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책
일찌기 르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책을 읽는 여러가지 장점 중에서 '언제 어디서든 공서고금의 인물들과 단 둘이 책을 통해 대화할 수 있음'을 말한 내용이다. 저자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멀리 살거나 코 앞에 살더라도 책장을 펴면 그와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저자가 백과사전에 등재될 만큼 위대한 인물이나 직접 대면했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라면 그 놀라움은 한층 더한다. 그럴 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에도 들어가는 '책'의 위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때는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저자를 만날 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쓴 책을 우연히 읽었는데, 내가 큰 깨달음을 얻었거나, 늘 생각했던 공감들을 만날 때다. 그럴 때면 그런 영감을 준 저자도 놀랍지만, '한낱 종이 한장에 활자 몇 자들이 새겨진 묶음'인 책에 더욱 놀란다. 그런 책을 만날 때면 '한없이 정적精的'이어서 다이내믹한 요즘에 맞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책읽기' 습관이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흔하지 않지만 이렇게 책읽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은 내게 그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서재에는 꼭 꽂혀 있었고, 많이 읽히며 사랑받더라'는 지인의 말씀을 듣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주문한 책이다(이런 경험은 몇 번 없는데, 그런 소개로 만나는 책은 실패한 경우도 거의 없다). '책읽기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말하는 저자 안상헌은 이 책에서 책을 읽는 이유를 들어 ' 자신의 생활과 책읽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소개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책읽기, 이렇게 하라], [책읽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지름길 독서, 입장을 바꿔보면 책읽기가 쉬워진다], [책읽기, 그 속에 길이 있다] 는 큰 제목으로 책읽기에 관한 서너 페이지의 짧은 글들이 총 50 편이 수록되어 있다. 좀 더 책을 잘 읽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지금껏 십여 권의 '책읽기'에 관한 책을 읽었었는데, 이전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읽은 책들이 하나같이 책읽기에 대한 예찬론이 가득했다면, 이 책은 책읽기보다는 '책즐기기'에 가까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저자의 생활이 뭍어 있는 글 속에서 항상 존재하는 책 이야기, 그리고 책을 통해 얻고 있는 느낌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편 한 편의 막간마다 한 페이지로 정리된 <책 리뷰>를 읽는 맛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여러 장르의 좋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앞의 글을 보충하는 듯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는 책 내용은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500 자 짜리 리뷰를 써야 한다면 이처럼 써야 하지 않을까? 50 편의 글들도 저자의 말대로 그의 책읽기는 자신의 생활에 잘 녹아들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읽히는 맛은 어느 수필집 못지 않았고, 책읽기에 어려움을 표하는 독자들에게 청량감을 줄 만큼 쉽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었다.
저자는 '책을 읽어도 바로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독자들의 불안에 대해 '학습된 무력감'이 작용되어 '읽어봤자 별 소용없다'는 느낌을 준다면서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한 권, 두 권 늘려가다 보면 어느날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변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이것은 나 역시도 책을 읽는 초심자들에게 ' 빈그릇이 넘치려면 어느 정도 물이 차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 밖에도 책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읽으면서 외우고 싶은 말을 표시하고, 논평하고 싶은 부분에는 낙서를 해서 또 다른 '나만의 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 독자인 내가 비록 저자보다 생각은 짧다 하더라도 느끼기에 건강하지 못한 책에는 과감하게 '아니다'라고 거부해야 한다는 것, 때로 슬럼프나 생활 면에서 의미있는 시간들과 열심히 책읽기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주로 책읽기에 치우쳤지만) 말고, 균형잡힌 시각을 갖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등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부분들을 잘 짚어주고 있었다. 책읽기에 대한 깊은 내공이 아니라면 이런 대답들은 이렇게 편하게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이라는 부제는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책읽기를 하면서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서재에 책을 꽂는 재미에 빠져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또 한 때는 '리뷰쓰는 재미'에 빠져 리뷰를 쓰기 위해 소재용으로 책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책읽는 행위'는 건전하고 건강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이보다 더 생산적인 일이 또 있을까? 특히 요즘같은 불황에 자기발전적 책읽기는 더할 나위없이 경제적이고 바람직한 문화활동이요, 자기계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읽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책읽기가 더욱 의미있고 재미있어 질 것이다. 페이지마다 새기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던 책, 책좋아하는 이 놈을 행복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가 쓴 또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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