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13인의 전문직 글쟁이에게 던진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글쓰기에 이골이 난 당신, 당신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소설, 시나리오, 동화, 시, 평론, 칼럼을 쓰는 전업 글쟁이들부터 기자, 카피라이터, 전직 판사, 목사까지. 직업상 글을 ‘쓸 수밖에 없고’, 더구나 ‘잘 써야 하는’ 이들은 각자가 처한 직업적 글쓰기의 현실을 과장도, 엄살도 없이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13인의 전문가에게 던진 질문,
“당신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쓴다는 것의 괴로움, 직업적 ‘천형’으로서의 글쓰기
나는 변호사가 된 뒤에, 이미 40대에 들어선 어느 고등법원 판사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에 가슴이 아팠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 문자메시지는 이랬다. “몸이 부서지도록 아픕니다. 아직도 판결 다 못 썼는데……”
판사의 독백. “담배꽁초는 재떨이에 수북한데, 밤은 이미 지나 동이 훤히 터오는데, 몸은 파김치가 되다 못해 이제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오는데” 판결을 쓰지 못한 판사의 심정은 참담하다. 백여 권의 책을 출간한 정상급 번역가 성귀수. 그 역시 깊은 밤 모니터 속 커서를 노려보며 여전한 글쓰기의 괴로움을 신음처럼 내뱉는다. 신문기자 생활만 18년을 하고, 온갖 픽션과 논픽션을 써 온 칼럼니스트 임범. 칼럼 마감이 다가오면 여전히 “원인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며”, “소재를 못 찾아 마감 전날 밤을 꼬박 새거나”, “잠을 청해놓고 악몽에 시달”리고 “여드름을 짜고, 코털을 깎고, 안 하던 청소를 하고” 난 뒤에야 겨우 펜을 든다.
글쓰기 선수인 그들에게도 글쓰기는 괴롭다. 하얗게 비어 있는 모니터 화면을 마주하고 앉은 새벽의 암담함을 겪어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마감은 저승사자보다 무섭게 다가오고 수명이란 게 없는 글은 낳아서 버린 자식처럼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그들은 쓴다. 써야 하기 때문에 쓰고, 먹고살기 위해서 쓰고, 잘 쓰기 위해서 쓰고, 또 쓴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13인의 전문직 글쟁이에게 던진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글쓰기에 이골이 난 당신, 당신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소설, 시나리오, 동화, 시, 평론, 칼럼을 쓰는 전업 글쟁이들부터 기자, 카피라이터, 전직 판사, 목사까지. 직업상 글을 ‘쓸 수밖에 없고’, 더구나 ‘잘 써야 하는’ 이들은 각자가 처한 직업적 글쓰기의 현실을 과장도, 엄살도 없이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그들의 고백은 처절하다. 기자는 취재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감정 없이 쓰기 위해 울음을 삼키고, 카피라이터는 광고주의 요구와 소비자에 대한 양심 사이에서 배우처럼 1인 2역의 역할극을 한다. ‘설교 용역’까지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좋은 설교문을 쓰기 위해 신학의 본질을 고민하는 목사, 극장에 앉아 자신이 쓴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관객들 앞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시나리오작가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애달프다. 누군가의 인생을 글쓰기로 좌지우지해야 하는 판사는 판결문 쓰기를 ‘천형’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어떻게 쓰는가’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가 아니다. 단순히 글쓰기 테크닉이나 작법을 설파하는 영역을 넘어서서 ‘글쓰기의 본질’을 탐구하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직업적 고민과 삶의 태도를 성찰한다.
장르를 불문하는 글쓰기의 핵심
기자 안수찬의 말을 빌리자면 “글은 불멸의 미디어이므로 사람들은 찰나의 삶을 글에 담으려 안달한다.” 우리는 꽤 자주 글을 써야 하고 쓰고자 하며 더 잘 쓰지 못해 애태운다. 회사나 학교에 낼 보고서 쓰기가 대하소설 쓰기보다 어렵고 편지 한 줄 쓰다가도 졸필에 좌절하고 마는 대다수의 ‘우리’에게, 이 책은 유려한 문장 쓰기의 기교가 아닌 실전에서 당장 구사할 수 있는 글쓰기 비법을 제시한다. 13인의 전문가가 오랜 글쓰기 끝에 체득한 방법론은 신기하게도, 어느 장르의 글에 갖다 놓아도 손색이 없다. 하나의 인상을 잡아 파고들고(영화평론가 김영진), 디테일로 보여주며, 문장은 짧게 끊어 친다(기자 안수찬). 대중, 즉 독자의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 온갖 매체를 탐독하고(카피라이터 손수진), 글쓰기 재료를 찾아 메모를 습관화하며(철학자 최훈), 한번 든 생각을 오래 묵혀 숙성시키기도 한다(칼럼니스트 임범). 많은 습작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글쓰기 특징을 정확히 익히고(시인 유희경), 글을 쓴 뒤에는 여러 사람에게 돌려 읽히며 의견을 듣기도 한다.(소설가 듀나). 저자들은 자신이 직접 쓴 글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는 글쓰기의 핵심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그들의 글은 때론 날카롭고 건조하며 때론 감성이 뚝뚝 묻어나지만, 이 공식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글쓰기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라면 그들이 직업 현장에서 써낸 글들을 예제 삼아 몇 가지 핵심 과제들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꽤 그럴 듯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쓰고 싶은가, 글쓰기의 본질은 소통과 공감
이 책의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나는 어떻게 쓰고 싶은가’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 13인의 전문직 글쟁이들은 글쓰기의 지향점도 제각각이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은 ‘의외성’이다. 멋진 문장을 구사하기로 유명한 영화평론가의 글쓰기 원칙은 의외로 ‘멋 부리지 말고 간명하게 쓰기’다. 암호 같은 말만 중얼거릴 것 같은 철학자는 대중이 이해하고 재미있어하는 글을 쓰는 게 일대의 목표이고, 근사한 한 구절에 목숨 걸 줄 알았던 시인은 오히려 충고한다. 그 빛나는 한 줄이 시를 망칠 수도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의외의 순간을 만나고 글 쓰는 자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마주하게 된다. 미술평론가가 미술관 밖의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소설가가 결말을 모른 채 글을 시작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직업이 다른 만큼 글쓰기의 성격도 고민도 다르지만 그 끝은 한 곳으로 귀결된다. 바로 ‘소통’과 ‘공감’이다. 기자는 “남의 문제를 응시”하는 데서 글쓰기를 시작할 것을 충고한다. ‘국가 권력의 행사’에 목적을 두는 판결문을 쓰는 판사조차 누구에게나 통하는 “상식”과 “논리”를 글에 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목사는 대중과 공유하는 설교를 위해서라면 설교조차 “비평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글’이라는 가치, 누군가에게는 예술의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언론 매체로 쓰이는 그 가치는, 소통 없이는 기능하지 못한다. 글은 한순간도 독자를 우선하지 않으며 오직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동화작가 김중미는 말한다. “나는 글보다 앞서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을 하는 데 첫걸음은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즉, 나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이다.”
읽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의 저자들이 항상 좋은 글을 생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매순간 세상과 타자에 예민하게 감응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의 글을 교본 삼아 오늘, 나만의 글쓰기를 시도해보라. 그 어떤 자기계발보다 의미 있을 것이다. 피 말리는 제조 과정에도 불구하고 글은 불멸의 미디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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