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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사랑을 전달하는 야간비행사의 고독한 사랑이야기

by Richboy 2008. 12. 27.

남방 우편기

저자 생텍쥐페리  역자 배영란  
출판사 현대문화   발간일 2008.12.01
책소개 생텍쥐페리의 아름다운 비행 문학!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쓴 아름다운 비행 문학『남방 우편...

 

 


 

사랑을 전달하는 야간비행사의 고독한 사랑이야기
 
  깊은 밤, 적막이 짙게 깔린 깊게 늦은 밤. 잠 못드는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한다.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저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에 빠져 있게 된다. 어느 즈음이 되면 어느 한꼬리에 매달리게 되는데 아예 자리를 잡고 깊이를 더하게 된다. 시간도 잊은 채, 내가 생각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런 적 없는가?
 
  밤낚시를 하면서 이런 적이 많았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또 다른 생각에 매달리다 내가 원하던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깊이를 더하는...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밤낚시의 묘미는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해결해야 할 걱정이나 문제를 안고 낚시를 드리우고 상념에 빠져 있으면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고' 있는 것도 아니요, 세월을 낚다가 운 좋게 붕어라도 한 마리 건지게 되면 작은 기쁨도 맛볼 수 있기에 장비를 챙겨서 깊은 밤 속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억지로 찾지 않아도 그런 경험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야간경비원, 범인을 잡기 위해 잡복중인 형사, 야간비행을 하는 비행사... 정신을 놓는다면 큰 일을 당할수도 있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이들이 자신들의 업무에 몰두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들이 글을 쓸려면 훌륭한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난 가을 읽은 소설 [이별을 잃다]의 작가의 직업이 형사인 것처럼. 오늘은 비행사의 이야기다. [어린 왕자]의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생텍쥐베리의 본격적인 첫 소설 [남방우편기]다.
 
 

 
"3만 명의 연인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게 바로 우편물이었던 것이다.... 연인들이여, 조금만 기다려라. 저녁놀이 불타는 가운데, 우리가 그대들에게 당도할 것이다. 베르니스 뒤로는 짙은 구름들이 회오리바람에 섞여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의 앞에서 대지는 태양빛 옷을 입고 있었고, 깨끗한 옷감은 바람에 너울거렸으며 나무는 대지를 두텁게 감싸 안았다. 돛은 바다에 주름살을 수놓고 있었다."
 
  우편물을 전달하기 위해 야간비행을 하는 자크 베르니스는 수많은 연인들의 마음이 담긴 사연들을 배달하지만 자신은 유부녀 주느비에브와의 이룰 수 없는 첫사랑에 괴로워하고 있다. 비행중에 일어나는 실제의 위험상황과 그녀와의 기억, 그리고 사랑에 괴로워하는 베르니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제로 작가인 셍텍쥐베리의 직업이 비행사였던지라 저자가 소설 속의 주인공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다만 한 남자가 자신의 이루어질 수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진솔한 마음은 소설 전부에 가득 차 있다.
 
"지금이 몇시지?
시간은 왜 자꾸 묻는 걸까? 이곳에서의 시간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시골 간이역처럼 0시, 1시, 2시, 이렇게 뒤로 물러나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잡아둘 수 없는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늙는다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 하지만 허비해버린 이 시간, 무언가 다른 듯한 이 고요함, 아직도 조금 더 멀리 있는 듯한 는낌, 바로 그런 게 피곤함을 몰고 왔다."
 
  정작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지 못하고, 외로움이 너무나도 고독했던 나머지 품게 되는 사랑파는 여자에게서 피곤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느비에브에게서 떨어져 멀어져 가는 시간을 두고 하늘 위에서 흘러가는 지상의 풍경처럼 느끼게 된다. 하늘에 있는 그는 '정복자'라고 말하지만, 영원히  한 여성의 마음만 훔치고 있는 도둑이었다. 남의 끈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그 역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잊기 싫어서 인지 잊혀짐이 무서워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사랑과 그녀가 느끼는 사랑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가 말하는 관계라는 끈의 생명력과 골동품으로 비유된 숨은 본질의 깊이 또한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그가 겪었던 고독과 깊은 밤 하늘 위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만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르니스는 고개를 돌려 다시 길을 떠난다.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바보 하나가 크게 상처를 입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것을 알면서도 길을 떠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날 만큼의 난리가 있어야 하거늘 파리는 조용하다. 남자들은 죽을 만큼 사랑할 줄 안다. 하지만 가끔 자신이 만든 허상의 그녀를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