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중국 명나라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은의 역사를 정리했다. 명나라 이후의 역사를 통해 중국이 현재의 상황에 안주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로벌화의 물결에 뛰어는 것인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세계 경제의 핵심 지역이었던 중국이 서양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이것이 과연 군사 방면에서만 패배했음을 의미하는지 분석한다. 더불어 금본위 국가와 은본위 국가가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어떤 대결을 펼쳤는지도 들여다본다.
백은비사 白銀秘史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 ≪화폐전쟁≫ 쑹훙빙 추천 화제작 ★★★
욕망하는 은의 숨겨진 역사가 베일을 벗는다!
금속 화폐의 탄생에서 부활까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본 금융 제국주의의 역사
중국 명대(明代)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은을 둘러싼 세계의 패권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미래 경제의 새로운 화두 ‘은’이 들려주는 뜻밖의 역사!
IT와 문화, 환경 등 미래 산업에서 중요한 원자재로 쓰이고 있는 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가 위기에 처하면서 새로운 투자 상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화폐 가치를 보증해주는 귀금속으로서는 금에 미치지 못하지만, 더 저렴한 안전자산으로서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식의 신’ 워런 버핏도 일찍이 은의 이런 속성을 간파해, 1999년 은을 대량 수매하여 주식투자에 뒤지지 않는 수익을 올렸다. 최근에는 로저스홀딩스 회장인 짐 로저스가 “결국 화폐전쟁의 승자는 실물이며, 금과 은 중에서 택하라면 은을 사겠다”라고 말해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은은 정말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는 귀금속일까?
≪백은비사≫는 역사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사실 은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정한 금속으로 인식되어 왔다. 금과 더불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대항해 시대 은이 대량으로 생산된 이후 종종 인플레이션과 투기의 주범으로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탓이다. 한때 무적함대로 대서양을 누빈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은으로 유럽을 제패했다. 하지만 바로 이 은 때문에 스페인은 사치성 소비사회로 전락했고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당시 가장 빈곤한 나라가 되었다. 1970년대 말 세계적인 부자 가문인 헌트 가(家) 역시 은을 대량 수매하여 은 가격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파산하고 말았다. 모두 은의 변동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은은 수요와 공급에서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시장을 왜곡시킬 위험을 가진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은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투기를 조장하지만 그만큼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쑹훙빙은 ≪화폐전쟁 3≫에서 “왜곡되고 높은 레버리지가 작용하면서도 규모가 적은 은 시장은 세계 금융시장 시스템을 치명적으로 강타할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은이 구체적으로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고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세계를 움직여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개인적인 투자는 물론 미래를 거시적으로 전망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은과 함께 흥망성쇠의 길을 걸어온 중국,
그들은 왜 은에 집착하는가?
저자는 한때 ‘은의 제국’이라 불렸던 중국의 ‘은 사용 금지령(禁銀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중국이고, 왜 은 사용 금지령인가? 은이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 구도를 어떻게 좌우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또한 명나라 주원장이 실시한 은 사용 금지령은 금속 화폐가 부족했던 당시 중국의 사정을 반영한 정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로써 중국은 수백 년간 은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일찍부터 상품경제가 발달한 중국은 지폐 제도를 도입하여 부족한 금속 화폐를 충당하고 중앙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돈과 부를 동일시하지 않았던 중국인은 관습대로 은을 화폐로 사용했고, 황제와 관리들도 은을 재물 축적의 수단으로 삼았다. 저자는 이것이 중국인의 독특한 경제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금속 화폐에서 지폐로, 지폐 제도에서 각종 금융 제도로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간 서양과 달리, 중국은 방대한 영토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노동과 지혜에 의지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따라서 거만해지고 금융에 무지해진 탓에 중국은 훗날 치열하게 전개된 금융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 서양 열강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고 여기에서 생산된 금과 은으로 동방과의 무역을 전개하면서 중국의 이와 같은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에 중국은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유럽에 팔아 엄청난 은을 벌어들였지만 이것을 다시 시장에 내놓지 않고 집 안 창고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야말로 은이 넘쳐나는 ‘은의 제국’이었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은을 회수하기 위한 영국의 계략으로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파운드가 금을 본위화폐로 삼으면서 중국은 은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은의 저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국의 봉건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은 역시 역사에 종말을 고하는 듯했으나, 미국이 은 수매 법안을 발표하여 중국의 은을 고가에 사들이겠다고 선언하자 세계의 은이 다시 중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은 집결지였던 상해는 중국에서도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거품이 꺼졌을 때는 이미 대량의 은이 해외로 빠져나간 상태였고, 이제 막 발돋움하기 시작한 중국의 민족 산업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저자는 약 100년에 걸친 중국과 서양 열강의 금융 전쟁을 서술하면서 중국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철저히 반성적 시각에서 파헤친다. 시대착오적인 자부심과 외부 세력에 대한 두려움은 변화를 거부하고 개인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지도자와 가난하고 무지한 국민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은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여전히 금보다 값이 싼 유형 자산인 은을 선호한다. 2012년 중국의 은 가격은 14퍼센트 상승했으며, 2013년에는 그 수요가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확실히 은은 금과 더불어 화폐전쟁의 중요한 무기가 되겠지만, 과거 중국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앞으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달의 눈물’ 전설에서 ‘오즈의 마법사’까지
은과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적 장면들을 통해
금속 화폐의 전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다
은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역사의 숨은 주인공으로 활약해왔다. 신대륙 아메리카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금을 ‘태양의 땀방울’, 은을 ‘달의 눈물’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 이들에게 은은 재물이 아닌 아름다움과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은은 더 이상 전설 속 달의 눈물이 아닌 인디언 노예들의 피와 눈물을 상징하게 되었다.
미국이 은본위제를 폐지한 후 집필된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도 은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은 지지자였던 바움은 대통령 후보였던 민중당의 브라이언이 경선에서 패한 후 1900년에 ≪오즈의 마법사≫를 출간했다. 기이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는 미국이 다시 은본위제로 돌아가기를 바란 바움의 의도가 담겨 있다. 특히 세 번만 두드리면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마녀의 은 구두는 그만큼 은이 가진 위력이 대단함을 뜻한다. 훗날 중국의 운명을 암시하는 도자기(china)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도 의미심장한데, 여기서 깨지기 쉬운 도자기 마을은 금융 자생 능력이 없는 중국을 상징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과학자이면서 금융 전문가이기도 했던 뉴턴이 금 가격을 3파운드 17실링 10.5펜스로 확정하여 금본위제를 확립한 사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은위원회와 손잡고 뉴딜 정책을 시행하게 된 과정, 장제스 정부가 은을 팔아 전쟁 무기를 사들인 일 등 역사적 사건들에 숨겨진 비밀들을 흥미진진하게 파헤친다. 단순한 은의 역사가 아니라 은으로 대표되는 부(富)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과 약탈적 본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은은 단순한 금속일 뿐 이를 마녀의 은 구두나 투기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욕망임을, 저자는 방대하면서도 철저한 사례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오늘날 은은 더 이상 ‘야만적인 시대의 잔재’가 아니다. 화폐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미래 산업의 원자재로,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현대 금융 시스템과 더불어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달러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금은 복본위제를 부활시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여기에 역사적 관점을 가미하여, 과거 금속 화폐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은이 보여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 속에서 은이 보여준 불안정성은 결국 인간이 지닌 불안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것이 끊임없는 변동성을 초래했다. 이와 함께 어떤 세력의 힘겨루기도 흥망성쇠의 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한다면 은은 다시 한 번 새로운 금융 수단으로 빛을 발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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