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원고청탁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전문가들의 서평과 온라인 서평가들에 관한 특집을 꾸미는데, 부족한 제가 한 꼭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출판평론가이신 한기호 소장님께서 특집의 여는 글을 쓰셨습니다. 내용 중에 제가 포함되어 담아봅니다.
한기호 소장의 블로그 바로가기: 클릭!
한소장님의 글은 전체적으로 온라인에 서평(저는 굳이 리뷰라고 말하지만)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는 듯 합니다.
외려 소위 전문가들의 서평이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른 바 제도권의 평론가, 그리고 제도권의 출판잡지가 온라인 리뷰어들에게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온라인 리뷰어로서 반가운 일입니다. 온라인 서평가 '로쟈'님이 말하는 뻘짓이 더 이상 아닌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 있는 멋진 리뷰어들 모두가 오프라인으로 나와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그 날을 기대합니다.
특집-디지털 시대 서평의 역할과 변화
잘 된 서평 하나가 책의 운명을 바꾼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기호라는 이름을 날마다 검색한다. 그런데 하루는 블로거 루미(rumeek)가 내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글을 읽어보니 어설픈 자전적 이야기인 『열정시대』뿐 아니라 <기획회의>를 꾸준히 구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덧글을 달았다. 곧 루미는 내 블로그 ‘안게(안부게시판)’에 글을 남겼는데 일부만 소개한다.
『20대 컨셉력에 목숨을 걸어라』 댓글 신청자에게 책을 보내주신 이벤트를 트위터에 소개했었습니다. 그때 신청해서 책을 받아보신 제 팔로워 중 한 분이 이런 트윗을 보내주셨어요. (중략) 확인하셨겠지만, 이쪽에 전달해 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twitterkr.com/shinjc 이 분이십니다. 저도 트위터에 소장님 글을 종종 링크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몇몇 분들이 소장님 글이나 새로 만드신 잡지를 언급합니다. 가끔은 제가 트위터에 소장님 블로그를 홍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싶어서 더 이야기를 하자면, 트위터에 꽤 많은 출판사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소강상태구요. 그 와중에 온라인서점 예스24나 리브로, 인터파크 등은 트위터에서 굉장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스는 매일 책을 나눠주는 이벤트와 2시 4분에 여는 책 퀴즈, 복불복이벤트 등 많은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뒤로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트위터 마케팅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루미의 블로그에 들어가 ‘트위터 마케팅’과 관련해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이 글은 이번 호 ‘출판계 리포트’에 실렸다). 루미도 지적했지만, 2009년 미국에서 미디어와 웹사이트 등을 통해 가장 많이 사용된 영어 단어는`‘트위터’였다. 국내에서는 작가 이외수나 박원순 변호사 등이 트위터를 열심히 한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였다. 루미는 나의 제안에 대해 ‘안게’ 말미에 “몇몇 트위터 관련 책들, 페이스북 창업을 다룬 영화, 소셜마케팅에 대한 책들이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 흐름을 지켜보며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써볼까 합니다.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면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걸 보시고 조언해주시거나 판단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했다. 2009년 12월 1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1월 26일에 다음과 같은 ‘안게’글이 있었다.
<학교도서관저널> 건으로 은행나무에 들르셨을 때 인사드렸던 김류미라고 합니다. 은행나무에서 온라인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에 ‘출판사의 트위터 마케팅’에 관한 글을 써보지 않겠냐 하셨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한번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고, 몇 가지 고민들을 담아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글 쓰는 타이밍’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rumee.textcube. com/ (이 링크를 새 창에 넣으시면 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은 임시 블로그에 공개 상태로 두었습니다. 분량은 말씀하신 30장에 맞추려 했으나 45장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글의 다른 쓸모를 가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살펴보시고, 트위터 마케팅에 대한 분위기를 느끼신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습니다.
글을 보고 나니 출판계 종사자들이 읽어둘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 트위터만큼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매체가 없지 않은가. 나는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트위터를 못 하고 있지만 트위터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 결과물인 김류미의 ‘트위터 마케팅’에 관한 글이 이번 호에 나가게 되었다.
읽기와 쓰기는 순환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에 서툴러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책 세계의 알파블로거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읽기와 쓰기가 연동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노우에 히사시는 『자가제 문장 독본』에서 “사람은 읽는 행위로 과거와 연결되고 쓰는 행위로 미래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원래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따로 놀던 것이 아니었다. 나가세 하지메는 「독서 혹은 읽기와 쓰기」에서 “‘읽기’는 ‘쓰기’에 의해 담보되고, ‘쓰기’는 ‘읽기’ 또는 ‘읽혀지는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 달리 말해 ‘읽기’는 단독으로는 존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쓰기’와 관계하며 성립하는 것”이라며 읽기와 쓰기는 유기적으로 결합한 순환적인 활동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근대 산업혁명의 성립과 국민교육의 제도화 등은 ‘읽기’와 ‘쓰기’ 양자간의 단절을 불러왔다. 일상에서 ‘읽기’와 ‘쓰기’의 순환을 실천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오히려 양자의 단절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가세 하지메는 근대 산업혁명의 성립과 국민교육의 제도화 같은 역사적 요인이 ‘읽기’와 ‘쓰기’의 단절을 초래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출판계에서는 독자를 ‘읽기’만 하는 주체로 보았을 뿐, 그들이 ‘쓰기’도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산업적인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독자와 ‘읽기’만을 연결짓고 그것을 강화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읽기’와 소수의 ‘쓰기’가 상호 연관성에 대한 의식은 결여된 채 병존해 왔다. 양자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출판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출판은 근대 산업의 발달로 소수의 ‘쓰기’와 대량복제에 의한 다수의 ‘읽기’로 이어지는 일방적인 흐름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구조가 오늘날 동맥경화를 일으킨 것은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어느 정도 읽기와 쓰기 능력을 지니게 된 대중 교육사회(포스트 모던한 소비사회의 전제이기도 하다)의 귀결이기도 하다. 이 구조 변용을 직시하지 않은 채 ‘읽기’만 복권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나가세 하지메, 「독서 혹은 읽기와 쓰기』)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쓰기’의 부활이 이야기되고 있다. 영상이 엄청난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음에도 문자로 쓰는 행위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에 따라 쓰기에 관한 책도 날로 늘어났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있다. 읽기와 쓰기의 반복적인 순환, 모두가 쓰고 모두가 읽는 일이 몸에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읽기와 쓰기의 재발견은 바로 블로그 때문이기도 하다. 나가세 하지메는 앞의 글에서 “‘읽기’와 ‘쓰기’는 본래 순환적인 연쇄를 이루어 전개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는 블로그(웹로그)이다. 블로그는 시계열로 된 텍스트 배치와 트랙백, 코멘트로 진행되며 텍스트 간에 상호 링크를 걸어 돌아가는 형식적 특징을 지닌다. 오해하면 안 될 것은 ‘읽기’와 ‘쓰기’의 순환이 블로그에 의해 발명된 게 아니라, ‘읽기’와 ‘쓰기’가 본래 지니고 있던 순환적 관계가 블로그라는 계기로 재발견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새로운 쓰기가 블로그에 의해 폭발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밝힌다.
1997년 12월에 태어난 블로그는 2010년 현재 약 5억 개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전체 블로거 중 50%는 블로그를 하는 유일한 목적이 개인 생활을 알리고 공유하는 것이다. 유튜브의 캐치프레이즈는 ‘당신 자신의 방송국’이며, 실제로 우리는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자아도취의 나르시스 신화에 빠져 스스로를 방송하고 있다. 전통적인 주류 미디어가 개인화된 미디어 대체되고 있는 지금, 인터넷은 우리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뉴스와 정보, 문화를 찾기보다는 그것을 사용하여 스스로가 뉴스와 정보, 문화가 되려 한다.”(앤드루 킨, 『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
아니, 블로거는 미디어다. 제5의 미디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 덕분에 신문과 잡지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반면 알파 블로거,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출판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블룩은 과거에는 요리, 육아, 화장, 여행 등 실용·취미 분야의 실용서가 중심이었지만 점차 인문서 등 ‘공공성’이 강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앞으로는 공론의 성격이 강한 블룩이 늘어날 것이다. 이번 호 특집에 글을 쓴 김은섭(블로거명 리치보이)은 부동산과 주식, 금융 분야에서 전업투자자로 활동하지만 블로그에 다양한 글을 올리다 직장인을 위한 비즈북 필독서들에 대한 서평만을 모아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교보문고)를 펴냈다. 어디 이런 일이 한둘인가.
이렇게 블로거들의 ‘읽기’와 ‘쓰기’는 다시 ‘출판’과 연동된다. 그러니 “출판은 그 과정에 관여하는 활동이며 새로운 시도를 촉진하는 행위다. 외부에서 규범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박혀 있는 실천들, 즉 쓰다, 엮다, 형태를 갖추다, 나눠주다, 받다, 읽는다 등의 순환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출판publishing을 가리켜 ‘퍼블리킹PUBLICing’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퍼블리킹을 통해 인문서의 관념을 쇄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문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될 터이다.”(하세가와 하지메, 「퍼블리킹으로서의 출판-‘인문서 공간’ 붕괴 이후」, <논좌> 2007년 3월)라는 진술까지 나온다.
나가세 하지메가 ‘퍼블리시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하세가와 하지메가 ‘퍼블리킹’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웹에서 이뤄지는 ‘출판’을 전통적인 출판행위와 구별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출판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퍼블리킹이란 말은 고유명사로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퍼블리킹은 대세가 될 것이다. 블로그 등에서 공공성 있는 글을 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서평이다. 이미 인간은 지식을 얻는 행위 이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나 상상력을 구체화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 갈급증이 온라인 서평의 효과를 키우고 있다. 나도 블로거로서 서평을 자주 올리지만 블로그 서평은 웹 공간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온라인 서평이 책을 띄워주는 역할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을 위해서 쓰이는 것만은 아니다. 서평을 쓰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쓴다. 이제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휴대전화는 정보송수신의 제왕이 되었다.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정보의 저장과 보관, 기억의 기능은 컴퓨터로 넘어갔다. 기술의 발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미 기술은 인간과 기계를 합하여 제3의 존재를 만드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윈도95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이 분야의 기술은 이제 겨우 걸음마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보에 접근하는 능력뿐 아니라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연결하고 해석하여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능력을 키우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그 책이 담고 있는 독소나 폐해, 나아가 대안까지 발견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식을 재구성하는 능력, 서평쓰기
이제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일보다 여러 지식을 묶어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지식으로 만드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웹의 발달로 개인의 능력은 엄청나게 커졌다. 이 시대를 이끄는 힘은 국가나 대기업이 아닌 개인에게서 나온다.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것을 ‘초강대개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정보에 대한 ‘주관적 맥락잡기’를 잘 할 줄 아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극소수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그렇다면 앞으로 개인이 발휘해야할 최고의 능력은 무엇일까.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낼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말하면 브리콜라주bricolage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이다. 브리콜라주는 개인이 즉각 동원할 수 있는 것들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지식이다. 바로 역량이다. 미래학자들은 인간이 120세까지 일하는 날이 도래하고 일생에 여덟 번 직업을 바꿀 수 있다고 예견한다. 이제 인간에게는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직업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성공할 수 있는 준비된, 즉 역량을 갖춘 나가 필요하다. 그런 역량을 키우는 방법 중의 하나는 서평을 쓰는 것이다. 혼자서만 쓰고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결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서평 쓰기로 창조적 에너지와 카오스의 모태를 잘 결합해서 새로운 문화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능력이 절실한 것이다.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을 들여다보자.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강화된 대학에서 교수들은 ‘보고서’ 쓰기에 급급하다. 대학의 등재지나 논문집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글들은 ‘그들만의 리그’라 할 정도다. 대중에게는 무용지물일 뿐인 글이지만, 글을 쓴 연구자들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생들은 취업5종 세트 만들기에 급급하다. 대학시절에 읽은 책이 별로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88만원’ 세대에 편입되거나 준실업자 상태로 전락한다.
세상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한 해에 석박사만 8만 명 이상 배출되지만 그들 또한 대부분 ‘워킹푸어’에 불과하다. 대학에는 비정규직의 숫자가 정규직의 두 배 이상이고 대학 강의의 3분의 2 이상이 연수입 990만 원 미만의 시간강사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 수많은 박사급 실업자가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 그래서 디지로그 시대의 서평쓰기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전략이라고 추켜세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는 요즘의 박사급 실업자들이 춘추전국시대 식객들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제왕의 옆에는 수천 명의 식객이 자신의 아이디어(사상)를 구현할 기회를 찾기 위해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어떤 블로거는 자신의 말처럼 10년의 ‘뻘짓’ 끝에 대중지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블로그에서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이름으로 종횡무진 책읽기를 하면서 10년 이상 인문학에 대한 서평을 써내다가 그 결과물의 일부를 골라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를 펴낸 이현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서평은 읽는 이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책의 소중함을 널리 알릴 수 있다. 그래서 잘 된 서평 하나가 책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로쟈(이현우)뿐 아니라 앞으로 이런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온라인상의 글쓰기가 중요해진 오늘날 굳이 서평의 역할을 들먹이지 않아도 쓰기라는 것 자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기획회의 )266호 201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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