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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고 친절한 배려가 돋보이는 동화책. 굿 초이스였다!
내 기억에 우리집에 동화책은 별로 없었다. 구슬과 딱지, 그리고 소년중앙, 새소년같은 월간 어린이 책만 그득 했다. 왜 없었을까? 비싸서 살 수가 없었는지, 도통 읽지를 않아서 몇 권 사주시다가 포기하셨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맞벌이였던 부모님이 책을 읽어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은 한몫을 할게다. 어린시절 난 보지도 않고 동화를 좔좔~ 외는 친구들이 꽤 부러웠다.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조카들에게 좋은 일 한 번 해보자고 책선물을 했다. 게다가 직접 구연동화처럼 해보기로 했다. '뭘 알고 면장도 하라'하지 않았던가? 내가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책은 고전전래동화의 정수 <흥부와 놀부>. 넓고 시원한 글과 그림, 꽤나 흥미로웠다. 요즘 아이들 책은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동화가 단순히 이야기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초등학습 과정에도 연계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면 초등학교 학습과정을 미리 배울 수 있다는 말인데, 이것이 '선행학습'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깊은 관심과 배려...아이들 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부분이다.
활자체와 그림이 어울린다. 편하게 읽히고, 그림 컬러도 좋다. 평소에 그림공부를 위해 트레이싱 페이퍼(일명 습자지)에 베끼기를 시키고 있는데, 그림들이 시원해서 색칠하기에도 좋겠다 싶다. 지극히 한국적인 그림들, 마음에 든다.
이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슬금슬금~ 톱질을 하는데, 박이 쪼개지면서 쏟아지는 금은보화를 어떻게 달랑 두 페이지에 보여줄 수 있을까? 펼치니 네 페이지가 된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그림들. "우와~~~~~"조카 녀석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순간이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또 다시 보자는 조카의 말은 마음에 들었다는 표시렸다. 친절한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부자가 된 흥부를 보고 질투를 느낀 형님 놀부. 제비다리를 억지로 부러뜨리고, 다시 붙였다. 그리고 흥부처럼 커다란 박을 탄다. "그럼 놀부형님도 부자가 되는거에요? 그럼 안돼는데..." 왜 안되냐 물었더니 말한다. "그럼 제비가 불쌍해요." 이런게 동화를 읽혀주는 맛인가보다 싶었다. '아이들은 다만 말이 어눌한 어른'이라는 말을 다시 배우게 된다. 또 다른 동화책을 읽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책은 <청개구리>다. 말도 지지리도 듣지 않던 나를 '개과천선'시켰던 동화책. 아이 때문에 속을 썩던 엄마 청개구리가 죽는 내용을 말해주며 "너도 말 안듣다가 엄마가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할래?" 겁을 주는 아빠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뚜욱뚝~ 떨구며 울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그런 탓인지 어버이 날에도 난 항상 심란했다). 조카 녀석한테도 써먹으면 효과가 있을까나? 궁금해 하면서 책을 폈다.
이 책 또한 초등교육 연계과정을 보여준다. 아무리 '선행학습'에 관심이 많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요즘 아이들이 똑똑한 이유는 바로 이런 때문은 아닐까? 책도 모르고,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던 난 초등학교 2-3학년까지 말그대로 '가방심부름꾼'이었다. 속 꾀나 썩힌 청개구리가 내가 아닐까?
의인화해서 개구리에 옷도 입히고 사람(개구리 왕눈이)처럼 그릴 법도 한데, 리얼하게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부드럽게 터치된 그림들은 개구리가 그리 징그럽지 않게(실제로는 번들거리는게...꽤 징그럽지 않던가?) 표현되어 네 살난 조카아이가 꽤 좋아한다.
이리 가라면 저리 가고, 잠자라고 하면 깨고, 아침이니 일어나라고 하면 늦잠을 자는 청개구리. "너도 그런다며?"물으니 아니라고 펄쩍 뛴다. 그러면서도 자못 심각하게 그림과 내용에 귀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남 이야기'같지 않은가 보다. 결말을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 엄마의 소원대로 강가에 뭍어주는 청개구리. "안돼~~~그럼 없어진다고~~" 소리치는 조카는 벌써 청개구리가 된 모습이다. 그래서 결국은 비만 오면 "개굴 개굴"거린다고 말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따라한다. 엄마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를 알리기엔 '청개구리'보다 더한 이야기가 있을까? 이야기를 마치니 제 엄마한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엄마~ 죽지 마" 하면서...아름다운 모습이다. 동화책을 보면서 나의 옛날을 떠올리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편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한 권씩 나눠갖고 돌아섰다가 "삼촌, 고맙습니다." 배꼽인사를 받았다. 그 모습이 보고 싶어 자주 들려줘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紙>의 베테랑 칼럼니스트이자 서평가인 마이클 더다는 "아이들에게 하루 한 시간씩 책을 읽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고 말한 조앤 에이킨의 말을 빌어 "아이들에게 책을 큰 소리로 읽어주어라. 그리고 당신이 먼저 책을 읽어라. 어른들은 곧잘 입으로만 독서의 즐거움을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고 말했다.
좋은 책도 좋지만, 부모가 먼저 책을 읽고 즐거워해야 아이들도 함께 공유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즐거움을 깨닫는다면 그다음은 시키지 않아도 책을 펼칠 것이다. 교육을 제일 우선으로 하는 이 땅에 좋은 책, 나쁜 책이 있겠냐마는 어른들이 양서를 따질 때 '고전'을 우선으로 하듯 굳이 따진다면 아이들에게는 '고전전래동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게다가 좋은 그림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겠다. 어린이날 주간, 동화책을 선물한다면 조카 녀석이 가슴에 뭍고 잠을 청하는 이 책들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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