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온생명 녹색사상가 장회익의 70년 공부인생 이야기 배우는 사람 장회익 선생의 '앎의 즐거움'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공부인생. 저자의 집안 내력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학업을 중단했던 이야기, 청주공업고등학교, 서...
이 책은..
나의 평가
공부의 참맛과 깨달음의 기쁨을 가르쳐 준 책!
난 공부를 몰라서 못했다. 태어난 줄도 모르고 어느 순간부터 있어 왔음을 알았고, 학교를 들어가라고 해서 또래의 아이들이 그득한 맛에 학교를 다녔다. 등교시간은 남들보다 좀 이른 시간에 했는데, 어제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 책상자리의 서랍은 교과서로, 책가방엔 전과목 노트와 아이들과 놀 꺼리들로 가득했다. 내 방의 책상엔 앉은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할 말이 없다. 수업시간에 교실에 앉아있고, 선생님이 칠판에 쓰시는 글자들을 옮기면 그게 공부인 줄 알았다. 우연한 기회에 '공부'란 걸 알게 되고 늦게나마 부랴부랴 공부해서 남들처럼 학교를 다녔고, 무사히 대학까지 마쳤다. 그리고 이젠 나이가 훌쩍 넘은 아저씨로 살고 있다. 아저씨가 된 지금도 공부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공부工夫. 학문이나 기술을 익히는 뜻을 지닌 이 말이 화두가 된 것은 사회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상사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 월급날을 위해, 그리고 얼마 안남은 휴가를 위해 하루 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생활이 지긋지긋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화두로 고민하던 때에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내가 갈 길을 알고, 그것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보내는 하루하루는 자신의 길을 향해 '공부'하는 삶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아차! 하는 생각으로 정말 늦은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랴부랴(중학생 때의 부랴부랴와는 차원이 다른)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 쫓아다녔다. 숨이 턱에 찰 때가 되서야 한 곳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 상태다.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 갈 길모르고, 갈 방법몰라 아직도 의심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러다 만난 책이 [공부도둑]이다.
고희를 둔 학자의 자기이야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고, 게다가 솔직한 자기고백의 글을 만나기는 '선거철을 앞둔 정치인(그들이 정말 솔직히 고백했는지는 당신들만 알겠지만)'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다. 그것도 명망있는 선생님이 지금꺼 배우는 사람으로써 느꼈던 '앎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는 데야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하는 내가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문과출신 인데다 이공계학문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인 내게 저자가 펼치는 물리학과 온생명이론은 실로 어렵기 짝이 없는 '딴세상 이야기'여서 읽기가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었다. 하지만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의 구수한 이야기같아 놓칠 수는 없었다. 물론 들어도 모르는 물리학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학문에 대한 애정과 열의, 그리고 조금씩 알아가는 공부꾼의 희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70의 나이에도 자신의 어릴 적 시절부터 학창시절의 공부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더듬을 수 있을 정도로 알차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반면 절반치기 나이의 내가 추억하는 나의 어린시절은 알콜중독자가 느끼는 어제의 기억정도인데 말이다.
다소 지루할 듯 하지만 이야기 속에 숨은 가르침들은 의외로 많았다.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는 " 당연히 책에는 좋은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현재 나에게 맞는 책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자기가 현재 알고 있는 수준에 맞추어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서술한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그러니까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간혹 내게 맞는 책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문하는 사람은 이런 점에서 '책 냄새'를 잘 맡을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라고 말하며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서술된 책이 나에게 맞는 책이라고 알려주었다. 좋은 책에 대한 깔끔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깨달음의 속도에 따른 두 가지 정의'에 대해서는 " 지금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수많은 정보나 의문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해의 틀 속에서 어느 순간 확연히 그 의미를 드러내게 될 때 이를 '돈오頓悟(갑자기 깨달음)'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중간 중간에 비교적 소폭의 여러 변화를 겪으며 이해의 폭을 점차 넓혀 나가다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분명해질 때 이를 '점오漸
悟(점점 깊이 깨달음)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해의 틀이 연속적인 변화를 허용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또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물음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면서 "도대체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기에 바른 해답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 해답의 내용은 무엇인지 하는 것은 어쩌면 '깨달음'에 이른 후에야 알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아예 깨달음에 들어설 가능성조차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자신이 공부하는 장소 세군데를 알려주는가 하면, 가르치는 자리에 서보지 않으면 진정한 앎에 이르기 어렵다고도 충고한다. 가장 가슴 속에 와닿는 말은 책이나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그래도 행하는 것은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스승의 손가락만 보는 경우'라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의 경우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도 마찬가지인데, 직접 확인하고 고민해서 나름의 깨달음이 생길 때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70 평생을 '공부꾼'이 되어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배움과 앎, 그리고 깨달음의 차이를 이제야 알게 되었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서도 '물리학자'가 될 것이며, 시인이 된다면 물리학자가 되고 난 이후에 할 것'이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의 신념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행복한 마음으로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게 살았고, 행복하게 산 것이 아닐까? 이 책은 그의 '70년 공부꾼'으로서의 행복한 삶에 대한 기록이다. 나도 이런 책 하나를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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