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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신인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설. 잘가요, 언덕!

by Richboy 2009. 4. 23.

 

 

 

 

 

 

신인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설. 잘가요, 언덕! 

 

  한숨에 읽어내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제작된다면 그걸 쫓는 편이다. 두 시간 남짓의 영화로는 소설 속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주인공, 배경 모두 감독이 의도한 설정일 뿐 소설을 읽는 독자의 상상 속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는 것도 물론 안다. 큰 맘먹고 소설 몇 권을 집었다가도 구입을 하는 것은 경제경영서다. 많지 않은 구입비로 최대효과를 느껴야 한다는 경제원칙이 늘 적용되고 한다. 그렇다고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뭄에 콩 나듯 읽는 소설은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촌구석에 왔다가 사라지는 써커스 유랑단에 빠진 아헤들처럼 잠을 설칠 지경이다. 그래서 내가 읽은 소설은 다 재미있다고 한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정말 재미가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한다. 내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내가 말하는 소설이야기는 잘 듣질 않는다. 소설을 읽은 숫자가 저희들보다 적으면 적었지 절대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 말은 한 귀로 흘린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재미있다. 이번엔 진짜다. 진짠데....

 

워낙 소설을 읽지 않는 터라 혹 읽을라치면 명성이 자자한 소설을 찾아 읽는다.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 근래에 말이 많은 작품들을 읽는다. 이말은 곧 그렇지 않은 작품은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인 셈인데, 이 소설은 유명한 작가도, 잘 알려진 소설도 아니다. 대신 유명한 연예인이 썼다. 책을 잡았을 땐 말 그대로 시큰퉁했다. 하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오호, 이것 봐라?’ 놀랐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차인표의 <잘가요, 언덕>를 그렇게 읽어내려갔다.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 마을에 평화로움을 깨고 나타난 황포수와 용이‘ 마을 주민과 순이 그리고 훌쩍이, 나라의 부름으로 위안부를 모집하러 온 가즈오 마쯔에다 대위, 이들이 엮어내는 이 이야기는 아이 엄마이자 아내의 원수 육발이를 찾아나선 복수극이기도 하고, 순이와 용이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기도 하며,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가즈오 대위의 번민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절묘하게 서로에게 엮여 있고, 주인공 한 명 한 명 의 마음이 애절하고 간절해 읽는 내내 손을 뗄 수 없는 흡인력으로 다가왔다.

 

열 여섯의 나이에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에 끌려갔다 지난 1997년 돌아온 훈할머니의 스토리를 듣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 차인표의 말처럼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게 한 사건에 대해 쌓인 원한이 얼마나 깊을까 고민을 하게 한다. ‘내가 저렇게 당했다면, 그들 같을까’ 오히려 더 하진 않을까? 이 소설은 절대 잊지 말하야 하는 역사의 순간이지만, 마음은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서하지 않으면 마치 용이가 엄마별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생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작가 차인표는 철저하게 제 3자가 되어 있다. 대신 자신의 코멘트는 새끼 제비가 되어 자신을 나타냈다. 카메라에 익숙한 그는 소설에서도 마치 카메라를 들이대듯 페이지마다 장면을 그려냈고,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플롯 구성도 치밀했다. 도저히 신인작가라고 할 수 없을 만큼의 유려함이 그를 의심하게 한다. 많이 읽은 탓일까? 많이 고민한 탓일까? 이토록 유려한 글을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까?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가 그의 진실을 말해주리라. 그만큼 훌륭한 소설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의심에 탓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