인인 샤토무통 로칠드 1999년산은 18만원에 국내에 들어와 세금을 포함해 28만원의 수입원가로 시장에 나오고 호텔에서는 68만원에 팔리고 있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즐겨 유명해진 샤토 탈보 2004년산도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K레스토랑에서 15만원에 판매되지만 와인숍이나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면 가격은 9만3000원으로 낮아진다.

◆ 유통단계 거칠 때마다 가격 뛰어 =

한국의 와인 가격은 관세 주세 교육세 등 각종 세금이 붙은 수입원가에 '수입상-도매상-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 경로를 거치면서 하늘 높이 올라간다. 수입원가에 수입상 마진 30%, 도매상 마진 20%, 호텔 마진 200%가 붙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 와인 가격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수입하는 미국 영국 독일과 한국에서 팔리는 와인 가격을 비교해 보면 한국 와인 가격이 세계 최고다.

와인 가격은 국제 와인 가격 비교 사이트인 '와인서처(www.wine-searcher.com)'를 통해 조사했다. 프랑스산 샤토 무통 로칠드 2001년산의 국내 판매 가격은 49만2000원. 반면 미국 판매가격은 20만원, 독일은 22만원으로 한국 판매가의 절반도 안 됐다. 고급 와인뿐만 아니라 중저가 와인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블로섬 힐 샤르도네 2005'는 한국 2만원, 영국 9000원, '빌라 안티노리 로소 2002'는 한국 4만원, 영국 1만6000원, '샤토 라세그 2003'은 한국 6만7000원, 미국 3만2000원이었다.

와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와인 수입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 등에 비해 가격이 2배 이상 높다"며 "와인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복잡한 유통 단계와 유통사들의 높은 마진 구조"라고 지적했다.

◆ '와인=부' 공식 깨져야 =

같은 와인이라도 어느 곳에서 소비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가격 차이가 많게는 3배까지 나는 이유는 뭘까.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관계자들은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를 든다.

한태숙 인터컨티넨탈호텔 부장은 "호텔의 경우 고급 와인셀러에 와인을 보관하고 와인 글라스도 깨지기 쉬운 고급 제품을 쓰는 등 보이지 않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마진율만을 놓고 보면 소주나 맥주 등 다른 주류와 비교해 와인이 특별히 크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와인을 취급하는 유명 레스토랑 경영자는 "소주는 출고가가 1000원 안팎이지만 식당에 가면 병당 3000~4000원가량에 판매된다. 출고가의 3배가 넘는 셈"이라며 "와인이 상대적으로 가격은 비싸지만 마진율 자체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무조건 와인이 비싸다는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이어 "레스토랑의 자릿세와 인건비, 인테리어 보수 등 경비를 감안하면 마진이 마냥 높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와인이 분위기를 함께 마시는 것이라고 해도 100~200% 마진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또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은 고급 와인 위주로 구색을 갖춰 때로 식사보다 와인값이 더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즈니스로 외국인 바이어와 가끔 와인바를 이용하는 S물산 한 임원은 "한 병에 1000원 안팎인 소주 마진율과 수만 원씩 하는 와인의 마진율을 같이 놓고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업자의 농간"이라고 몰아세웠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와인이 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다 고가 와인을 소비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다 보니 비쌀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며 "레스토랑이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소믈리에 1호 서한정 와인나라 아카데미 원장도 "소비자들이 무조건 비싼 와인은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와인을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면 바가지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지영 기자 / 이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