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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일본소설 속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 모음집...

by Richboy 2009. 2. 1.

 

 

 

 

 

일본소설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 모음집...

 

  인류 최대의 관심사, 그것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다른 이유로도 행복해지지만 가장 행복할 때는 '사랑을 할 때' 즉,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받고 있을 때(이 둘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나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짜 '사랑'하고 죽는다면 소원이 없겠다." 칠순 넘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살아 생전 늘 하시던 말씀이다.

 

  사랑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사랑은 무한정 오래지도 않은 듯도 하다. 무한하다고 말하고 또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설명할 길은 많지 않다. 사랑은 보이질 않아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대상과 유효기간을 떠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행복해 보여 부러워진다. '이 사람은 누굴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하지만 전혀 부럽지 않을 때가 있다. 아예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을 때다.

 

  갈구하면 할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려워서 오래 살수록 그만큼 소중해지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사랑'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운운하는 사랑이나, 시답지 않은 노래속에 들어 있는 것들과 '도매급' 취급 받을까 두렵고, 입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퇴색되어버릴까 두려워 고백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슬픈 사랑도 있는데 '내가 느낀 사랑을 상대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려워(고백하기 전까지는 혼자서 사랑할 수 있었지만, 고백한 후 거절받았다면 그 후에도 사랑하게 되면 범죄자 취급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병이 날 만큼 앓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하지만, 사랑을 온전히 전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아무도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고, 온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은 정답이 없는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사람들도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어(말)에서 만큼은 소극적인 사랑을 한다. 알게 되고 자주 만나면 보통 '사귄다'고 느끼는 우리네와는 그들의 교제에는 '(나와) 사귀어 줄래(요)?つきあってください’(츠키앗떼 쿠다사이) 고백의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랑 愛あい이라는 엄연한 단어를 두고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는 '좋아하다'는 단어인 すきだ(스키다)를 사용한다. 우리는 '애인'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일본에서 그렇게 드러내놓고 愛人あいじん(아이진)이라고 말한다면 '불륜상대'를 뜻한다. 그래서 그들은 '애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라는 표현의 그(彼かれ・彼氏かれし) 라고말하고 그녀(彼女かのじょ)라고 표현한다. 그런 탓에 일본의 애정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속시원할텐데 쫄이는 듯 뜸들이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필자는 늘 답답하고 멍청하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색다르다' 혹은 '순수하다'고까지 생각하게 하는데, 필자가 일본소설과 일본영화를 즐기는 매력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드러내놓고 사랑을 말하는 일본 책'을 한 권 만났다. 혼자였을 때라면 '사랑? 흥, 그 따위 것은 지나가는 개나 줘버려!' 하며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結婚できない男'의 주인공 쿠와노 신스케(아베 히로시 분)처럼 빈정가득한 썩은 미소로 지나쳤을 테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때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고 느끼고 있는 지금(필자는 연애중이다)은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랐다.

 

  일본문학 특히 대학시절 그의 작품이라면 단편집까지 모두 찾아 읽었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중심으로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랑을 논하는 책인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전차남'같은 소설,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일본의 국민소설들도 소개되었다. 사이토 다카시의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이다. 원제, 恋愛力―「モテる人」はここがちがう 연애력 - (애인을) 가진 사람은 여기가 다르다 이다. 

 

 

 

 

  이 책에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이다. 그리고 이 소설들에 숨어 있는 사랑에 대해 '이제 됐다고, 배가 터질 것 같다고, 잘 먹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랑(상실의 시대)', '네가 내 안에 들어왔고, 그런 너를 내 안에 품었지만 네가 떠나고 싶으니, 잘 가라고 말하는 사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사랑했던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죽고 없다는 것도, 결국 무엇 하나 끝나지 않는 사랑(1973년의 핀볼)' 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책을 쓴 것만 같았다. 

 

다른 책들도 소개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는 '발꿈치에 밀리고 발끝에 채이다 언젠가 세상 끄트머리로 밀려날 것 같은 사랑' 이 있다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속에는 '자신의 가슴 깊은 곳이 시큼해질 정도로 자신의 사랑에 질투를 느끼는 사랑'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실화'이고, 오늘날 일본인의 (실제로 표현하지 못하는)사랑을 잘 표현했다고 하는 <전차남>에는 '화염방사기로 단숨에 숲을 태우는 게 아니라 한 그루 한 그루 묘목에 불을 붙여 나가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속 사랑을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텐데, 소설들을 이미 읽어 본 필자의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잘 표현한 문장들이라고 생각됐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우선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영화소개 프로그램'의 나레이터처럼 소개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결정적 사랑 장면'을 보여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의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설<상실의 시대> 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대화 장면를 살펴보자.

 

"더 멋진 말을 해줘요."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보드랍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이 장면에 대해 저자는 '끔찍하게 간질이는 것도 아니고 축 처져 느슨해지는 것도 아닌 적당하게 알맞은 정말 특별한 사랑의 언어'를 사용했다며 '봄날의 곰같은 사랑스러운 언어'는 실제로 이 표현이 광고 카피로 사용되면서 <상실의 시대>는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고 전했다. 하루키의 멋진 표현, '옳거니' 느껴지는 저자의 해설이었다.

 

 

 

 

  게다가 이 소설의 여주인공 미도리가 '배 터질 것 같은 사랑'을 말해 줬던 '딸기 쇼트케이크, 때론 초콜릿 무스와 치즈케이크의 관계'도 소개되고, 드라이하고 쿨한 대사들의 대명사 <바람 노래를 들어라>, 부족한 사람의 넘치는 사랑을 이야기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녀의 사라짐은 육십 억 인류에서 보자면 분명 사소한 일이지만, 그녀의 없음으로 나 또한 육십 억 인류속에서 없어지는 것과 말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상처는 청춘의 한 그늘이라며 그 순간 느낀 모든 희로애락이 모두 사랑이라고 말했던 <전차남>의 명대사들이 소개되고 맛깔나게 해설되고 있었다. 일본문학 속에 숨은 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고 열정적이며 아름다웠다.  

 

 그 밖에도 <금각사>, <산시로>, <겐지 이야기>, <선생님의 가방> 등 유명한 소설들도 등장하는데, 읽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어 그냥 넘겨버렸다. 절반을 약간 넘는 양을 읽는 맛으로도 이 책은 제 값을 다했기 때문이다.

 

'남의 사랑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고 말을 하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말의 권위자라고 알려진 저자의 일본소설 속 사랑훈수는 '연애박사의 카운셀러'같았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이 명대사들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할 만큼소설이 소개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다시 추억하고, 명대사들을 음미하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사랑의 힘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랑을 주고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저자도 이 책에서 이야기했지만, 다양한 모습, 다양한 상황의 사랑얘기를 통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애정소설을 말하는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신기한 필자는 이 또한 '사랑력' 때문이 아닐까 애써 변명하고 싶다. '사랑할 때는 누구나 시인詩人이 된다'고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벅차고 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들기에 뭉뚱그려 시詩라고 말했는 지 모르겠지만, 연애하는 이가 두근대고 울렁대는 연애의 감정을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정말 생기는 것 만은 확실하다. 새벽녘에 깨어 아침을 볼 때까지 궁싯대며 이 글을 쓰는 것도 필자에게 씌인 '시인의 욕망'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알 다가도 모를 것'이고, 그래서 표현하기는 아직 서툴고 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