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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말로 풀어내는 책이야기/[강의] 글쓰기 입문

[신영복 교수가 말하는 책] 책은 먼 곳에서 찾아 온 벗입니다

by Richboy 2011. 10. 1.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새해 특별기고

 

 

우리 사회의 지성 신영복(70)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11년 새해를 축하하는 글과 서화(위쪽)를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내왔다.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몸으로 겪어온 신 교수는 이번 글에서 책과 삶, 그리고 사회의 의미를 반추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책은 벗입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반가운 벗입니다. 배움과 벗에 관한 이야기는 『논어』의 첫 구절에도 있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學而時習之不亦說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가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수험공부로 맥질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독서는 결코 반가운 벗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빨리 헤어지고 싶은 불행한 만남일 뿐입니다. 밑줄 그어 암기해야 하는 독서는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못됩니다.

 독서는 모름지기 자신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 그리고 자신을 뛰어넘는 비약(飛躍)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를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우리시대의 문맥(文脈)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험공부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아마 교양을 위한 독서라 할 수 있습니다. 교양이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를 일단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교양독서 역시 참된 독서가 못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을 가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양독서는 대개 고전독서이기도 합니다. 고전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필요합니다. 고전은 인류가 도달한 지적 탐구의 뛰어난 고지(高地)들이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과거와의 소통도 어렵고 동시대인들과의 소통도 어렵습니다. 돈키호테와 햄릿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대화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전은 언어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위한 소통이며 무엇을 위한 대화인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돈키호테는 시대착오적인 어떤 중세기사의 이야기가 아니며, 햄릿은 덴마크 왕자의 개인적인 비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탈 중세(脫中世)의 전개과정이나 인간 존재의 운명적 비극에 대하여 고뇌하지 않고 그것을 단지 교양이나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경우 자신을 확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것이 됩니다. 독서는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읽고 자기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를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와 맺고 있는 사회역사적 관련성을 성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을 통하여 깊이 있는 세계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서화(詩書畵)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사철이 언어(言語), 개념(槪念), 논리(論理)로 인식하는 것임에 비하여 시서화는 이를테면 소리와 빛으로 소통하는 뛰어난 세계인식입니다. 문사철 방식에 비하여 시서화의 방식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급속한 미디어의 변화는 이 시서화의 세계마저 영상서사(映像敍事)로 바꾸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책과 종이 그리고 독서의 종말을 예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사철이든 시서화든 영상이든 그것은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정직한 이해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느 경우든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리고 우리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핵심입니다. 그러한 성찰만이 우리의 삶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키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영상서사는 그것의 뛰어난 대상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성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문학서사(文學敍事)가 요구하는 독자의 자신의 고뇌와 성찰이 사라지고 독자로 하여금 복제와 카피라는 대단히 안이한 자리에 나앉게 함으로써 우리들을 또 한 번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사의 장구한 지적 탐구를 통하여 키워온 그 치열한 성찰성에 주목하고 다시 한 번 독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책들이 반드시 당대의 최고의 지적탐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전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사의 전개과정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모든 미래지향 역시 지금까지의 역사를 디딤돌로 하여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독서와 문학서사는 최근의 급속한 미디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발 딛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역사 그 자체이며 무형의 문화유산입니다. 언어 개념 논리라는 쉽지 않은 인식 틀을 키워온 인류의 정신사는 그것이 비록 세계인식의 최고형식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류의 지적 탐구를 뒷받침해 온 탄탄한 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의 핵심이 바로 성찰(省察)입니다. 성찰은 철학적 추상력(抽象力)과 문학적 상상력(想像力)을 양 날개로 하는 자유로운 비상(飛翔)이며 조감(鳥瞰)입니다. 이러한 비상과 조감을 가능하게 하는 생각의 재구성이 바로 성찰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여정을 내려다보는 창공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성찰과 비상이라는 지적 여정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독서,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갇혀 있는 문맥, 우리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고, 드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여정에서 길어 올려야 하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애정입니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더 좋은 책, 더 좋은 왕도(王道)는 없습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그렇습니다. 어미 새의 체온과 바람과 물 그리고 수많은 밤들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어느 날 아침 문득 빛나는 비상으로 날아오릅니다. 고뇌와 방황으로 얼룩진 역경의 어느 무심한 중도 막에 그 때까지 쌓아온 회한과 눈물이 어느 순간 빛나는 꽃으로 피어오릅니다. 독서도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책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고뇌와 성찰의 작은 공간인 한 언젠가는 빛나는 각성(覺醒)으로 꽃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독서는 만남입니다. 성문(城門) 바깥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자신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남인 한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하여 달리는 잠들지 않는 시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의 각성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사회적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文脈)을 깨트리고, 우리를 뒤덮고 있는 욕망의 거품을 걷어내고 드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굳이 새해의 일출을 보기 위하여 동해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일출은 도처에 있습니다. 반가운 만남과 성찰을 쌓아가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찬란한 일출은 있습니다. 새해의 빛나는 성취를 기원합니다.

사진=안성식 기자

◆신영복은 누구인가=한국의 대표적 진보 학자로 꼽힌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후진국 개발론’ ‘경제원론’ 등을 강의하다 스물일곱살이던 68년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통혁당에 가입한 적이 없었으나, ‘통혁당 지도간부’로 기소됐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무기형을 받고, 88년 가석방되기까지 20년 간 수감 생활을 했다. 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했다.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며, 한국 사회에 인문학 붐을 일으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2001년), 『더불어숲』(2003), 『처음처럼』(2007) 등의 책을 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신영복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0-09-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고 1988년에 특별가석방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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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작가나 CEO, 전문가들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아닙니다.

약간의 공부와 노력이 있다면 '내 생각을 종이 위에 내려놓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 분,

책 리뷰, 영화 리뷰를 멋들어지게 쓰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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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입문 바로가기 :  클릭!

 

 

수강생들의 많은 요청이 있어 오전반도 개설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글쓰기 입문 (7기) 수업을 들은 수강생의 수강 후기

영혼의 자유를 느끼게 되다(7기) 

 

6기에 수강을 마치고, 7기에 재 수강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총 여섯 번의 수강 중에 두 번 지났다. 난 좀 성격이 급하다. 하고 싶은 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문화센터로 달려가서 등록해서 세 번째 강의부터 수강했다. 편입생 같은 기분이다.

가슴에는 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필사 기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좋은 책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필사란다. 오늘 처음 알았다. 모방이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매일 쓰라고 하신다. 달리기 선수가 매일 뛰듯이 매일 써야 한단다. 그렇다. 좋은 습관은 성공을 만들고, 매일 글쓰기는 좋은 작품을 쓰게 할 것 같다.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 기쁘다. 마치 애인을 만난 기분이다. 책 읽기를 통해 지혜를 배우고, 글쓰기를 통해서 영혼의 자유를 누리리라 다짐한다.

글쓰기 숙제를 받았다. 잘하고 싶은 맘에 글을 쓰고, 다듬어서 송고를 했다. 금방 답을 보내 주셨다. 첨삭을 읽으면서 “아 ~” 하고 공감의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글의 흐름을 내 스스로 느끼게 해 주셨다. 또 용기를 주시는 말씀에 신이 났다. 칭찬은 참 좋은 것이다. 다시 쓰고 싶은 용기가 났다.
한번에 두 시간 수업은 너무도 짧고. 총 여섯 번의 강의도 아쉽다. 좀더 시간이 나면 동기들과 하루 여행이나 산책을 하면서 책과 글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싶다.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다. 글도 계속 쓰고 싶고, 또 잘 쓰고 싶다. 나 자신을 선생님과 동기들에게 계속 검증 받고 싶다. 글쓰기 입문 다음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느끼는 행복과 용기를 조금만 더 끌어 주시면 좋겠다.
내내 설레고 행복했다.

 

이런 강좌 또 없습니다

 

가슴이 참 답답하고 먹먹했습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것..
평소 꾸준히 일기를 쓰고
회사 업무를 통해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내가 쓰는 이 글이 잘 쓴 것인지 의심은 더해져만 가고.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점점 더해져만 갔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리치보이로 더욱 유명한 김은섭 선생님의 7기 수강생입니다.
선생님께서 매시간 마다 꼼꼼하게 준비하신 내용물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담아주셨습니다.

또한 수업 후 주어진 과제를 선생님께 보내면,
미안할 정도로 세세하게 첨삭해 보내주시며,
장문의 코멘트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수업을 들으며 다시 글을 꾸준히 쓰게 되는 습관을
갖게 됐고, 이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매일 매일을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고
자신감을 얻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쓰는 글을 의심하지 않고
글을 쓰는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과 자신감이야말로
좋은 글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희는 그동안 수업을 들었던 기수의 학생들이 모여
까페를 운영중이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글을
첨삭해주고 좋은 책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민해결의 방법은 실천입니다.
눈팅만 하지 마시고, 어디에도 없을 좋은 강좌의 기회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0^~

 

이제는 당당하게 글쓰기!

 

초등학교 시절에 저는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문예부에 들어가고, 백일장에 나가 상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점점 글쓰기는 저의 일상에서 멀어져갔고, 대학에 들어가자 과제나 시험이 대부분 글쓰기로 이루어져서 두려웠습니다. 좋은 상,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위축되기만 했죠..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지금까지 방법을 잘 몰랐고,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지와 게으름을 '글을 못쓴다.'는 말로 편하게 덮어버린겁니다. 또, 기본적으로 읽어야 쓸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많이 읽지 않았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이제는 글쓰기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저도 모르게 글쓰기를 일상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