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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이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와는 모양 다른 친구, 말리의 이야기

by Richboy 2009. 2. 25.

 

 

 

 

 

이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와는 모양 다른 친구 이야기

 

  우리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다. 엄연한 '찌비'라는 이름과 가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시츄종의 이 개와 5년 째 함께 동거를 하고있다. 어느 친절한 수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엄연히 개이기에 애완견답게 키워야 할 것을 버릇을 잘못 들여놔 베개가 없으면 잠을 자지 않고, 밥과 물을 달라고 냉장고 앞에서 의사표시를 하고, 용변을 볼라 치면 사람 개똥 피하듯 식겁을 하고 도망가는 녀석이다. 제가 사람인 줄 아는 개. 더 이상 애완동물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개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찌비' 또는 '요년, 조년'으로 불린다. 남들 눈에는 그냥 개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안보면 보고싶은 가족과 다름없다.

 

영화와 책이 동시에 나와 회를 동하게 한 책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물의 주인공으로 자주 나오는 오웬 웰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이 나와 중박의 흥행은 보장된 것 같은 영화보다는 책에 관심이 더 갔다. 실화라는 사실이 그 이유였다. 존 그로건의 <말리와 나>다. 원제는 Marley & Me: Life and Love with the World's Worst Dog 다.

 

 

 

 

  제목부터 말썽쟁이 개의 이름 ‘말리’가 먼저 등장한다. 가족의 심오한 뜻을 알아서 라기 보다는 서로가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 초보부부 존과 제니는 우연한 기회에 신문광고에 나온 강아지(말리)를 사게 된다. 즉흥적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말리’는 맹인안내견으로 쓰일 만큼 사람들과 친화력이 강하고 온순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이었기에 둘은 안심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천만의 말씀. ‘말리’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물어뜯고, 먹어버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말썽쟁이 그 자체, 심지어 애견학교 교관도 포기한 그런 개였던 것. 사고뭉치 말리와 티격태격하면서 존과 제인은 인내심과 애정으로 말리를 돌보며 가족이 점차 가족이 되어갔다. 제인이 아이를 가지면서 한 두 차례 가족에게 위기가 찾아오지만 비온 뒤 땅이 단단해 지듯 말리를 포함한 그들의 가족애는 더 깊어간다. 불행히도 인간과 개의 삶의 시계가 같지 않으므로 점점 ‘말리’가 가족들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서 지켜주는 말리의 죽음은 생각보다 슬프지만은 않으리라. 누구보다 행복한 죽음인지 모른다. 

 

 

 

 

  2009년 한국에도 애완견에게 인식표나 마이크로칩 같은 일종의 애완견 주민등록증이 생겨났고 이제는 애완견이라는 표현보다는 가족의 의미를 지닌 반려견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개는 그저 된장국에 남은 밥이나 말아주면 먹고, 마당에서 꼬리나 흔들다가 복날 조용히 사라지는 서글픈 존재였었지만 이제 이 땅에 존재하는 개는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엄연히 가족인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어김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애완견을 보면 ‘이 세상 어디에 저 개만큼 평생 배신하지 않고 날 반겨주는 이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내가 아는 어떤 분이 말했다. 가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애완견은 단순한 개 이상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재확인하게 해주는 어쩌면 가족보다 나은 동반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나라의 개주인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가지면 기르던 애완견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천덕꾸러기 유기견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아이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일부러 임신 중 또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계획적으로 애완견을 입양한다. 특히 최소 10년은 같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종별 특성, 환경, 자신들의 상황 등을 꼼꼼히 따져서 입양한다. 말 그대로 가족이 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다. 어리고 귀여울 때 예뻐하다가 나이 들어 병들었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사랑을 주었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 가족이 되어 그 곁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 '제사상이라도 차려줄 사람'으로 자식을 보고 그의 일생에 간섭하는 한국의 부모와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자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가도록 독려하는 서양의 부모가 차이가 있음과 다름없다. 필요에 의한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인간과 개의 삶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가족으로 동일시하며 서로 위로받고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평생 꼬리를 흔들며 '귀여움'을 받아야 밥을 얻어먹는 개. 인간보다 백만배의 후각을 지니고, 흑백의 컬러만을 볼 수 있는 개는 인간들의 가장 친한 동물이다. 아니 친구다. 가슴 훈훈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