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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의 고통, 외로움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
술 몇 순배에 거나해진 취기를 빌어 ‘마이 라이프’를 이야기할 때면 이십대의 여대생이나, 사십대의 아저씨나 같은 말로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하라고? 오늘 하루로 끝나겠어? 소설로 쓰면 한 질이다, 한질.” 명동거리 cafe가무佳舞 3층에서 옛날 크림 가득한 비엔나 커피에 따끈한 팬케익을 먹으면서 사람구경을 해보라. 가득한 웃음과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 걱정 근심이라곤 눈씻고 볼래야 볼 수가 없다. ‘모두 행복한가 보다. 나만 인생이 우울한 게냐?’ 불쑥 빈정이 상해질 법 하다. 하지만 내려가 길을 막고 그들의 인생을 물어보라. 표정은 이내 바뀌고 모두가 ‘한 질 가득 소설 속 비련의 주인공’은 저들이라고 손들테다. 난 어떻냐고? 나야 물론 한 질 갖고는 어림없다 할테고...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다. 슬프면 슬픈대로 위안받고(난 그렇도록 슬픈 인생은 아니거든),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대로 위안을 받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 죽거나 다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가슴 쓸어안아 난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성공하고 잘나서 결국은 행복해지면 ‘그래, 너라도 그렇다니 다행이다’ 위로한다. 허가받은 거짓말쟁이(소설가)가 꾸민 이야기이거늘 울거나, 웃거나, 심각해지는 날 보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종국엔 아직은 내 심장이 따뜻한가보다 스스로 대견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소설을 읽으면 ‘내 삶만 팍팍한 건 아니다’싶은 결론을 얻는다. 그리고 ‘아직 인생은 더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더냐’ 자문하게 된다. 소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도 그 기대에 부응했다. 파란만장한 리처드도 사는데, 나라고 인상구기며 살 이유는 절대 없다.
이미지 출처: Flickr
이 소설의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가에 사는 중년의 사내 리처드 노박이다. 열 살 때부터 동생이 구슬치기를 할 때 장사를 하며 은행에 개인구좌를 트고 집집마다 돌며 장사를 했던 이 사내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히 외롭게 사는 혼자다. 사업에 몰두하느라 이혼을 한 후 아내와 아들 벤은 따로 살고 있다. LA의 높은 언덕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저택에 사는 그였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갇혀 살거나, 사육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낫다. 하루 종일 자신을 서빙해주는 가정부 실비아, 삼시 세끼의 영양을 책임지는 영양사에 정기적으로 운동을 관리하는 트레이너를 두고 있는 이 사나이는 매일 아침 컴퓨터 모니터에서 주식시황과 계좌내역만 체크하면 그다음은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나이다(일 안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부자라는 말도 되겠지만).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저택에서 갑작스런 통증을 느끼며 그것 즉 죽음을 예감한다. 급한 마음에 옛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냉랭하기 그지없고, 아들조차 여행을 떠난다고 관심두지 않는다. 곧 죽는다 해도 울어줄 이가 없다. 쓸쓸함, 리처드는 외로움이 닥친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병명을 알 수 없다. 이내 통증도 사라졌다. 퇴원하는 길에 영양식 외엔 먹지 않던 그는 도너츠를 먹게 되고, 도너츠 가게 사장과 친구가 된다. 마트 과일코너에서 ‘불만스런 인생’에 울고 있던 여인과도 친구를 먹고, 뒷집에 사는 영화배우와도 안면을 튼다. 죽었다 살아난 그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순하기 그지없던 그의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들 벤의 정체는 청천벽력같은 충격이었고, 말리부에서 사귄 친구 닉은 세계적인 문학가란다. 요가선생과의 사랑에서도 숨겨진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했던 아들 벤의 진정한 속마음도 알아가게 된다. 리처드는 인간속의 인간, 다시 말해 속시끄러운 인간세계人間世界속 인간人間이 된 것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리처드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와 <버킷 리스트> 속의 ‘잭 니콜슨’을 생각나게 한다(잭 보다는 열 살 정도는 어려야 하겠지만). 공황장애와 인간세상의 참맛을 노년에 되찾는 코드도 비슷하지만, 어눌한 행동하며 사람들과 부딪히며 어리둥절하는 모습 면면은 잭을 닮았다. 비록 늦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물량공세다. 그가 가진 거라곤 돈 밖에 없으니까. 돈을 위해 살다가 가정을 잃고, 아내를 잃고, 자식 벤을 잃었던 그가 그 돈으로 다시 사람을 얻는 아이러니는 지극히 물질만능주의의 대명사인 아메리칸 드림답다.
하지만 소설 속 스토리를 부자의 돈지랄이라고 치부하며 빈정대기엔 리처드는 너무 나약하고 위태롭다. 미래의 내 모습 같고, 비슷한 또래 같아서 그가 가진 생각과 슬픔 그리고 회한이 남 이야기같지 않았다. 모두 잃었던 그가 느끼고 깨달으면서 하나씩 찾아가는 모습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내 삶에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는 듯 했다. 인간이 시계를 만들어서는 12칸짜리 시침 두 바퀴에 하루를 정해 놓고, 그 속에 갇혀 살고 있듯이, 내가 만든 내 삶 속에 지쳐가는 내 모습도 자의든 타의든 고개만 돌려 인간을 향하면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던 성공은 성공이 아니었고, 내가 그리던 행복도 행복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 뿐만 아니다. 내 옆집 사람도, 내 뒷집 영화배우도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평범한 듯 보이는 하지만 실은 모두가 불행한 사람들이 둘이 모이니 답이 보였고, 그들이 이야기하며 세상을 바라보니 작지만 행복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인간의 막연한 불안은 외로움이고, 그 외로움은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모르고 버려버린 내게 있던 보물이었다. 아프고 괴롭고 조용했던 사나이 리처드는 책장을 넘길수록 ‘잃어버린 성궤’를 추적하는 해리슨 포드의 액티브 못지 않았다. 한 시도 마음이 조용할 수 없이 혼란한 상태, 하지만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행복과 사람사는 맛은 그 속에 있지 않던가?
리처드의 가족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생각나게 했다. 정신없는 LA사람들, 더 정신없는 그들의 대화는 제정신을 반쯤 놓아야 차라리 이해가 빠를 정도다. 무지건조하게 툭툭 짧게 던지는 A.M. 홈스의 글은 마침표의 뒤에서 글맛을 깨우치게 한다. 평범하지만 불안한 사람들의 아슬아슬하고 위태하면서도 재미있고, 작은 감동도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당장 내 인생을 구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모르지...20년쯤 후에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내 인생을 살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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