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터, 주식시장의 야전교범
돈 벌기도 어렵지만 돈 키우기는 어려워졌다. 더더욱 5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부자 되기 정말 쉬운 나라였다. 무조건 아파트를 사기만 하면 됐으니까. 굳이 큰돈도 필요 없다. 레버리지, 지렛대 효과가 있잖은가. 대출만 받을 수 있는 자격이면 이렁저렁 80%까지 남의 돈으로 살 수 있으니까 말 그대로 종잣돈 정도만 있으면 부자가 될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부동산 지식이 별로 없어도 괜찮다. 30여 년 동안 ‘부동산 불패신화‘가 보증해 줬으니까.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막차 탄 부동산 투자자들은 부자가 되기는커녕 ‘하우스푸어’로 전락해 버렸다. 새 정부가 들어서 매월 초 ‘부동산부양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언발에 오줌눗기‘격일 뿐 시장은 미동조차 없다. 뉴스와 언론은 연일 ’부동산 시장이 꿈틀댄다‘고 떠들어대지만, 정부의 압력과 광고주의 요청에 의해 떠드는 헛소리라는 걸 투자자들은 이미 다 안다. ’부동산‘은 이제 투자대상으로 한물간 포트폴리오 임에 틀림없다.
그럼 예적금은 어떨까? 지난 5월 9일 한국은행은 금리인하를 단행, 대한민국은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은행의 최고금리는 3.5퍼센트였다. 실제금리는 인플레 2.5퍼센트와 이자소득세 0,41퍼센트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 금리는 0.59퍼센트로 명목금리보다 훨씬 적지만 지금처럼 마이너스(-) 금리는 아니다. 이제부터 은행에 저축해서 부자가 되겠다고 하면 바보소리를 들어야 한다. 부동산도 예적금도 아니라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남은 것은 하나, 바로 주식이다.
월가의 전설로 알려진 피터 린치는 자신의 책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에서 투자포트폴리오를 저축예금, 골동품 등 수집품, 부동산, 채권, 주식으로 나누고 각각의 장단점을 살핀 후 그 중에서 주식이 가장 좋은 투자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주식투자에 있어 가장 큰 장점은 인플레이션만큼 주식시장은 우상향한다는 점이다. 즉 물가상승분 만큼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하므로 주식시장은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에게 있어 주식투자는 결코 만만치 않다. 열에 아홉은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봤다고 입을 모은다. 쉬운 주식투자에 속하는 펀드투자 역시 재미를 본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다. 왜 그럴까? 투자 지식이 짧아서일까? 만약 그렇다면 수많은 주식 전문가와 투자 고수들은 이미 갑부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돈을 이기는 법>의 저자이자 알바트로스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성필규는 그럴 듯한 투자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원칙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한다.
<돈을 이기는 법>은 여느 책과 다르다. 저자 성필규는 현란한 그래프와 숫자로 가득한 투자지식과 성공스토리 대신 자신의 부끄러운 투자 역사 전부를 고백하듯 기록했다. 투자자라면 절대로 꺼리는 내용, 그래서 스토리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그의 고백을 쫓다보면 천하의 알바트로스는 백전백승의 천재가 아니라 거듭된 실패 후에도 한 번 더 일어선 개인투자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시장에서 내가 겪을 수 있는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몇 년간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쌓아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그날 나는 정말이지 목 놓아 울었다. 울다가 토하고, 또 울다가 토하고, 그러다 다음날 뜨는 해를 보았다. 태양은 다시 뜬다지만 나의 재기는 까마득해 보였다. 아니 불가능 그 자체였다.
이튿날부터 나는 넋 나간 사람이 되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누군가에게라도 나의 한탄 섞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할 사람이 없었다. 가족에게는 철저히 알리고 싶지 않았거니와 몇 백만 원의 월급을 벌고자 땀 흘려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이었다. 그 친구들에게는 이미 달나라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129쪽
이른바 대박을 꿈꾸다 실패한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안다. 나 역시 삼십대 중반 큰돈은 아니지만 알토란같은 전 재산을 친구 말에 넘어가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가 부도가 난 적이 있다. 그 때는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이후 나는 목돈이 들어가는 투자 제안을 만나면 ‘트라우마’에 소스라쳤고, 알바트로스는 또 다시 도전했다. 범인凡人과 승부사의 차이는 바로 이 차이다.
승부사가 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채 마흔도 되기 전 ‘과로와 극도로 긴박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노인처럼 새하얘진 머리와 수염, 불어난 체중, 목과 허리의 극심한 통증’(179쪽)이라는 직업병과 맞바꿔야 하는, 나 같은 ‘새가슴’은 결코 오르지 못할 산이었다. 책에서 놓쳐서는 안 될 백미는 제2부 ‘나를 지켜낸 승부의 원칙’에 소개된 ‘알바트로스의 투자 철칙(원칙)‘이다.
“먼저 자신이 어떤 투자자인지를 알고 자신만의 길을 정하라는 것이 첫째이고, 게임의 법칙을 파악하며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 둘째이며, 자금 관리를 생명선으로 여기라는 것이 셋째, 겸손하게 꾸준히 노력하라는 것이 넷째, 마지막으로 투자 심리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이것마저도 너무 길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투자는 마음 게임mental game이다.” 235
이 중에서 퉁을 놓고 싶은 대목은 ‘이겨놓고 싸워라’ 였다. 흔히들 ‘주식투자는 도박과 같다’고 말한다. 내일의 종합주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주식투자는 도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주식투자는 수익과 손해가 어디에서 어떠한 연유로 비롯되는지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발생하는 수익이 복잡할지언정 인과관계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도박과 같이 향후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주식투자는 종목선정과 투자결정에 있어 그런 상황이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하고, 사회적, 경제적, 통계적, 심리적 요인들에 대한 다양한 분석툴로 핵심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자는 바로 그 핵심에 근접할 수 있다면, 이겨놓고 싸우는게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경험이 적고, 핵심에 근접하기 어려운 나를 비롯한 절대 다수의 개미 투자자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한편 주식시장의 철학자 앙드레 코스톨라니 투자라는 ‘항해를 순조롭게 하려면 돈과 인내, 그리고 철사처럼 강인한 신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심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저자는 투자심리의 요체는 단 두 가지, 대중심리를 파악하고 경계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제어해내는 ‘손절매’라고 강조했다. 개인 투자자에게 가장 어려운 결정, 막상 손실을 확정짓고 포지션을 청산해야 할 상황에 처하면 판단력이 흐려질 뿐만 아니라 미련이 남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하고 시간을 끌다가 가벼운 생채기로 끝날 일이 치명상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먼저 이기는 방법을 알고 뛰어든 후 절대로 후퇴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저자가 현물 주식시장에서 파생시장 쪽으로 무대를 옮겨온 가장 큰 이유가 더 큰 수익을 원해서가 아닌 공정한 경쟁을 원해서라는 점이다. 결국 현명한 선택은 직접 주식시장에 뛰어들기보다 알바트로스에게 돈을 맡겨야 한다는 허무한 결론에 이른다. 물론 이 역시 알바트로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맡길 만큼 충분한 돈이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겠지만.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34호)에 기고된 리뷰 입니다.
돈을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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