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史 哲, 광고 안에 너 있다! - 광고짓는 사내 박웅현의 브레인 아나토미
광고는 돈덩어리다. 광고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한여름 시청앞 분수대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양만큼 100원 짜리 동전이 토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광고를 TV 등 공중파에 태우려면 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야 할까? 9시 뉴스를 전후로 한 시청율이 가장 높은 골든 프라임 타임Golden Prime Time에는 일반적인 액면가를 넘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줄을 서야 할 형편이라고 하니 감히 실제는 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한가지 소원은 30초 동안의 짧은 광고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제품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겠지만 시청자이자 소비자인 우리의 입장은 기업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기업의 광고가 TV 등 매체에 실리는 것을 발견하면 우선 처음 듣는 기업인 경우에는 ‘이 기업이 광고를 할 만큼 재무상태가 괜찮은가 보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새로운 제품을 만난다면 ‘이 기업이 쉬지 않고 계속 제품을 쏟아내고 있구나.’ 하고 판단한다. 제품의 광고가 채널마다 시간을 불문하고 꾸준히 나온다면 ‘제품을 알리려고 꽤나 많은 돈을 쏟는 것을 보니 이번 시즌은 이 제품에 목숨을 걸었나보다’하고 판단한다. 이 정도면 기업이 원하는 광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인가? 하지만 소비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는 광고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바로 당시의 아내가 소비자이다. 아내를 모욕하지 마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당신(광고집행자)의 가족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광고는 절대 집행하지 마라.”고도 말했다. 기업이나 광고회사는 소비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요즘 TV 광고의 진실이 어떻다 하는 정도는 ‘초등학생’ 소비자도 안다.
먹는 광고를 찍는 동안 제품을 너무 많이 먹어서 광고를 찍은 모델은 평생 동안 자신이 광고에 출연한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이 즐겨 쓰는 외국산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 채 국산 화장품 광고를 찍는다는 것 쯤도 다 안다. 어디 그 뿐인가? 수억 원의 모델료를 지급한 광고의 제품가격에는 모델료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어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행동이 십시일반 모델료를 나누어 내준다는 것도 안다. 앙드레 김 패션쇼에 오르기만 하면 배우나 모델의 가치는 2-3 배나 뛰어서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모델들이 안달을 낸다는 것도, 버라이어티에 나와 맛있게 먹고, 멋있게 입어야 그 배우가 광고제의를 받는다는 것도 안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날의 소비자는 기업의 마케팅 지식이 너무나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어 기업이 바라는 TV나 매체의 마케팅 캠페인에 빠져들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차별되지 않으면 유치하게 ‘옛날 방식의 선전’을 한다고 바로 핀잔을 준다. 게다가 매일 노출되는 광고의 수가 무려 3,000여 개에 이르다 보니 소비자들은 ‘광고’를 소음 혹은 공해로 여기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TV에 광고하고 일간지에만 광고노출 시키는 게 최고야.”라고 말하던 전통적인 광고 방식으로는 ‘돈 낭비’일 뿐, 더 이상 예전의 효과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요즘이다. 소비자가 인식하기에 제대로 어필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 소비자 한 명마다 파고들어갈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까다롭고 약아진 소비자들 때문에 그 만큼 기업들이 제품 팔아먹기 힘들어진 세상, 바로 오늘날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광고가 변하기 시작했다.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치 본전이라도 뽑을 요량으로 듣는 이를 무시하고 제품과 기업 선전에 열을 올리는 광고 대신 소비자에게 ‘느낌’을 주는 광고가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광고는 전통적인 광고 방식 그대로다. 낮시간 동안 연이어 펼쳐지는 보험회사의 광고를 보고 있자면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다. 가입과 갱신에 대한 해설은 어찌나 말이 빠르던지 몇 년 째 반복해서 들어도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이들 광고가 주는 ‘느낌’이란 다양하다.
소비자에게 ‘나도 공감한다’고 말하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이것이 당신의 모습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 등장하는 ’감동을 주는 광고‘는 공익광고협의회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에서도 얻지 못하는 ’그윽하고 여운이 오래가는 감동‘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광고를 만나면 우선 그런 ’광고를 낸 기업‘에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정말 당신(기업)이 우리(소비자)에게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하고 되묻는다.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선전은 하나도 없이 그 많은 돈을 들여 이런 광고를 내 보낸다니... 신통한 기분이 든다. 이 또한 작은 감동이다. 그 다음은 이런 광고를 만든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머리에서 비롯된 생각이길래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궁금해진다. 어느 때는 광고를 내보내는 기업보다 광고회사가 궁금해질 때가 있을 정도다. 그들이 누굴까? 그 중 한 사람을 찾아냈다.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TBWA KOREA 라고 하는 광고회사의 ECD, 쉽게 말해 광고를 만드는 총책임자인 박웅현의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알기 전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책을 펴고 저자 소개를 살피니 몇 해 전부터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TV광고는 거의 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저자가 '상당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광고쟁이(그 바닥에서 그렇게 부른다)라고 하면 끼 많고 똑똑하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市場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장에서 거의 Top이라고 불리는 이가 ‘나는 책을 통해 광고한다’고 말하니 흥미로웠다. 특히 '인문학'에 깊은 조예가 있다는 그가 궁금해졌다.
책의 전개방식도 특별하다. 주인공은 박웅현인데 이 사람은 인터뷰이(인터뷰 당하는 사람)이고, 인터뷰어는 단행본 편집계의 고수 강창래씨가 맡았다. 최근 공지영과 지승호가 공저한 ‘괜찮다 다 괜찮다’를 필두로 ‘인터뷰 형식의 도서’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알마의 인터뷰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 중에 처음 읽는 셈인데, 이런 식의 구성이 신선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든 이유는 TBWA KOREA 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광고회사는 <가로수 길이 뭔데 난리야?>,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등 몇 권의 책을 낸 바 있는데, 주제가 신선해 공교롭게 모두 읽었고, ‘좋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내가 읽은 두 권 모두 여느 책과는 다르게 파격적이고 멋들어진 책이었다. 잡지를 닮은 듯 EBS 방송국이 만들어낸 <지식 - e 시리즈>와도 닮았다. 편하게 생각하면 '블로그를 종이에 옮겼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는 최근 트렌드의 메카로 자리 잡은 가로수길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인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대로변 갓길이 술렁이자 '여기가 뜨는 이유가 뭘까?'하고 광고인의 눈으로 뒤져본 책이다. 그래서 가로수길의 인기를 통해 21세기의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트렌드 코드를 잡아냈다(그 책이 갖는 트렌드 코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또 다른 책<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역시 특별한 책이다. 2008년 TBWA에 입사한 직원 7명을 데리고 오리엔테이션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청바지를 읽어라. 청바지는 무엇이 크리에이티브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하고 창조적인 답을 구했다. 광고에 전혀 물들지 않은 뛰어난 감각의 청년들이 생각하는 청바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되었다. 청바지를 통해 오늘날의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변화를 읽어냈는데, 하나같이 ‘물건이고, 인물이다’ 싶은 글들이 쏟아졌다. 난 이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과 더불어 ‘책을 만들게 된 기획’에 놀랐다. 신입사원들에게는 멋진 직무교육이자 추억이 되었고, 세상에는 훌륭한 트렌드 자료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을 읽은 경험은 TBWA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책 역시 박웅현은 모른 채 TBWA KOREA를 지휘하는 인물이라는 소개글 때문이었다.
이 책은 광고쟁이 박웅현 한 사람을 조명한 것 뿐만 아니라 광고인이 보는 창의성, 창의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박웅현의 다독을 통한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은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 되어 광고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지금껏 그가 작업해서 호응을 얻었던 광고들의 제작의도와 뒷이야기들을 통해 ‘감동을 주는 광고’ 속에 녹아있는 ‘인문학’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광고의 기법에 대해 운운하는 이전의 광고쟁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마저 알게 하는 멋들어진 책이다. 대담 형식의 대화체는 그가 이야기하는 세상을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인터넷의 속도로 대표되는 오늘날 세상의 변화의 속도는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반비례한다. ‘바쁜 일상’이 덕담이 된 세상은 그만큼 인간이 고독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람을 향하는’ 박웅현의 광고는 ‘어루만짐’을 아는 광고다. 사람은 외로운 만큼 쉽게 감동하고, 그 여운은 오래간다. 그의 광고는 먼저 외로운 인간에게 공감하며 다가가 같은 줄에 서서 그들의 시선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어 마음을 덥혔다. 박웅현의 광고에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이유는 광고속에 文, 史, 哲의 인문人文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광고는 광고의 시선을 광고주인 기업에 두지 않고, 최종 소비자인 ‘사람’을 향한다. 최근 광고중인 한 아파트 회사의 ‘진심이 짓는다’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톱스타가 나옵니다.
그녀는 거기에 살지 않습니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 다닙니다.
우리는 집에서 편안한 옷을 입습니다.
유럽의 성 그림이 나옵니다.
우리의 주소는 대한민국입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래야 시세가 오를 것 같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봅니다.
멋있게만 보이면 되는 건지.
가장 높은 시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희가 찾은 답은 진심입니다.
진심이 짓는다.
e- 편한세상
이 광고에 주목해보자. 목소리는 대부분은 소비자의 마음이었다. 이 말은 한편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광고는 사실이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광고인의 ‘고해성사’이기도 하다. 충분히 공감하고 ‘옳다’고 박수칠 만하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자. 과연 그 광고 속의 아파트가 과연 실제로 다른 아파트와 ‘차별성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광고회사가 이렇게 말할 만큼 진심으로 짓고 있는가 먼저 자문해 보아야 한다(앞으로 기대해 봐야 할 문제지만).
광고가 변하듯 광고인도 변하고, 광고회사도 변해야 한다. 광고수주가 많은 광고주가 최고가 아니라 정말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를 ’최고‘로 삼고 진심을 광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TV 등 매체에 광고를 토해 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얻고, 잘 만든 광고상 받는 것으로 결론을 지을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만든 광고주의 제품이 광고만큼 훌륭한 제품으로 기억되는가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듯 소비자에게 다가선 광고 역시 한낱 ’수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주는 바뀔지 모르지만 소비자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Web 2.0으로 대표되는 21세기는 누구에게든 정보의 공유가 평등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제품이 가장 잘 팔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치 있는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만 하다면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가 알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신 홍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사람(소비자)를 향하는 광고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시대를 반영하는 30초 예술의 반가운 변화 속에 박웅현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그를 알게 된 독자로서 소비자로서 앞으로 ‘사람을 향하는 박웅현의 광고’에 주목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기를, 그리고 진심을 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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