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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 전설의 금융가문 로스차일드 1,2(니얼 퍼거슨)

by Richboy 2013. 3. 25.

 

    

 

 

 

ㆍ놀라운 성취, 역사적 연구와 상상력의 승리. 19세기 정치와 외교, 경제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는 역사가는 단 한 사람, 니얼 퍼거슨뿐이다. -로버트 스키델스키(역사학자)


ㆍ니얼 퍼거슨이 쓴 해박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대가족 서사시는 역사가들이 일반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토록 신뢰할 만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은 한 번도 없었다. -《뉴욕 타임스 북리뷰》


ㆍ위대한 전기다. -《타임》


ㆍ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유연하고 노련하게 종합하는 저자의 능력으로 흥미진진한 문제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비즈니스 위크》


ㆍ니얼 퍼거슨 교수의 『로스차일드』는 영민하고 부지런한 젊은 학자의 역작이다. -《LA타임스 북리뷰》


ㆍ뛰어난 글 솜씨, 화려한 삽화…… 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이로운 성공에 대한 기록. -《보스턴 글로브 북리뷰》


ㆍ니얼 퍼거슨의 풍부하고 감동적인 역작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ㆍ독자를 매혹시키는 니얼 퍼거슨은 이처럼 유명한 가문을 글로 묘사하는 훌륭한 일을 해냈으며,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의 철저한 연구는 지금까지 나온 로스차일드에 대한 그 어떤 작품도 압도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특별 리뷰)


ㆍ니얼 퍼거슨은 금융과 가족에 대한 테마들을 능숙하고 짜임새 있게 엮고 있다. 근대의 금융과 은행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책이다. 또한 『로스차일드』는 모든 꿈을 이룬 독특한 가문에 매료된 독자들에게 훨씬 큰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아메리칸 스테이츠맨》

 

 

세계 금융의 지배자 로스차일드가의 8대에 걸친 신화를 낱낱이 파헤친다!
 
『전설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 제1권 《돈의 예언자(1798-1848)》편.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니얼 퍼거슨이 18~20세기에 걸쳐 전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계 최대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와 당시의 역사, 그리고 어떻게 부를 쌓아 운용해나가는지에 대해 서술했다. 로스차일드 형제들 중 셋째인 나탄 마이어가 영국에 도착한 1798년부터 1999년까지 로스차일스 가문의 200년사를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대 국제 채권 시장을 형성하고 지배했으며, 고속 커뮤니케이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정치ㆍ경제적 세력으로서 그들의 엄청난 지배력은 위기의 시대에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은 정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 책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놀라운 경제적 성공 이면에 놓인 비밀들을 밝히고, 이 가문의 방대한 정치적 네트워크를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가족의 단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롯하여 로스차일드 사람들의 삶에 유대교가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한다.
 
『전설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 제2권 《세계의 은행가(1849-1999)》편.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니얼 퍼거슨이 18~20세기에 걸쳐 전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계 최대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와 당시의 역사, 그리고 어떻게 부를 쌓아 운용해나가는지에 대해 서술했다. 로스차일드 형제들 중 셋째인 나탄 마이어가 영국에 도착한 1798년부터 1999년까지 로스차일스 가문의 200년사를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대 국제 채권 시장을 형성하고 지배했으며, 고속 커뮤니케이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정치ㆍ경제적 세력으로서 그들의 엄청난 지배력은 위기의 시대에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은 정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 책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놀라운 경제적 성공 이면에 놓인 비밀들을 밝히고, 이 가문의 방대한 정치적 네트워크를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가족의 단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롯하여 로스차일드 사람들의 삶에 유대교가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200년사를 세밀하게 써내려간 대작
매력적이고 비밀스런 금융 왕조의 의미심장하고 풍부한 초상화
《비즈니스 위크》 선정 ‘올해의 책’ / 《뉴욕 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
세계 최고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5년간에 걸쳐 완성한 역작!

돈은 우리 시대의 신이며, 로스차일드는 그 신의 예언자다. -하인리히 하이네(시인)
이 책은 역사학과 역사적 상상력의 절묘한 조합이며
위대한 역사적 저작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시켜준다. -프리츠 스턴(미국의 역사학자)
세계 금융의 지배자 로스차일드가의 8대에 걸친 신화를 낱낱이 파헤친다!
KGB에 의해 은폐되었던 문서까지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은’ 저자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방대한 정치ㆍ경제적 네트워크를 최초로 자세히 소개


18~20세기에 걸쳐 전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계 최대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는 그 명성만으로도 놀라운 신화이자 전설이다. 1700년대 후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골동품 중개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부유한 유대인 중 한 명이 되었고 핵심 사업도 은행업으로 바뀌었다. 그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비엔나(빈), 이탈리아 나폴리, 프랑스 파리로 보내 각자 금융기업을 만들게 했다.
이 책은 로스차일드 형제들 중 셋째인 나탄 마이어가 영국에 도착한 1798년부터 1999년까지 로스차일스 가문의 200년사를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근대 유럽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는 부침을 거듭해온 금융 명가 로스차일드의 역사에 대한 저술을 처음으로 니얼 퍼거슨 교수에게 제안한 사람은 N. M. 로스차일드 앤드 선즈의 회장 에벌린 드 로스차일드 경이었다. 그것은 곧 로스차일드 문서보관소를 개방한다는 의미였다. 니얼 퍼거슨은 런던 로스차일드 문서보관소에 있는 모든 자료와 개인 문서 컬렉션까지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는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로스차일드 가족으로부터 초고에 대한 의견도 청취하여 이 책의 최종 원고를 완성했다. 또한 5년에 걸친 엄청난 연구 지원과 문헌 연구, 각종 통계 자료, 일가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유대인 역사 등에 대한 깊은 연구와 노력이 뒤따랐다.
이 책은 로스차일드 신화를 역사적 진실로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문헌 증거를 재구성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그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최근까지도 로스차일드 가문에 관련된 문서 자료에 접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일가의 거대한 문서보관소는 1912년에 대부분 파괴되어 초기에 파리로 보냈던 극소수의 문서만 남았다. 비엔나 일가의 문서보관소는 1938년에 나치에 몰수되었고, 전쟁 후에는 독일 점령 시 체포되었던 프랑스 일가가 갖고 있던 서류들과 함께 소련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자료는 냉전시대에 KGB의 모스크바 ‘전리품’ 보관소에 묻혀 있다가, 1990년 역사문헌보존센터로 이전하여 외부 연구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부족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그 자료가 너무나 방대하여 제대로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런던 문서보관소에는 은행 파트너들이 1812년부터 1898년 사이에 주고받은 ‘사적인 서신’(XI/109 시리즈)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편지만 135상자에 이른다. 이 책은 그중에서 약 5,000통의 편지를 참조했다. 그 당시 편지는 정치 뉴스와 금융 정보, 사업상 질문 및 답변 등 고급 정보가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개인적인 고민과 푸념까지 털어놓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19세기의 금융 및 외교 역사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차지한 비중을 감안했을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자료는 편지인 셈이다.
세계 최고의 역사학자이자 경영사상가인 하버드 대학교의 니얼 퍼거슨 교수는 이 책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놀라운 경제적 성공 이면에 놓인 비밀들을 밝히고, 이 가문의 방대한 정치적 네트워크를 최초로 자세히 소개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대 국제 채권 시장을 형성하고 지배했으며, 고속 커뮤니케이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정치ㆍ경제적 세력으로서 그들의 엄청난 지배력은 위기의 시대에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은 정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 책은 가족 대하소설이기도 하다. 가족의 단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 게토의 비참한 공간에서 자라나 유럽 전역의 억압받는 유대인을 돕는 데에 자신들의 전설적인 부를 이용했던 로스차일드 사람들의 삶에 유대교가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한다. 한 가문을 뛰어넘어 시대의 역사까지 흠잡을 데 없이 서술한 이 책은 2세기에 걸친 신화를 벗겨내고 19세기의 가장 강력하고 흥미로운 가문을 되짚어보는 결정적 전기다.

 

 

 

저자 니얼 퍼거슨은 세계사적 전환의 시점에서 최근 경제 위기를 예측하면서 국내외 언론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았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 프리드먼의 최대 경쟁자로 꼽힌다.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로 중국과 미국의 공생관계를 설명해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수정주의 시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1964년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198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옥스퍼드 대학 지저스 칼리지와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칼리지 선임 연구교수도 겸하고 있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다. 1987년 저널리스트인 수잔 더글라스와 결혼했다.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Ascent of Money’의 진행을 맡으면서 2007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의 실체와 주식시장의 폭락 원인을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한국에서는 KBS 2TV에서 《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주요 저서로 『제국』, 『현금의 지배』, 『종이와 쇠』, 『실제의 역사』, 『전쟁의 연민』, 『콜로서스』, 『금융의 지배』, 『하이 파이낸셔』,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천문학적인 부(富)를 쌓고 금융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로스차일드 가문을 빼놓고는 유럽의 근대사와 자본주의 경제사를 논하기 어려워
세계를 움직이고 은행과 금융기업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이라는 음모론까지 횡행


18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서 로스차일드가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왔다. 나폴레옹전쟁, 워털루전투, 남북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모든 전쟁과 수에즈 운하 건설, 산업혁명, 각국의 중앙은행 설립 등에 이르기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이 둥지를 틀었던 5개 국가를 뛰어넘어 행사한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은 새로운 신화로 기록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오늘날 로스차일드의 명성은 전성기 때보다 퇴색한 듯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금융의 역사에서, 또는 금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로스차일드의 위상은 건재하다. 아직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럽의 대형 은행을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세계 금융을 장악하려 한다는 음모론까지 로스차일드는 세계인들의 관심권 안에 항상 놓여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모론자 데이비드 아이크(David Icke)에 따르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비밀스럽게 세계를 다스리는 ‘글로벌 엘리트 또는 조합’의 일원이다. 마이어 암셸 시대 이후로 그들은 “여러 나라의 정부를 주무르고 형제애를 발휘하여 전쟁과 혁명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그들은 바르부르크, 슈로더, 라자르드같이 잘 알려진 은행들과 영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를 통제하며 J. P. 모건, 록펠러, 쿤 뢰브, 슈파이어, 레만 등과 같은 미국 금융기업을 뒤에서 조종하는 숨겨진 세력이다. 이런 글로벌 파워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은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보어전쟁, 이스라엘 건설(중동의 유전을 통제하려는 작전), 러시아혁명(“로스차일드가 통제하는 글로벌 엘리트의 미국 금융 조직에 의해 러시아에서 발발한 쿠데타”), 히틀러의 자금 조달, 심지어는 닉슨 대통령의 달러화 환율 조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데이비드 아이크는 로스차일드를 비롯해 보수당과 언론에 포진된 그들의 패거리가 전기, 석탄, 가스의 민영화를 통해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을 독점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로스차일드 가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탄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워털루전투의 결과에 대한 가짜 정보를 흘려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 이야기, 디즈레일리 총리가 그토록 탐냈던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매입한 이야기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외에도 로스차일드 가문을 다룬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등이 상연되면서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인의 귀에 익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로스차일드 가문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권력이 가진 양면성을 자세히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로스차일드가 근대적 민주주의를 설립한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하나로 보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귀족 정치를 종식시켰을 뿐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유물론을 대표하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은 로스차일드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로스차일드 가문과 당시의 역사, 그리고 어떻게 부를 쌓아 운용해나가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1815년부터 1914년까지 100년간 로스차일드 은행은 그 규모가 세계 최대였다. 오늘날 국제 은행 중에 가장 큰 은행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성기 때 누렸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어느 누구도 나탄과 제임스가 1820년대 중반부터 1860년대까지 소유했던 만큼 세계적인 부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천문학적인 부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고는 자본주의 경제사를 논하기란 어렵다. 그들의 전무후무한 성공에는 어떤 ‘비결’이 숨겨져 있었을까? 기업 운영에 관해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출처가 불분명한 격언만 무성할 뿐이다. 그렇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정확히 어떤 사업을 벌인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누린 엄청난 경제적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19세기의 공공 금융을 이해해야 한다. 로스차일드는 정부 기관에 대출해주거나 국공채에 투기하여 어마어마한 재산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19세기판 메디치가의 영예를 누리며 ‘우리 로열 패밀리’라는 자의식을 갖다!
가족 간의 단합을 중시하며 근친결혼을 통해 경영을 승계하고 부를 집중시켜
굳건하게 유대교를 지키고 유대인 해방에 앞장서다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현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특이한 기업인 로스차일드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회사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친결혼을 선호했다. 그럼으로써 가문의 자본을 지속적으로 결집시키고 ‘외부인’의 권리 주장을 사전에 방지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로스차일드 사람들은 가장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룬다. 이상한 것은 가족 중에서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것이며, 그런 식으로 관계가 이어져서 훗날 역사가들이 도저히 풀지 못할 복잡한 매듭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당시 유럽의 왕족들도 그토록 밀접하게 족내혼을 하지는 않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여성은 가족의 사업에 관여하지 못했으며, 외부인과 결혼한 경우 그 남편도 처가의 사업에 개입할 수 없었다. 유언장도 한 세대의 소망을 다음 세대에 강요함으로써 사업의 지속과 성장을 보장할 수 있도록 작성되었다. 또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주요 지침 중 첫 번째는 ‘단합’이었다.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다섯 아들에게 남긴 유언도 ‘흔들림 없는 단합’이었다. 그렇다고 형제간에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관계 단절로 치달을 뻔한 순간도 많았지만 이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19세기의 대가족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로스차일드 가문이 여러 가지 법적ㆍ문화적 제약을 극복하고 귀족과 동등한 신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화려한 대저택과 타운하우스는 3대째에야 이루어졌다.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훈장과 작위, 기타 영예를 얻기 위해 애쓴 결과 1885년에는 영국 귀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사냥과 경마에 열중하고 작가와 음악가, 건축가와 미술가 등을 후원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사람들은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방식이자 유대인들이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과 유대교 및 유럽ㆍ중동 유대인 사회는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19세기에 서구로 이주한 수많은 유대인 가족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나라에서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하려면 자신들의 신앙인 유대교를 버려야 했다. 아무리 집이 호화롭고 아이들을 잘 교육시켜도 유대인에 대한 대중의 적개심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귀족 및 다른 종교의 은행가들이 내보이는 반유대 정서는 끊임없이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부유한 유대인 가족들은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쪽을 선택했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러지 않았다. 이들은 굳건하게 유대교를 고수했고, 그들이 회원으로 있는 다양한 유대인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더구나 이들은 초창기부터 여러 국가에 재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법적ㆍ정치적 지위를 높이는 데 앞장섰다. 조상의 신앙을 지키고 그들보다 ‘더 가난한 같은 신자들’을 잊지 않음으로써, 로스차일드 가문은 자신들의 행운에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그것을 오래도록 유지했다. 유대인 사회를 대표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할은 1917년의 밸푸어선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재정 적자의 범위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 정책까지 결정하는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치가들 역시 자신들이 통치하는 국가의 자급 능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했고, 최신 정치 뉴스를 제공하는 면에서 믿을 만했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 책은 이러한 관계들도 면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은 영국 왕실에까지 미쳤고 존 러셀, 글래드스턴, 디즈레일리, 조지벤팅크, 그리고 랜돌프 처칠, 조지프 체임벌린, 아서 벨푸어 등 19세기를 대표하는 정치가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낱낱이 살피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전쟁과 시대 변화가 금융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다!
실패와 위기 상황을 이겨낸 로스차일드만의 특별한 자산
비범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 쓴 평전의 완결판


로스차일드 가문을 한 국가를 뛰어넘는 금융 재벌로 만든 계기가 전쟁이었다면, 이제는 그 전쟁으로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크림전쟁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반복되는 전쟁은 전 세계에 구축해놓은 로스차일드 제국의 안위를 위협했다. 그 모든 세계적 격변 속에서도 그들의 은행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였고 그들의 관심도 금융계 밖으로 팽창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데 실패한 것이 가문에 치명타가 되었다.
나탄 마이어는 주요 유럽 국가들의 재정이 정상화되자 더 먼 곳으로 눈을 돌려 신규 고객을 물색했는데 바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미국이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치 불안은 로스차일드가에서 발행한 채권에 대한 불이행 사태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당면한 문제는 재정 기관이나 통화 기관들의 분권화였다. 로스차일드가는 연방정부에서 좋은 사업 기회를 얻어내고 미합중국은행을 주미 영국은행 식으로 바꿔놓으리라 기대했지만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재정적으로도 신통찮게 운영되면서 자신들의 계획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에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 것은 가문의 역사에서 단일 최대의 전략적 실수였다.
한편 철도 사업에 발을 들인 뒤 로스차일드 일가는 대중적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급진주의자들이 로스차일드가를 인민의 착취자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1840년대에는 부자에 대한 반감이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과 뒤섞여 로스차일드 가문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1840년대 중반의 경제 불황은 정치 불안을 예고했다. 1848년의 혁명은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경기 침체로 세수가 감소하면서 정부의 적자 규모가 증대된 것이었다. 단기적으로 이는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새로운 사업 기회였다. 잘로몬과 제임스 모두 내란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대규모 국채 사업을 떠맡았다. 파리를 휩쓴 혁명의 불길이 동쪽을 향해 번져나가자, 잘로몬의 산업 및 철도 채권이며 주식 모두는 말 그대로 매도가 불가능해졌고, 오스트리아 정부와 맺은 계약 의무도 이행하기가 어려워졌다. 갓 수립되어 금융에 관해 경험이 없는 정부와 가장 최근에 맺은 대부 계약을 크게 변경하는 데 합의를 보면서 제임스는 폭풍을 뚫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사업의 다국적 구조, 막대한 자원과 최상의 정치 인맥 덕분에, 로스차일드가는 1848~1849년의 격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로스차일드 가문 내부의 극심한 위기와 동시에 벌어졌으며, 그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1905년부터 1918년까지 로스차일드 가족 회사를 지배해온 세대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는 곧 한 시대의 종언으로 비쳤다. 어쩌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행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그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니얼 퍼거슨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오늘날까지 장수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상대적인 위험 회피 성향이라고 말한다. 즉 로스차일드 가문이 보인 신중함은 가족 기업의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같은 관점에서는 현재의 주주들뿐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마자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성공 비결은 아주 특별하진 않다. 다른 사업으로 진출하지 않고 금융업에만 집중했고, 탁월한 정보력을 갖추었으며, 가족의 결속력을 무엇보다 중시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금융시장을 200년간 쥐락펴락한 명가의 역사 속에는 우리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진지하게 펼쳐진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경제ㆍ사회ㆍ정치사를 함께 읽어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한 가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2세기에 걸친 장대하고도 진지한 역사다.

 


로스차일드. 1: 돈의 예언자 1798-1848

저자
니얼 퍼거슨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03-19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 금융의 지배자 로스차일드가의 8대에 걸친 신화를 낱낱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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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 2: 세계의 은행가 1849-1999

저자
니얼 퍼거슨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03-19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 금융의 지배자 로스차일드가의 8대에 걸친 신화를 낱낱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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