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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보이가 주목한 오늘의 책 -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by Richboy 2013. 5. 17.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대한민국의 사회 디자인 보고서!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이상한 나라의 정치학』.《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을 펴내며 우리 경제에 드리운 그늘 가운데서 희망의 싹을 제시했던 경제전문가 이원재가 이번에는 이상한 나라의 ‘정치’를 돌아본다.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2012년 대선 상황을 복기하고, 한국정치의 지형을 진단한 후 구체적인 우리 삶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살펴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향을 모색하는 대안으로써 경제·사회·환경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새로운 성장모델인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살펴본다.
 
 

숨 가쁘게 살아온 당신, 지금 행복하십니까?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힌 세상을 넘어서
내일이 기대되는 대한민국의 사회 디자인 보고서


나라는 늘 우리에게 설명했다. 한국은 열심히 일했고, 눈부신 성공을 거뒀고,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소박한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고, 소박한 꿈을 이루기는 더 어려워진 걸까? 사람들이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일까? 노력하지 않아서일까?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정치가 해야 할 몫, 사회가 해야 할 몫, 개인이 해야 할 몫이 있다. 정치가 해야 할 몫을 쉽게 할 수 있게 물꼬를 터주는 제도와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해야 할 몫, 내가 해야 할 몫을 좀 더 손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소비도 투표다. 내가 어디로 쇼핑하러 가서 무엇을 사는지도 세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주말에는 어디로 놀러 가는지, 여윳돈은 어디에 투자하는지,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지, 친구나 부모나 자녀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도 모두 세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은 그 모두가 정치다.
-프롤로그 중에서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현실은 불만스럽고 미래는 불안한 걸까?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경제전문가가 들여다본 이상한 나라의 정치견문록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을 펴내며 우리 경제에 드리운 그늘 가운데서 희망의 싹을 제시했던 경제전문가 이원재가 이번에는 이상한 나라의 ‘정치’를 돌아봤다. 경제전문가인 그가 정치의 영역으로 관심을 돌린 것은,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개개인의 삶이 빡빡하며 소박한 꿈을 이루기 어려운 것만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가 불행하다면, 이는 결국 나라를 운영하는 시스템과 정책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추론에 이어 정치의 세계를 둘러보게 된 것이다.

이원재는 구체적으로 2012년 대선 상황을 복기한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전면전으로 치러진 지난 대선은, 이미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효과적으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과거와 과거가 맞붙은 선거라 할 수 있다. 즉 미래지향적인 정책 선거가 되기에는 과거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드리워졌던 셈이다. 게다가 선거의 결과가 51 대 49로 나타났다는 점도 우려할 만하다. 2퍼센트만 가져오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생각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장애가 된다. 절반에 이르는 지지를 유지하되 조금만 세력을 확장하면 권력을 잡을 수 있으니 실험적인 생각이나 혁신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양측이 유권자를 분할하여 팽팽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먹고사니즘’이라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보다 많은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이 현실론에 매몰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의 결과, 정치를 바꿈으로써 삶을 바꾸겠다는 시도를 뒤집어, 삶을 바꿈으로써 정치를 바꾸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게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즉 어떻게 하면 사회를 건강하게 바꿈으로써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한국정치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되 실천에 있어서는 점진적인 개선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위한 변화의 균열을 가져오는 고민일 것이다.

‘먹고사니즘’의 욕망에서 벗어나기
필자는 이와 같이 한국정치의 지형을 진단한 후, 구체적인 우리 삶의 현장을 둘러본다. 그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필자는 ‘대형마트’를 제시한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장보기의 상당 부분을 마트에 의존하게 되었고 급기야 마트는 가족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각광받게 되었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대기업의 선전은, 사실상 기만적인 허구에 불과하다. 또한 마트로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개인의 물류저장 비용 등을 감안해보면, 부가 비용의 상당수가 대기업에서 소비자에게로 전가된 셈이다.
‘대형마트’의 사례에서 소비자의 삶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면, 골목상권의 상황에서는 자영업자들의 절망을 살펴볼 수 있다. 안정된 정규직이 줄어들면서 50대 자영업자의 비율이 증대되었고, 이들은 동네의 골목에서 대기업 프렌차이즈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의욕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축복이다. 산업화 시대에 국가에서 대기업을 보호ㆍ육성함으로써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듯, 자신만의 빵집이나 서점을 열고 싶어하는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행복해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기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미래를 위한 토대가 아닐까.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이러한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 아닐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상상의 방향
이러한 방향을 모색하는 대안으로써 필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지속가능성이란 경제ㆍ사회ㆍ환경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새로운 성장모델이다. 이들 세 영역 사이에는 당연히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치와 시민사회가 이들 영역이 파괴되지 않으면서 전체가 진보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성장모델을 가능케 하기 위한 사회혁신으로, 경제민주화를 통한 재벌 대기업의 투명성 확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 성(城) 밖의 사회적 경제 구축, 소비자의 착한 욕망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 확충, 진보적 인재에 대한 적절한 투자 등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정책토론의 발화점을 제공하는 독립적 싱크탱크의 활발한 활동,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민간 재단법인의 출현, 느리지만 깊이 있고 정확한 미디어의 성장을 비롯하여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유입될 수 있는 정치제도의 변화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래 비전은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정치의 문제이자 사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정말 덜 성장하고 덜 소비하면서 살 수 있을까?’

앞서 제시한 새로운 성장모델이란, 결국 개개인이 이러한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그 실현의 성패 여부가 달려 있을지 모른다. 내가 산 아파트값이 두세 배 오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획일적인 소비 패턴을 바꾸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교사와 청소 노동자 사이의 소득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줄어도 괜찮을까?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거의 사라지고, 빵이나 식료품을 동네에서 생활협동조합 방식으로 사다 먹어도 괜찮은가?

만일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분명히 커지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생각하자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가능하기도 하고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모색한다면, 이제는 점진적이더라도 분명한 실천을 통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