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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틱한 일곱 개의 단편. 단, 한꺼번에 읽지 말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못됐다. 뉴스나 신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교통사고와 자연재해을 접하면 ‘저런 쯔쯧쯧~’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유독 살인사건, 다시 말해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서는 ‘오~ 무슨 일이고?’ 하며 관심을 둔다. ‘왜 죽었을까?’에 흥미를 느낀다는 말이다. 남의 일같지 않아서 일까? 살인자적 측면일까, 피해자일까 알 수 없다. 이런 관심도 부족해서 사람들은 추리소설을 읽는다. 살인사건은 왜 일어났고, 범인은 누굴까?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을 잡았다면 어떻게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 한다.
물론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가족의 억울한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잡는 것은 응당 당연한 일이고, 가장 우선적인 해결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관심을 두는 것이겠지만, 독자가 모두 형사가 되고 싶을 리 만무한데 왜 그렇게 있지도 않은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까지 살인사건에 집착해야겠냐는 말이다. 그런 이유는 이런 사건은 좀처럼 만나 보기 힘들고, 또한 죽은 사람을 놓고 벌이는 범인과 형사의 머리싸움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풀어야 할 해답’ 중에 가장 ‘스릴’이 있는 싸움이기 때문은 아닐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끔찍한 스릴’을 즐긴다니 그게 못됐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든 이야기를 즐기니 더 못됐다.
요즘 내가 못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늦은 밤 조용히 홀로 앉아 잠을 잊고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 읽고 나면 항상 ‘피해자의 억울함’과 ‘범인의 잔인함’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실마리가 잡히고 서서히 풀려가는 매력에 사로잡혀 책을 놓질 못한다. 그 원인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쁜 사람이다, 이 사람. 지난 토요일 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을 읽으며 밤을 새웠다. 원제목 犯人のいない殺人の夜 이다.
살인사건은 일어났다. 하지만 범인이 없다? 말 그대로라면 자연사나 자살이 아닌가? 하지만 자연사도, 자살도 아니다. 과연 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를 범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일곱 편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일본에는 199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의 작품다운 트릭과 의외성이 숨어있는 단편 미스터리물이다. 지금껏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장편소설이고 ‘놀라운 지능의 범인’과 ‘ 더 놀라운 지능의 해결사(형사, 물리학 박사)’의 승부였다면, 이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다반사’의 사건과 ‘평범한 인물’들이 가해자라는 점이 특별했다. 그의 장편에서 느꼈던 길고 긴 숨과 최고 꼭지까지 고조되는 긴장감은 없지만, ‘평범한 사건 속에 숨은 의외성’은 장편의 그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에서 말이 되지 않는 사건에 대해 글을 쓴다면 ’개연성도 없고, 현실성없는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이 현실이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소설들이 들어 있다. 길고 짧은 한 편 한 편의 스토리마다 임펙트가 강했다.
<작은 고의故意에 관한 이야기>는 말그대로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을 말한 단편이다. 이는 ‘과실치사’ 즉 고의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주의의무위반이나 발생한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을 문제삼는 과실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고의성故意性을 지닌 우발적 살인을 이야기했다. 사춘기 시절에 겪는 연인의 버려짐, 즉 실연失戀의 가능성에 일어난 사건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과적 사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둠 속 두 사람> 역시 청춘시절 겪는 사랑으로 빚어진 사건을 담았다. 사랑과 욕정을 누가 함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욕망 앞에서 있는 인간은 누구나 나약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춤추는 아이>는 소년의 안타까운 사랑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3미터 거리 만큼 떨어진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다. 짝사랑이 그것이다. 답을 알 수 없기에 한없이 순수하고, 뜨거울 수 있는 이 사랑은, 알려지는 순간 불쾌한 집착으로 보여지거나 혹은 오해를 사는 아픔을 낳는다. 내가 던졌던 짝사랑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그래서 그들도 인생이 변했을까?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끝없는 밤>은 형사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했다. 용의자 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범인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 형사들은 자신이 찍은 용의자가 범인인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기뻐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 했을지를 알아야 하기에 범인의 입장에서 다시 추적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끝내 죄는 미워하고 인간은 미하지 말아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시각을 잃어 자신이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항상 오감을 깃세워야 하는 그들의 직업에 경의를 표하게 했다.
<하얀 흉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지 않게 ‘호러물 같은 공포심’을 불렀다. 자식을 잃고 ‘싸이코’가 되어버린 여성을 보면서 가늠할 수 없는 모성애의 깊이와 넓이를 만나게 된다. 또한 상심의 원인을 찾아 복수하는 원초적인 인간성을 목격한다. 섬뜩한 소설이었다. <굿바이, 코치>는 무서운 살인사건 이야기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 남에게 불행을 부르는 인간과 자신의 영원한 사랑은 자신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인간이 빚어낸 살인이었다. 전반적인 이야기들이 사건의 정황을 비출 때 ‘일본인답다’는 느낌을 받지만 이처럼 잔인하도록 섬세한 사건을 만나면 ‘과연~’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마지막 작품인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작품의 백미였다. 쇼프로에서 ‘조용필’은 맨 나중에 나와 대미를 장식하듯 이 작품 한 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반전에 반전, 마지막 대반전은 어의를 잃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코멘트는 불가하다. 느낌도 말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읽어야 한다. 서점을 찾아 서서라도 이 작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이 ‘완전무결한 사건’을 만들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가장 크게 단죄해야 할 ‘살인’을 해놓고,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의 악심惡心은 과연 그들만의 소유물일까? 그리고 불완전하기에 그 자리에서 ‘범인’을 벌할 수 없는 형사는 어떤 심정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대할까? 이것이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찾는 ‘행간의 의미’다. 만약 우리가 제목처럼 ‘범인없는 살인 이야기’를 읽는다면, 아마도 그 책을 읽고 ‘범인 없는 추리소설이 말이 되는가?’ , ‘추리소설가는 직무태만을 한 것 아닌가?’ 외치며 재미없는 책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뭍혀가는 수많은 사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사건들은 ‘말이 되는 사건인가?’ 소설같지 않은 사건들이 현실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범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범인이 잡히지 않는 한 스토리는 진행중이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으면 범인의 지능과 형사의 사건해결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작가’의 필력에 얼만큼의 찬사를 던질지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얼른 잊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무려 일곱 건의 살인사건이 아니던가? 게다가 주위에서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한 것이어서 작가의 필력을 운운하기에 앞서 피해자와 살인자의 면면에 사로잡혀 미망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늦은 새벽에 한 권을 모두 읽고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 기분이란... 겪어보지 않았다면 말을 말아라. 과거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성을 발견할 수 있는 책, 하지만 편한 밤을 보내려거든 하루에 한 편씩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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