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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모음 - Readingworks/철학·예술·교양

네티즌들이여, 이 사람에게서 진중권 선생도 울고 갈 '독설'을 배워라!

by Richboy 2009. 5. 9.

 

 

 

 

 

 

 

네티즌들이여, 이 사람에게서 진중권 선생도 울고 갈 독설을 배워라!

 

  침대를 분류한다면 뭐라 말해야 할까? 가구일까? 실제로 몇 년전 한 초등학교에서 시험문제로 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과학’이라고 표기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해당문제를 출제한 교사는 ‘난이도 하’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데, 학생 대다수가 떠억하니 ‘과학’이라 답을 했으니...역시 신뢰감가는 중견 탈렌트가 출연한 광고의 힘이라 하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이 침대를 두고 엉뚱한 주장을 한다. “침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서 사망하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한편으로 꽤 말되는 소리다.

 

  그는 또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다는 등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양쪽에 다 내 친구가 있거든요.” 웃기는 친구다. 이 친구는 누굴까? 친구라고 하기엔 조금 나이가 많은, 아니 너무 많아서 천국이나 지옥 둘 중 한 군데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친구들 만나느라 매일 양쪽을 왔다갔다 할 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바로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문학적 업적을 이룬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다. 오늘 이 괴짜의 글들이 수록된 책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을 읽었다. 원제목은 Mark Twain's Helpful Hints for Good Living이다.

 

 

이미지 출처: Flickr

이미지 출처: http://www.davidicke.com/forum/showthread.php?t=11956&page=974

 

 

  웬만한 수식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대단한 문학가인 마크 트웨인의 글을 만난 것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후 세 번째인 것 같다(두 권의 책도 어린이용이었으니 원문과는 많은 차이를 지녔으리라. 그렇게 본다면 온전한 그의 글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뭘 하고 살았던건지, 원...) 이 책은 클레멘스 즉, 마크 트웨인이 겪은 생활 속 일화들과, 제안들, 자신의 생각과 후세에 전하고 싶은 훈계 등 직접 써서 발표되거나 발표되지 않은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마크 트웨인의 일상적인 예의범절, 제안과 불평, 미국의 식탁, 여행 예절, 어린이, 옷, 패션, 스타일 등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테마에 맞게 글들을 꿰어 맞춘 이들은 캘리포니아대학 뱅크 로프트 도서관의 ‘마크 트웨인 페이퍼스 앤 프로젝트’ 사람들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팀원 대부분이 마크 트웨인에 매달려 30년도 넘게 일하고 있다 하니, 그가 남긴 글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의 글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길래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이미 죽고 없지만 남겨진 글로 인해 마크 트웨인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셈이다.

 

  마크 트웨인은 타고난 글쟁이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글로 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것이 소설인지, 어느 것이 실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도금시대 The Golded Age>처럼 클레멘스의 실제 삶이 마크 트웨인의 소설로 둔갑한 경우가 있고, 실제로 1900년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단다.

 

“나는 ...소설을 사실로 전하는 매체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부분의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나는 사실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나는 눈에 띄게 익살스럽고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진실된 관점을 널리 알린다.”(10 쪽)

 

  물질문명과 종교, 그리고 전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불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신랄한 비평을 했던 마크 트웨인이지만, 비평가라기 보다 소설가로 더욱 잘 알려진 이유는 여기에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비평글에 마크 트웨인의 어록을 빌리는 이유는 그의 날카로운 관점에서 비롯된 ‘촌철살인’의 독설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온전한 문장(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은 거의 없다. 거대하고, 지나치게 위장된 표현들은 꼬이고 꼬여 두세 번 거듭 읽지 않으면 온전히 소화시킬 수도 없을 지경이고, 한 단락의 글 속에는 항상 큼지막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한 무엇이 뭍어있음을 느낀다. 정말 기가 막힌 필력의 소유자. 작가를 사랑하려면 소설이 아닌 ‘수필’을 읽으라 했던가? 마크 트웨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마크 트웨인이 이 시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는 ‘초 특급 울트라 파워블로거’가 됐을지도 모른다. 우선 글로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였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모저모에 깊은 관심을 뒀을 뿐 아니라, 시설이나 행정에 개선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시나 정부에 직접 제안하기도 했고, 때로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그랬다면 주로 침대에 누워 글을 썼었기에 노트북이 필요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Baroque in Hackney

 

  그는 경제학자에 버금가는 경제학적 지식도 가지고 있다. 도표와 숫자를 들이대며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요소인 ’희소성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내뱉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떤 물건을 몹시 탐내도록 만들려면, 그것을 손에 넣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면 된다.” 또한 공맹孔孟을 부르지 않고도 인간의 훌륭한 삶에 대해 한마디 한다. “우리들의 죽음 앞에서는 장의사마저도 우리의 죽음을 슬퍼해 줄만큼 훌륭한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가 블로거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도둑을 맞은 마크 트웨인은 며칠 후에 집 대문에 [다음에 찾아오는 도둑에게 알림]이라는 공고문을 붙였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집에는 도금된 물건밖에 없습니다. 고양이 바구니 옆에 있는 모퉁이 너머의 응접실에 있는 놋쇠그릇 안에서 그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고양이 바구니를 가져가고 싶으면, 고양이들은 놋쇠그릇 안에 집어넣으세요. 소란 피우지 마시고 - 가족들한테 방해되니까요. 고무 제품들은 현관 홀에, 우산 꽂이 옆에 있어요. 서랍장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 걸 페르골라였나 뭐 그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던데. 그리고 나갈 때 문 좀 닫고 가세요.

S.L. 클레멘스 백“ (72 쪽)

 

  마크 트웨인이 ‘초 특급 울트라 파워 블로거’가 될 여지는 그 밖에도 많다. 그는 흰 양복을 입는 멋을 아는 최고의 패셔니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였고, 미국음식과 유럽음식의 맛을 비교할 줄 아는 미식가였으며, 여행을 즐기는 방랑객이었다. 70세까지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웰빙족이었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행동가였다. 다소 까칠한 성격에, 삐딱한 시선, 타고난 잘난 척, 양쪽으로 뻗어내린 콧수염의 캐릭터 역시 범상치 않았으니 어디 하나 빠질 것이 있겠는가?

 

 

이미지 출처: Flickr 

 

  그가 갖춘 블로거로서의 자질 중 최고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세상을 향해 쓴 문장들은 ‘익살로 버무려진 독설의 총합’이다. 절대로 전투적이고, 혁명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열면 짜증나는 일도, 갑갑한 현실도, 암울한 미래도 한바탕 웃음꺼리로 만든다.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절대로 염장지르지 않고, 비아냥대지 않으며, 상대로 하여금 억하심정이 생기도록 막말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를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독설을 듣고는 떠들며 웃게 만들고, 그 속에 담긴 의미에 놀라 깨닫고 스스로 변화하게 만든다. 그는 ‘재치있고 신랄하게, 지혜롭고 날카롭게’ 말하는 법을 알았다. 무엇보다 말과 글로서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고, 변화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네티즌적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약간 뜬금없지만 미국 MIT공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생들이 학원문제로 인해 학교 측과 협상을 했지만 결렬이 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야 하는 문제와 협상을 성사시키는 문제로 고민하던 학생회는 한가지 꾀를 냈다. 협상 다음 날 아침 학생회관 본관에 ‘경비행기 한 대’ 가 오도카니 로비를 점령했다. 학생들이 경비행기를 분해해 좁은 현관으로 들여와 밤을 새워 다시 조립을 해둔 것이다. 일종의 침묵시위인 셈이다. 학생회관을 드나드는 학생들이 학생회의 기가 막힌 시위에 적극 환영하며 뜻을 같이 하자, 며칠 후 결국 학교 측은 학생회 측의 조건에 맞게 협상을 타결했다. 몇 해 후에 또 다른 ‘학원문제’로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이자, 어느 날 아침엔 대운동장 한 가운데 네모진 칸막이를 설치해서는 그 안에 총장실의 집기들을 있던 그대로 옮겨놓았더란다. 휴지통까지, 벽에 있는 책꽂이까지. 혹시 학생회 임원중에 마크 트웨인의 자손이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그들의 지혜롭고 재치있는 시위는 마크 트웨인을 닮지 않았나?

 

  소년소녀동화 몇 편 쓴 줄만 알았던 작가 마크 트웨인을 미국이 그토록 칭송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세뇌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가 보낸 하루 하루가 한 편의 소설이고, 코미디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도 훌륭했지만, 먼저 인물이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독특한 인물이었다. 불세출의 재담꾼 마크 트웨인이 궁금하다면, 그의 독설을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시길...그리고 절대로 대중교통수단에서는 읽지 마시길.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가, 바지에 오줌을 지리던가 둘 중 하나를 경험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