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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을 인식하면서 노인의 말에 새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입장과 처지야 다를 테지만 앞서 살아온 시간 만큼의 연륜을 훔치고 싶어서다. 젊을 때는 꿈으로 가득하고, 늙어서는 후회로 가득한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노인의 후회는 내가 살아갈 미래에 적잖이 방향타 노릇을 할 거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말에 경청하는 경향은 책에도 적용되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은 대다수가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글들에서 ‘컨템퍼러리 의식’에 동요되어 ‘나도 그들처럼...’을 외치기보다는 앞선 이들의 가르침이 뭍어 있는 책들을 읽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푸른숲)도 그런 이유에서 펼친 책이다.
이 책을 펼친 데 한 몫을 한 것은 제목이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는 제법 긴 문장의 제목은 여러 ‘뉘앙스’를 던져 주었다. 노인이 된 저자가 시간이 적어졌다는 푸념인지, 만약 시간이 아주 많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원제목은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 원제목대로 였다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스위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서 스위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저자의 소개 역시 이 책에 ‘회가 동하게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갖은 기대에는 훨씬 못미쳤다. 아예 내가 작가를 잘 모르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대를 가졌던 셈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에서 노인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던 내 생각은 처음부터 많이 어긋났다. 저자 페터 빅셀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홀로된 남자에게 보이는 주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생각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본 일상이라고 말했지만 저자는 깊이 관찰하는 듯 했다. 그의 관찰은 생각과 더해져 작은 주제가 되어 한 꼭지의 작은 글을 이루었다. 제법 재미있을 법한 글이지만 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꽤 많다.
우선 저자를 모르기에 그가 사는 스위스의 작은 동네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가 바라본 사물 역시 내 관심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가 안다는 사람들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연들보다 눈에 띄질 않았다. 소재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어서 아무리 평온한 마음이라 해도 함께 공감하며 읽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아무리 글맛이 있는 작가라지만 번역된 글은 그 맛을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독자가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자, 내가 사는 이곳과 정반대의 땅덩어리에 사는 푸른 눈의 노인이 자신이 사는 동네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내가 지난 봄에 읽은 로버트 풀검의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랜덤하우스)와 많이 비교된다. 비슷한 연배라는 점과 일상 속에서 관찰되는 사람과 주변 이야기들을 엮었다는 점은 서로 비슷하지만, 서술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인생 후반부를 살아온 달관자적 입장에서 위트있고 재미있게 일상을 구술했다면, 후자는 지극히 평범하게 자신의 주변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 곳곳에서 기억이 흐릿하다, 나이 탓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불편했다.
어쩌면 내가 제목에 너무 혹한 나머지 제목이 던진 화두만을 쫓았기 때문에 깊이 빠져들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다 투덜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작가와 공감할 만큼 깊이나 연륜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와 연륜을 갖춘다 해도 이 작가에게는 충분히 공감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작가와 독자도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그 말을 실감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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