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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처지가 달라 동조하기 힘든 호모오피스쿠스들의 이야기

by Richboy 2009. 2. 23.

 

 

 

 

 

처지가 달라 동조하기 힘든 호모오피스쿠스들의 이야기  

 

  애초의 생각과는 조금 엇나갔다. 물질만능주의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자가 되어버린 윌리 로먼의 이야기를 그린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생각하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차이는 시공간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사람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잘 나가던 광고회사 직원들이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는다. 격분한 해고자들의 뜻하지 않은 행동들, 그리고 자신들도 해고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회사생활을 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야기,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 떠오로는 신예 조슈아 페리스의 처녀작이고, 원제는 Then we came to the End 다. 

 

 

 

 

  세계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작금의 경제상황에 이 책을 펼치는 의미는 남달랐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 계속 엇나가고 있었다. 닷컴 붕괴로 실직되는 광고회사의 직원들은 보통 샐러리맨들과는 차이를 갖는다. 그들에게 닥친 해고통지는 패배를 모르는 엘리트들에 대한 사형선고다. 그래서 그들의 광기는 소설속 허구라는 인정하에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한편으로는 회사측의 '해고통지'가 마치 의사의 '정신이상판정'을 내리는 순간과 닮아 동조하기가 여러웠다. 

 

  특별한 대우와 월등한 보수는 엘리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근무태만은 창작을 위한 소일이라 여기는 그들에게 꺼져가는 닷컴의 거품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마치 오늘날의 월가처럼. 월가의 신참내기 직장인이 IT의 떠오르는 강국 한국에 와서 밤에는 육지주림에 빠져 있다가 낮에는 산해진미로 해장하며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수억의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호강을 세상에 알렸다. "난 지금 한국에서 왕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그 또래들의 이야기인듯 해서 그들을 수발하고, 보좌했던 한국인으로서 읽는 내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들의 광기와 몰락에 조금은 고소함을 느꼈다. 나도 미쳐가는 걸까?

 

  서두에 던진 말처럼 <세일즈맨의 죽음> 속에 등장하는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몰락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보험금 몇 푼을 건지려 목숨을 던지는 그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서운하다 하겠다. 파산 위기에 있는 월가의 기업들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정부에 그들은 '벌만큼 번 사람'이고, 이번 위기 또한 그들의 '얕은 윤리관'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구제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등장하는 호모오피스쿠스들의 발버둥을 어떻게 소화할 지 궁금하다. 거품은 붕괴를 예고한 인간재해다.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일찍 무너지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거품붕괴의 피해가 고스란히 신의성실에 입각해 열심히 근무했던 선량한 샐러리맨에게만 전가되는 것이 안타깝다. 

 

  "난...열심히 노력해 이곳에 취직했을 뿐이고, 상사들의 눈치보며 열심히 근무했을 뿐" 이라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과장하고, 분노하며 광분하고 있었다. 그 책임이 과연 회사에만 있었을까? 스토리의 복잡한 전개와 자잘한 사건과 에피소드의 혼재는 호모오피스쿠스들이 처한 위기와 불안감의 정신없는 역동성과 닮았다. 애초에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곱지 못한 내게 이 책은 가독성 제로의 답답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눈으로 보는 듯 옮겨 놓은 저자의 묘사와 세밀한 서술은 인정해야 했다. 호好시절에 읽는다면 쓴웃음지을 추억꺼리가 되겠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가 읽기엔 '강제해고시 행동강령'같아 자꾸만 눈감아지게 만들었다. 시절을 못만난 소설, 제자리도 잘못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