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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소설·비소설·인문·

폴 오스터의 소설들, 혼자 쓴 것이 아니었다?

by Richboy 2009. 5. 30.

 

 

 

 

 

 

폴 오스터의 소설들, 혼자 쓴 것이 아니었다?

 

  어느 가수가 미술작품을 깊숙한 생각에 잠겨 한없이 바라봅니다. 곧 작품 속에서 영감을 얻어 미술작품을 소재로 곡을 만들게 되는데요, 올드팝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곡, 빈센트Vincent가 태어납니다. 이 노래는 유명한 화가였던 빈센트 반 고흐의 Starry Night이라는 작품을 보고 돈 맥클레인이 만든 노래입니다. 작품 Starry Night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당시에 그렸는데요, 밖을 볼 수 없는 고흐가 기억속에 있는 별들이 빛나는 밤을 자신의 감정을 더해서 그린 것이죠. 작품을 보면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격정적인 그림이 나왔나 하는 궁금증도 갖게 합니다. 돈 맥클레인의 곡 빈센트 역시 반짝이는 별처럼 열정적이면서도 약간은 우울한 느낌이 들어 외롭다는 기분에 젖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외로운 영혼,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지만 세상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고흐의 마음을 떠오르게 하죠. 미술작품과 음악이라...어울리지 않습니까?

 

 

 

 

The Starry Night ( La Nuit Etoilee)

Vicent van Gogh, 1889

Oil on canvas 73.7 * 92.1cm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City

 

출처:  그녀의 고양이 시즌 하나 | 샤니파워
원문: http://enamublog.com/130045796638

 

 

 

<The Starry Night; 왼쪽 하단>

 

 

 

 

 

 

 

<The Starry Night : 오른쪽 하단>

 

 

 

 

<The Starry Night 오른쪽 상단>

 

 

 

 

 

 <그가작품을 그리기 전, 펜으로 드로잉한 작품>

 

 

 

 

 

  오늘 또 다른 어울림을 찾았습니다. 하나의 타자기typewriter 로만 저술활동을 고집하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워드 프로세서가 나오고 컴퓨터가 나왔는데도, 여행을 하면서도 이 무겁고 소리나는 타자기를 들고 다니며 창작을 했다네요. 소설가 김훈 님이 아직도 원고지에 펜으로 원고를 쓰시는 것처럼요. 작가의 머릿속 이야기는 마치 혈액처럼 글자들이 팔을 타고 내려와 타이프를 치고 펜을 붙잡는 손에 쏠려서 종이에 옮겨지는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타자기를 고집하는 소설가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어느 미술가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곧 타자기에 반해 버립니다. 왜 반했을까요?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미술가는 타자기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그 훌륭한 소설을 그려낸 기계가 너란 말이냐?“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미술가는 타자기를 자신의 작품소재로 그려 넣었습니다.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 화면 가득히 타자기를 그렸습니다. 미술가는 타자기를 줌인을 하기도 하고, 줌아웃을 하기도 합니다. 정면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내려다 보았습니다. 곡선미를 보이듯 옆으로도 틀기도 하고, 타자기에게 입을 크게 벌려 웃어보라고도 하는 듯 합니다. 졸지에 제 삼가가 되어버린 소설가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타자기가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하기에 자신에게는 ‘함께하는 유일한 밥줄이요, 영원한 친구’인 타자기는 ‘나’만 알아보는 줄 알았는데, 또 한 사람이 늘었으니까요. 게다가 타자기는 글을 토해 놓아야 제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제 모습만으로도 주인공이 되었으니, 제 삼자로 밀려난 화가는 소외된 기분도 얻게 됩니다.

 

 

 

 

  미술가는 작가도 물론 그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는 정신없고, 산란하며, 불안정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다크써클이 그득하고, 담배연기도 그득한 정신없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그에 반해 늘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타자기에게서는 아우라마저 느끼게 작품으로 묘사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묘한 만남의 주인공들은 현대미국문학의 거장이 된 폴 오스터paul Auster와 샘 매서Sam Messer입니다.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묘사하는 폴이 그냥 있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타자기와 어쩌면 나보다도 더 타자기를 사랑하는 듯 한 샘과의 만남을 한 권의 책으로 꾸몄습니다. <타자기를 치켜세움the Story Of My Typewriter>입니다. 70 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은 타이핑된 활자(아쉽게도 한글입니다. 원작은 폴의 타자기의 활체가 그대로 뭍어 있다네요? 갖고 싶어집니다)와 샘의 그림들로 가득합니다. 폴만이 갖는 짧은 문체의 맛과 샘이 그려내는 타자기 그림들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폴의 작품이라면 작품이고, 샘의 도록圖錄이라면 도록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우선 하나는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친구같고 동반자같은 소품이야말로 나만의 명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해에 ‘생활명품’을 이야기한 책도 있었는데요,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모아 사서는 잠깐 쓰고 고이 모셔두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명품 말고요, 내 손때와 추억이 뭍은 나만의 명품을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따져 생각해 보니 제게는 ‘검정색 세컨드 백’이 있더군요. 7-8년 년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작은 가방인데 제 애인은 ‘사채업자 가방’같다고 놀리는 조금은 낡은 보퉁이입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는 터라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지갑, 때때로 손수건까지를 모두 넣으려면 항상 주머니가 꽉 차서 가뜩이나 퉁퉁한 몸이 영 맵시가 나지 않았는데, 모두 털어낼 수 있어서 고마운 녀석이죠. 조금 구겨넣으면 단행본 한 권도 들어가니 꽤 신퉁한 녀석이죠? 여러분은 없어서는 안될 소품, ‘나만의 명품’이 무엇인가요?

 

 

 

 

 

  두 번째는 폴을 생각했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폴의 타자기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요, 제 마음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폴의 능력과 고맙고 소중한 것 만큼 아껴주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아마도 폴은 자신의 오랜 타자기 앞에 서면 처음 소설을 쓸 때를 기억할 겁니다. 숱한 밤을 함께 하얗게 지새우며 타자기와 씨름한 시간을 기억할 겁니다. 폴이 타자기와 함께라면 북극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추운 곳에서도, 타지마할의 여명을 느낄 수 있는 더운 곳에서도 글을 쓸 준비가 될 겁니다. 폴은 타자기고, 타자기는 폴이 될 겁니다. 몰입을 생각합니다. 삼라만상의 세상사를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몰입은 인간이기에 갖는 기쁨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몰입을 합니다. 그 기쁨을 익히 알기에 몰입할 꺼리가 없고, 몰입할 수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하거나, 약물에 취하기까지 하니까요. 어떤 행위를 통하든 몰입의 기쁨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인 것 같습니다. 위험한 몰입을 빼고는(사실은 위험한 몰입을 전 잘 모릅니다) 뿌듯한 보람이 있습니다. 시간을 보낸 즐거움이겠죠. 그래서 나중엔 ‘사는 맛’을 느끼게 됩니다. 폴에게는 타자기와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이 몰입하는 시간이겠죠?

 

  우리는 소설을 읽은 후에 소설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소설가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죠. 소설가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은 소설가의 수필을 읽는 겁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낼 때는 창조자여서 경외로움을 느끼지만, 수필 속에서 만나는 소설가는 ‘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위안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죠.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읽고 나니 폴의 소설들이 더욱 읽고 싶어집니다. 이젠 폴의 소설도 읽지만, 소설 속 활자 속에서는 타자기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아서요.

 

  소설가는 못됐습니다. 어린이집에서도 가르치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그리고 그럴싸하게 책으로 마구 늘어놓으니까요. 사람들은 멍청합니다. 이 허가받은 거짓말쟁이들의 거짓뿌렁을 익히 알면서도 기꺼이 돈을 주고 사서는 아까운 시간을 쪼개 읽으며서 웃거나, 눈물지으니까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 했던가요? 그렇다면 이 책은 세계가 인정하는 하얀 거짓말쟁이의 동업자의 이야기겠네요? “이 책은 폴 오스터가 쓰고, 샘 매시가 그린 타자기 평전입니다.” 결국 이 한 문장을 쓰려고 저도 뻔뻔하리 만큼 잡설을 늘어 놓았네요. 마음이 넉넉해지는 오늘, 펼치면 좋을 기분좋은 책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Written by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