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몰락한 위대한 기업을 통해 배우는 실패학
일본 최대의 의류회사 유니클로UNIQLO는 베네통에 비견되는 의류기업으로 ‘잃어버린 10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장기불황 동안 일본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은 ‘국민기업’이다. 고가의 방한복 소재인 ‘플리스(fleece·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양털처럼 부드러운 섬유)’로 중저가의 활동복을 만들어 불황으로 추워진 일본 국민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지켜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사랑 덕에 유니클로의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지난 2008년 경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올해의 경영자’에서 2위인 소프트방크의 손정의와 3위인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를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그는 2008년 말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일본 자산가 랭킹 1위에도 올랐다.
그렇다고 야나이 다다시가 항상 성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를 달고 사는 기업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에게 실패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손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야나이 회장의 유니클로는 실패를 감지하면 아무리 큰 손실을 입는다 해도 사업을 접어 버린다. 작게는 재고관리 등 시스템 상의 실패에서부터 크게는 외국진출에서부터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브랜드까지 판단이 서기만 하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2000년 유니클로가 영국에 매장을 개설하고 영업을 개시했으나 부진하자 5개의 점포만 남기고 철수한 것이라든지, 에프알푸드라는 야채판매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은 ‘1승 9패’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실패할거라면 빨리 실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비즈니스는 이론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제 성공 비결입니다.” 그는 유니클로를 벤처 패션 회사라고 부르고 이러한 자신의 경영마인드를 벤처정신이라고 부른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를 출간해 세계적인 석학이자 경영의 구루가 된 짐 콜린스Jim Collins는 몇 해 전 잘나가던 몇몇 기업을 포함해, 역사상 가장 위대하던 기업들 중 일부가 왜 몰락했는지 주목했다.
좋은 기업, 성공한 기업에 주목했던 그가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김영사)를 쓴 목적은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기업들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 리더들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일종의 ‘몰락한 기업을 통해 배우는 실패학‘인 셈이다.
저자는 상당한 분량의 데이터(그가 조사한 기업들의 역사는 모두 합해 6,000년이 넘는다고 책에 밝혔다)를 분석해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다섯 가지 단계별 틀을 도출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 -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 -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 -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 -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저자가 기업들의 재무 상황, 비전과 전략, 조직, 문화, 리더십, 기술, 시장, 환경, 경쟁 구도 등 다방면에 걸쳐 몰락한 기업들의 역사를 검토하며 주목한 점은 바로 “하락이 본격화하기까지 어떤 조짐이 나타났고, 결국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하는 점이다.
짐 콜린스의 몰락의 5단계는 적어도 위대한 기업들도 언제든 몰락할 수 있다는 것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몰락을 예방하고 감지하거나 이를 되돌리려는 기업의 리더들에게 유용하다. 각 단계마다 등장하는 몰락한 기업들, 그리고 단계별 징조들은 ‘나의 회사는 어떠한 상황인가’ 점검해 보기에 충분할 만큼 제공된다.
살펴보면 알겠지만 모든 몰락의 원인에는 경영자가 포함된다. 몰락한 기업의 경영자 대부분은 성공에 취해 자만을 했거나, 잘못된 비전을 제시하거나,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판단을 하고 상황이 잘못 돌아가는 것을 감지했으면서도 쉽게 궤도를 수정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지시로 시작한 비즈니스가 실패의 조짐을 보일 때는 그 사업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록 실패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고 결국은 큰 치명상을 입어 몰락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짐 콜린스가 마냥 부정적인 태도로 기업을 살핀 것은 아니다. 뉴코Nucor, 노드스트롬Nordstrom, 디즈니, IBM 등과 같이 위대한 기업들이 몰락의 4단계까지 쇠락했다가 다시 살아난 기업이 있는 것처럼 어느 기업이든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5단계까지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어렵긴 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례들을 통해 밝혀낸다. 짐 콜린스가 제시한 몰락의 5단계로 가는 수순을 경영자가 미리 알고 있다면, 내리막의 시점 어디서든 방향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된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거의 모든 기업이 언젠가는 수명을 다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배우게 되는 것은 기업의 몰락을 있게 한 원인은 2008년에 있었던 천재지변과 같은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나 망가져버린 자본시장의 메커니즘 등이 아니라 대부분 기업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유지하는 기업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내부가 위대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에게는 혼란스러운 환경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 위대한 조직을 갖추지 못한 경쟁 업체들을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같은 생각으로 사를 운영하면서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변화무쌍한 시장환경과 까다로운 소비자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변화해야 할 기업이 실패를 두려워해서 주저하거나 안주한다면 정상에는 결코 오를 수 없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몰락의 5단계를 배우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를 몰락이 아닌 실수로 만드는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벤처정신’일 것이다.
++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기획회의>( 278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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